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속엔 봄이 활~짝...대목맞아 '인기 만발'

ⓒ 염기동 기자

“따땃하시겄네요.”
연신 외투를 들썩거리는 기자를 보고 기어이 모선순 씨가 한마디 한다. 순전히 조롱조다. 아니나 다를까 “잠바(점퍼)를 벗어라고 할 때 벗을 것이지” 하는 놀림도 뒤따라 온다.

설연휴 막바지에 갑자기 찾아온 추위가 여전히 한발짝도 물러가지 않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8도라고 했으니 꽁꽁 몸을 싸매는 것이 정상 아닌가. 상서면에 있는 ‘감다리 화훼’ 유리온실이 햇볕을 받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겨울 속 초여름이 영 적응하기 어렵다.

장미 자르기

그래도 해가 뜨기 전에는 이 정도까지 덥지는 않았다. 아침 8시에 미닫이문을 후다닥 열고 들어간 온실은 오히려 촉촉하고 따뜻했다. 산들산들 봄 날씨다. 사실 온몸을 훑어 지나는 따뜻한 기운을 채 느끼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자그만치 6천평 장미밭이니 신천지가 따로 없다.

ⓒ 염기동 기자
이제 막 봉긋해진 봉오리가 병아리 솜털마냥 눈을 가득 채운 채 하늘거렸다. 온실 가득한 습기는 장미를 더욱 관능적으로 보이게 하는 도구처럼 느껴진다. 입춘이 지나면 장미도 사람처럼 봄기운을 느낀다고 공석두 대표가 귀뜸했다.

장미는 십자형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종류별로 단지를 구성해 놨다. 가장 많이 보는 빨강 장미는 ‘비탈’이고, 노란 장미는 ‘골든게이트’라고 했다. 분홍은 ‘롤리팝’, 흰색 바탕에 분홍색 무늬가 들어간 장미는 ‘머라이K’, 노랑바탕에 빨간색 무늬가 들어간 것은 ‘콘페티’라고 일하는 이가 일러준다.

공석두 대표로부터 장미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중에 저 안쪽에서는 벌써 장미 자르기가 시작됐다. 사람 키만한 한아름 장미가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품에 안겨 수레에 옮겨졌다. 꽃망울을 이제 막 터뜨려 수줍은 듯하면서도 화려하다.

“자르는 데도 일정한 기준이 있어요. 높이를 일정하게 해 줘야 합니다. 줄기가 굵은 것은 밑에서 눈이 나와 가지고 꽃대가 올라와야 하니까 위에만큼 자르고, 가는 것은 더 가늘어지니까 못 올라오게 바짝 잘라야 합니다. 처음 온 사람이 자르는 것은 어려움이 있어요.”

공석두 대표가 일을 안 시킬 심산인가 보다. 겁을 잔뜩 준다. 장미 한 송이에 700~800원 간다고 하니 하겠다고 우길 일도 아니다 싶다. 게다가 이런 가격은 1년 중 졸업철인 2월에 15일 정도 형성되는 게 전부라고 한다. 더 이상 조르면 방해꾼이 될 판국이다.

곁순따기

ⓒ 염기동 기자
두 시간 가량 내다 팔 장미를 자르고 난 뒤에는 길쭉길쭉 뻗어 오르고 있는 장미며, 겨우 한 뼘 정도 자란 어린 순을 손질한다. 이 중에 곁순 따기는 꽃송이 크기를 쥐락펴락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했다. 초보자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기에 얼른 뛰어들었다. 옆에서 키득키득 웃는다. 가죽장갑을 끼었다고 그러는 거다. 자세히 보니 다들 자를 때 끼었던 장갑을 모두 벗고 구멍 뚫린 하얀 장갑으로 바뀌었다.

“곁순은 장갑을 끼면 못 따요. 이파리 사이로 손을 쑥쑥 집어 넣어서 따야 되는데 장갑을 끼면 안되죠. 우리도 장갑을 안껴야 하는데 손이 거칠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착용하는 거예요.” 모선순 씨의 충고다. 그는 감다리 화훼에서 8년을 일한 베테랑이다. 최고참으로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업을 책임지고 있으니 초보자의 어색한 손놀림이 얼마나 불안할까.

한 줄씩 맡아서 끝을 내야 하는데 허둥거리기만 한다. 어느새 그는 자기가 맡은 한 줄을 모두 끝내고 반을 더해 기자 곁에 와 있다. 게다가 금방 기자가 지나온 자리에서 곁순을 똑똑 따고 있다. 민망하다. 설상가상으로 해가 높아질수록 두꺼운 점퍼 때문에 어깨도 무겁고 땀까지 삐질삐질 난다.

모선순 씨는 “겨울에도 햇볕만 나면 25~26도로 온도가 오른다”며 놀리더니 “우리같이 오래 한 사람도 못 보고 지나치는 게 많다”고 위로한다.

“밑에를 잡고 아래서부터 위로 조심조심 따야 돼요. 이거 하나 키우려면 50일도 더 걸리는데 모가지 동강내면 안됩니다.” 또 겁을 준다. 그래도 연두색 새순을 만질 때마다 느끼는 부드러움 때문에 꽤 재미가 있다. 물론 꺾어내야 할 새순이지만 눈과 살갗을 호강시켜 줬으니 그 또한 보람이다. 또 한 시간도 안돼 깐깐한 그한테서 “이제는 잘한다”는 칭찬까지 들었으니 더욱 즐겁다.

선별하고 포장하기

한 아름 꺾어 놓은 장미는 선별작업을 거쳐 상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장미는 꽃모양과 줄기의 굵기에 따라서 특상, 특, 상, 중, 하 등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일단 줄기가 두꺼운 것이 높은 등급을 받고, 잎사귀나 꽃의 모양도 판단의 기준이다.

특상품은 90cm까지 자르고 시중에 나와 있는 장미는 40cm로 자른 중·하품이라는 게 모씨의 설명이다. “키가 아무리 커도 꽃이 좋지 않으면 하품으로 뺍니다. 가늘고 짧다고 해서 나쁘다기보다는 쓰임새가 다른 거죠.”

등급을 나누면 장미를 열송이씩 묶는다. 열송이가 파는 단위로 한 단이라고 했다. 꽃송이를 틈 없이 쌓아 단을 만들면 작두로 길이를 맞춰 자른 뒤 묶어서 상자에 넣는다. 한 상자에는 길이에 따라 24단에서 100단까지 다양하게 넣을 수 있다.

5톤 트럭을 모는 김아무개 씨는 한 차에 160박스가량 실린다고 말했다. 그는 “내 코스는 부안과 김제, 군산을 거쳐 충남권을 싣고 가는 길”이라며 “오늘 같은 날은 한 대로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졸업 시즌에 발렌타인 데이가 겹쳐 꽃을 재배하는 농가로서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싣고 가는 꽃은 양재동 꽃시장과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경부선, 남대문시장 등 도매시장으로 간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온실 속의 꽃도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고 한다. 겨울에는 줄기가 가늘고 꽃도 작지만 봄이 되면 특상품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봄이 멀지 않았는데 겨울이 다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 한 다발로 먼저 봄을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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