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훈영 / 독립영화감독, 농부, 소금단원
유훈영 / 독립영화감독, 농부, 소금단원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출되는 뉴스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님은 인스타그램에 R.I.P 지구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누워있는데 덜컥 겁이 났다. 그래 지구는 죽어가고 있는 중 인지도 몰라.

수없이 많은 환경과 관련된 뉴스들. 빙하가 녹는다는 뉴스는 이제 새롭지도 않다.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해수면은 조금씩 상승한다고 한다. 몇십 년간 들어왔던 뉴스다. 아직 다 안 녹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먼 나라의 거대한 빙하는 실감 되지 않는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유난이야.” 그러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다.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간편하게 퍼져나갔고 도시와 국가기능을 붕괴시키고 많은 생명을 훔쳐갔다. 코로나가 중국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있지만, 팬데믹 상황까지 악화한 것에는 기후변화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기후변화를 초래한 산업화와 생태계의 파괴, 코로나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고 세계보건기구는 말한다.

불과 몇도 더워지고, 몇도 추워진 것인데 우리의 삶은 재난의 형태로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지구는 우리에게 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올가을에 냉이가 나고, 작년에는 애호박 하나가 4,500원이 되었다. 절기가 쓰여 있는 농사 달력은 맞지 않고, 유난히 힘든 여름과 겨울이 반복되고 있다. 대홍수를 맞거나,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어느 날부터 옥수수에 알곡이 여물지 않게 되어 그야말로 인류는 굶어 죽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고 있다. 인류는 탄소 에너지를 사용하며 태풍과 홍수, 가뭄과 대화재, 코로나를 겪었다. RE100.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점을 찾는 중이었다. 그런데 불가역적이고 범지구적이며 항구적인 영향을 끼치는 미지의 방사능 오염수? 지구 입장에서 이건 선 넘은 거 아니냐고.

이제 우리는 겸손히 지구의 답변을 기다려야겠다. 미래 자연사는 극소수만 누리는 호사와 사치일 거다. 자연재해와 암, 또 코로나와 같은 질병에 고통받다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 2022년 한국의 사망원인 탑3는 암, 심장 질환, 코로나19이다. 젊은 세대의 사망원인 1위는 여전히 자살이다. 부모님 세대의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보통의 평범을 얻을 수 있다던 신화는 사라졌다. 죽지 않고 질병에 고통스러워하는 세대와 삶을 포기하는 세대, 노령화와 초저출산. 적어도 한국은 이미 죽고 있거나, 사라지고 있다. 그렇기에 Rest In Peace 지구라는 말은, Rest In Peace 한국 또는 인류라고 정정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 인류는 정말 찬란하게 지구를 소비해 왔으니까. 그래도 난 내 죽음이 존엄하기를 바란다. 숫자놀음의 하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소수 권력자의 술주정으로 결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고민하고 방법을 찾다가 또 노력하다가 맞는 죽음이면 좋겠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인류와 환경에 끼치는 위험성이 과소되었을 수도 과대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결정에 나와 우리가 철저히 소외된 것은 참 비참한 마음을 들게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찬성하는 자들과 반대하는 자들이 싸웠어야 한다. 전문가와 연구를 통해 근거와 주장을 검증하고 죽기 살기로 싸웠어야 한다. 우리는 이 지난한 과정을 겪었어야 했고 그래야 모두에게 만족스럽진 않아도 수용할 만한 지점을 찾아냈을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허용한 정부 덕에 후쿠시마 오염수는 지금도 방류되고 있다.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과, “왜 또 시끄러운 문제를 꺼내냐”는 사람들로 나뉘게 되었다. 나는 또다시 국민의 존엄을 국가권력이 무시하는 경험에 익숙해지는 게 무섭다. 

후쿠시마 방류가 무서운 게 아니라, 내 남은 삶과 죽음의 존엄이 소외되는 것이 무섭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피를 머금은 동학혁명부터 민주화 운동과 촛불혁명의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다. 아름다운 민주주의 문화를 발전시켜 온 우리는 이제 노예로서 죽을지 주인으로서 죽을지 또다시 대답해야 한다. 나는 더 행복하거나 윤택한 삶을 위해 후쿠시마 방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내 이웃, 국가와 세계인의 삶과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다. 이 사태는 우리 사회가 약속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한다. 주인으로서 죽어야 한다. 우리 다음 세대에게 노예의 삶을 물려줄 수 없다는 책임감이다. 주인은 눈치 보지 않는다. 얘기하자, 걱정된다고, 당신의 주장이 미심쩍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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