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시절에 어린이날을 비롯한 모든 기념일은 라디오에만 나오는 날이었다. 우리는 그런 날들이라서 더 심심하고 무료할 뿐이었다. 내가 어른이 되고 우리 아이들은 아직 어렸을 때, 남매를 데리고 멀리 이동하는 것도 어려웠고, 즐길만한 문화도 없는데다가 읍내는 산과 들마저 멀리 있었다. 당연히 ‘어린이날’이라는 것도 무료했고, 어린이날의 즐거움은 텔레비전 뉴스에만 있는 허구였다.
그런데 이런 부안에서 어린이날잔치를 한다고 하니 얼마나 반갑고 다행이던지. 그래서 남매를 데리고 행사장을 찾아 갔다. 그게 벌써 18년 전인가! 워낙 특별한 날이었기에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예나 지금이나 바람 많은 고장이라서 봄날 아침의 고요하고 따스한 짧은 시간이 지나자 회오리바람이 누비고 다닐 만큼 운동장엔 ‘어린이날큰잔치’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아이들도 어른들도 많지 않았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들과 그의 가족 정도. 잔치라는 말자체가 갖고 있는 즐겁고 흥분되는 분위기와 달리 운동장은 엄숙하고 차분했다. 민주화의 열망이 꽃피기 시작하던 때인지라 잔치의 주제도 ‘통일과 민주’였던 것 같다. 가족 모두가 낯선 것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성격을 지닌 우리가족은 다른 사람들과 별로 어울리지 못해 잔치마당의 바깥에서 어색하게 겉돌았다.

이렇게 시작한 어린이날큰잔치가 올해로 열여덟 번째다. 해마다 행사가 거듭되면서 거칠고 엉성했던 내용들도 점차 다듬어지고 촘촘해졌다. 몇 해 전에 한 교육장님은 면단위 지역의 아이들도 이 잔치를 즐길 수 있게 해달라며 교육청 차량 지원 등 물심양면으로 협조해주었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여러분들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여 오늘의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어린이날큰잔치로 성장했다.

올해 어린이날큰잔치에는 원불교와 한 공간에서 잔치가 진행된 때문인지 이천여 명의 아이들이 찾아와 즐겼다. 예년에 없이 코너마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솜털 보송한 고운 얼굴에 노란 나비를 그린 천사 같은 아이들은 느릿느릿 걷는 거북의 등을 타보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노란 보아뱀을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만져보기도 한다. 군것질 거리 별 것 없던 어린 시절 국자 한두 개 안 태워 본 적 없는 어른 들이 더 설레는 표정으로 긴 줄을 늘이던 달고나(띠기) 코너도 즐거움이 넘실대고, 부풀어 오르는 풍선과 풍선 닮은 솜사탕을 만드는 달큰한 냄새가 잔치집의 분위기를 달구기도 한다. 그리고 노란 햇살 속에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마당의 놀이들도 신바람이 난다.

한편 강당에서는 잔칫집의 들뜬 분위기와 달리 차분하고 진지하다. 며칠 뒤에 오는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께 진지하게 감사의 마음을 작은 엽서에 적고 있는 고사리 손들의 아름다움을 무엇과 비길 수 있으랴! 한지를 이용해 손거울을 만들고 작은 건빵을 이어붙여 그림을 그려보고…….
어르신들의 묵향 같은 사랑과 정신이 가득 담긴 가훈을 받는 아이들은 글씨를 써주시는 어르신들만큼이나 거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 집 남매는 춥고 변덕스런 날씨와 타고난 수줍음으로 어린이날큰잔치를 어색하게 즐기다 이젠 청년이 되었다.
남매를 데리고 잔치 마당의 바깥을 심심하게 겉돌던 나도 어느 해부턴가 이 잔치 속으로 들어와 올해도 무사히 잔치를 끝내고 녹초가 된 즐거운 몸으로 어린이날큰잔치를 평가하고 반성해 본다.
“어린이날큰잔치 마당의 곳곳에서 끝없이 터지는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은 웃음은, 어른들의 배타적인 이기심과 욕심마저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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