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태양에의 도전'

ⓒ 홍성담

태양과 가까워 보이는 걸로 치자면 바로 나이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깜상’이라는 별명으로, 때로는 ‘부시맨’으로 불렸을 정도로 난 얼굴색이 가무잡잡하다. 검게 그을린 농부들 속에 있어도, 땀 뚝뚝 떨어지는 노동자들과 어울려도, 땡볕 내리쬐는 길에만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아니 차라리 그게 자연스럽다.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는 햇볕이 한참 강할 때 진행되었기에 그때 아스팔트 색과 혼연일체가 된 내 얼굴을 보며 웃던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요즈음만큼 태양이라는 단어를 늘 생각주머니에 담아 친근하게 입에 물고 다닌 적은 없다. 아니 태양이라는 존재를 이토록 진지하게 사색해본 때가 없는 듯하다. 나를 비롯해 많은 부안사람들이 그러하다. 더위와 추위에 관계되며 농작물 생산에 관련된 일조량 등등을 빼고서 태양을 그다지 염두에 두어본 적이 없다.
그런 우리에게 지금 태양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존재로 가까이 다가와 있다. 강한 것은 햇볕이고 덜한 것은 햇살이라고 그저 그냥 부르던 것이, 태양열이니 태양에너지니 하는 새삼 어렵고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고민케 하고 도전하고 있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선천적으로 태양 없이 살 수 없는 해바라기성 존재이다. 수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의식하든 안하든 태양 덕을 입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생명체는 지상에 하나도 없다. 밥상 위 밥 한 그릇과 거기 쌀 한 톨에도, 우리 몸 세포 구석구석과 핏줄마다에도 태양의 기운 우주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 평생 햇빛을 피해야 하는 희귀병으로 고통 속에 사는 이들도 더러 있으나 그들도 햇볕 듬뿍 받은 음식을 먹고 사는 이상, 햇볕의 은총을 직접 입지 않는다 하더라도 생명의 고리 안에서 우리 모두는 태양의 축복을 받고 있다.

드디어 2005년 2월16일부터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가 발효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석유와 석탄 등등의 화석에너지를 생각 없이 맘껏 쓰던 시대는 지났다. 따져보면 이 국제협약은 태양의 빛과 열이 지구생존에 알맞게,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는 깨끗하고 온전한 창공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는 엄청난 환경재앙을 겪고 말 터이니.

딱한 노릇이다. 한정된 자원은 무한대로 쓰려 하고 한량없이 쏟아지는 태양빛과 열은 외면하고 버려두다 자초한 일이다. 우리 삶을 자연과 밀착하고 상생하도록 짜지 않고 단절되고 파괴적으로 구조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십 년 안에 고갈될 우라늄을 가져다 쓰는 핵발전이 마치 화석에너지의 대안인 양 호들갑 떠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여기 부안은 촌이라 도시가스 시설도 안 들어오고 모두가 비싼 기름을 사서 써야 한다. 태양은 매일매일 저렇게 변함없고 한결같이 뜨고 지고 뜨고 지며 넘치고 풍성한데. 이제 어떻게 해야 저 태양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으려나.

올림픽 성화를 점화하는 그리스 신전 풍경을 보면 여신들은 하늘에서 가득히 내려오는 눈부신 태양빛을 받으며 그 빛을 한 점에 모아 불꽃을 만들어 낸다. ‘접신’의 순간이다. 이로써 성화는 하늘이 주는 선물이요 신적 성스러움을 간직하게 된다. 인간의 축제는 신의 관전과 돌봄, 응원 속에서 치러진다. 우리의 일상생활도 더 자주 구체적으로 신을 감촉하고 성스러워질 필요가 있다. 부안의 많은 건물들, 온 나라와 세상에 태양과 접신하기 위한 비행접시(오목렌즈)나 판판한 지붕들이 가득 들어차는 상상을 해본다. 이것이 다일 수는 없겠고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만 환경재앙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고 공존하기 위하여, 그 우주의 선물에 감사하고 즐기는 마음으로 해볼 만한 일이지 않을까.

햇살 비추는 따스한 자리를 파고들던 겨울도 거의 물러갔다. 앞으로 올 추위라고 해봐야 꽃 시샘 추위 정도이니 아름답게 넘어가면 될 일이다. 저 너른 들판에는 이미 봄햇살이 가득하고 농부들은 한 해 농사준비로 부산하다. 농부들과 그들이 뿌린 씨앗에게만 회자되던 태양이야기가 더 널리 퍼져나가고, 그 어디에 살든 그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 모두가 차별 없이 하사 받는 태양의 기운을 느끼고 맛보길 바란다. 이것 또한 우리 자신을 내적 외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강력하고 흥미진진한 시도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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