제6주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맞아 지난 11월 1일, 부안군 학생들이 '자연사박물관, 부안을 걷다'라는 주제로 부안기행을 떠났습니다. 기행을 마친 학생들이 <본지>에 네 편의 소감문을 보내왔습니다.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인 부안을 걷고 느끼며 스스로 부안의 문화와 가치를 발견하고자 떠난 학생들의 여정을 글로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매주 1편 씩 4주간 게재됩니다.
백산고 김문호, 계화중 임예은, 서림고 이수아, 줄포중 표서인 학생 순으로 싣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배움의 여정
이번 부안 탐방에서는 위도에 가지는 못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 활동은 단순한 견학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느끼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주제가 ‘부안 역사 탐방’인 만큼,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담긴 여러 장소를 찾아가며 지역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느꼈다.
첫 번째로 방문한 적벽강에서는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에 압도되었다. 붉게 물든 절벽과 바위들이 층층이 이어져 장관을 이루었고, 파도에 씻긴 바위 표면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관찰한 페퍼라이트는 용암이 퇴적층 사이로 스며들며 굳어져 형성된 암석으로, 뜨거움과 차가움, 격렬함과 평온함이 공존한 결과물이었다. 자연의 충돌조차 결국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고, 그 과정이 인간 사회의 갈등과 화해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절벽 아래의 돌개구멍(포트홀)은 바닷물의 회전 운동이 수천 년에 걸쳐 바위를 깎아 만들어낸 지형으로, 작은 힘의 지속이 큰 변화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적벽강의 지질은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의 누적이 만들어낸 예술이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수성당은 예전부터 부안의 유서 깊은 장소로, 오랜 전통이 깃든 공간이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의 염원과 제의가 이어져 온 곳으로, 지역 신앙의 상징이기도 하다. 마을 공동체가 함께 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설명을 들으며, 전통이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신념을 이어주는 매개임을 깨달았다. 현장에서 들은 ‘개암 할머니’ 설화는 단순한 민속 이야기를 넘어,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온 문화적 기억의 형태로 느껴졌다.
세 번째 방문지인 내소사는 경관이 화려하고 조형미가 뛰어난 사찰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이어진 전나무 숲길은 마치 자연의 통로를 걷는 듯한 경건함을 주었고, 대웅보전의 목조건축은 세밀한 조각과 정교한 구조로 감탄을 자아냈다. 불교의 교리와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 공간은, 단순한 신앙의 장소를 넘어 인간 정신의 깊이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었다. 특히 불단의 구조와 천장의 단청 문양을 보며, 수백 년의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장인의 손길과 신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내소사 경내의 향내와 풍경소리는 마음의 혼란을 씻어주었고, 인간이 자연 속에서 겸손해질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방문한 곰소 염전에서는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관찰했다. 햇빛과 바람, 시간의 흐름이 함께 어우러져 바닷물이 소금으로 바뀌는 모습은 자연의 순환 원리를 보여주는 생생한 장면이었다. 소금 결정 하나에도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노동이 함께 스며 있었고, 그 결실이 주는 성취감은 단순한 생산의 의미를 넘어선 것이었다. 이 체험을 통해 ‘지속 가능성’과 ‘노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개암사는 규모는 작지만 아늑하고 단정한 사찰이었다. 내소사의 장엄함과는 달리 개암사는 소박한 고요함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풍경 소리와 잔잔한 바람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 여유와 성찰의 중요성을 배웠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고요함은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는 감정이었다.
이번 탐방을 통해 나는 단순히 ‘보는 여행’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배움의 여정을 경험했다. 부안의 역사와 문화유산은 각각의 공간이 가진 의미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적벽강의 암석에서 ‘충돌 속의 조화’를, 내소사에서 ‘인간의 경건함’을, 곰소 염전에서 ‘자연의 순환’을, 개암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배웠다.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성장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