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들 생존권 박탈 위기 / 해수유통, 희망 살릴 불씨

새만금갯벌에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새만금 방조제 4공구가 막히면서 2공구와 3공구 사이 2.7km가 유일하게 산소호흡기 노릇을 하고 있다.
물살은 빨라진 대신 흘러들어온 뻘은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황금 밭’을 덮고 있다. 갯등은 높아졌고 큰 물길이 생겼다. 전국 생산량의 75%가 나왔다는 바지락은 찾아보기 힘들고 생합은 소합과 중합이 줄어드는 이상 현상이 포착되고 있다.
2.7km 해수유통 구간에 혜택(?)을 받고 있는 계화도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도시에서 삶을 약탈당한 사람들이 찾아들기도 한다.
하지만 막힌 4공구에 직접 영향을 받는 지역의 갯벌은 이미 생명을 다했다. 갯벌과 함께 그 지역의 어민들은 삶의 터전를 뺏겨 살길을 찾아 떠나야 할 지경이다. 오는 25일, 11월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어민들은 급한 마음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 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다.
바다 건너 일본은 지난 8월 주민들의 생존과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이사하야만에 벌이려던 간척공사를 중단했다.

방조제, 사람들을 내쫓다
“마을 사람들이 인근의 공원조성 공사장이나 쓰레기 분류 처리장에서 날품을 팔고 있습니다. 그나마 공원조성공사는 9월말이면 끝나요. 마을 이장으로서 다른 데 일자리 알아봐주는 일이나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안국동 걸스카우트 회관. 발표를 하던 문영호(군산시 옥서면) 내초도 이장은 끝내 울먹이고 말았다. 4공구가 막히면서 죽뻘이 쌓이고 아예 갯벌로 들어갈 수 없게 되면서 마을이 폐허가 돼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감정을 복받치게 했을 것이다.
새만금 시민생태조사팀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내초도 앞바다는 경운기 바퀴가 뻘에 빠져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퇴적이 심하다. 갯일밖에 할 줄 모르는 주민들은 다른 바닷가 마을로 집단 이주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논 농업직불제를 실시하는 마당에 논 만드는 간척사업은 의미가 없다”며 “4공구를 터서 갯벌을 살리면 우리는 살수 있다”고 울먹였다.
계화도 어민인 염정우 씨 역시 “홍수 때 염분농도가 낮아져 백합이 폐사하고 있다”며 “방조제가 우리의 노동을 빼앗아갔다”고 울분을 토했다.
갯벌 뿐만 아니다. 바다 일을 하는 어민의 삶도 마찬가지로 위협을 받고 있다. 계화포구에서 만난 ㅈ씨(38)는 “물막이 공사 뒤에 전어가 전혀 안 잡힌다, 며칠 동안 구경도 못했다”며 “특히 좁은 구간만 터 놓으니까 물살이 급해지면서 큰 어선이 뒤집히기도 하고 생합 잡으러 나온 사람이 쓸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마직막 희망을 찾아오는 사람들
그래도 물막이를 터놓아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는 계화도 살금갯벌은 뻘이 쌓이기는 하지만 아직 갯냄새가 여전하다. 갯벌 지평선에 불그래한 해가 걸릴만 하면 수십대의 경운기가 줄지어 갯벌을 빠져 나오는 장관이 펼쳐진다. 갯사람 냄새도 여전하다.
최근에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바닷가에 천막트럭이 며칠간 머물다 가곤 한다. 뒷칸에서 숙식을 해결하는지 살림살이와 옷가지가 가득한 트럭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천막트럭들은 갯벌에 와서 조개를 잡아 먹을거리를 해결한다고 귀뜸한다. IMF(국제통화기구) 위기 때처럼 경기가 침체되면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들이 찾는 곳이 갯벌이라는 설명이다.
아예 타지에 나갔다가 계화도에 정착하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ㅇ씨(40)는 하던 사업이 망해 수천만원 대의 빚을 지고 빈털터리로 3년전 갯벌에 흘러 들어왔다. 그는 부부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갯벌에 나간 덕으로 지난해 빚을 청산하고 살 집도 마련했다.
황규배 씨(40)는 청주시에서 살다가 지난 6월에 계화도로 들어왔다. 그가 정착하기 위해 계화도로 들어온 것은 벌써 두 번째다. 97년 외환위기 때 다니던 홈페션 업체가 어려워지면서 퇴직했다가 직장을 구하지 못해 5년 전에 한 번 내려왔다.
계화도에서 정착을 하려고 했던 그는 1년 동안 살다가 아내의 요청에 따라 다시 갯벌을 떠났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청주로 가서 배차요원으로 일했지만 너무 힘이 들었다. 그는 “버스 일이 모두 그렇듯이 보수는 약하고 스트레스는 많이 받는다”며 “물막이 공사도 취소됐다고 하고 내가 쓰러질 것 같아 올해 다시 내려왔다”고 말했다.
갯일이 스트레스도 안받고 돈벌이도 낫다는 것이다. 일한 만큼 바로바로 현찰을 만지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계화에 완전히 정착하려고 왔는데 방조제가 막히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예전에 여기서 살 때는 몰랐는데 사는 게 힘드니까 다시 찾아오게 되더라구요. 정말 갯벌이 고마울 뿐입니다.”
수십년 째 살금갯벌에서 살림을 꾸려왔던 주민들에게나 황씨에게나, 재판부와 정부의 입김은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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