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까지만 해도 면소재지마다 사진관이 있었다. 이곳에 들어서면 안쪽으로 나무와 달과 육모정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만나고 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기는 근대 문화 행위의 하나였다. 결혼이나 회갑, 돌 등의 집안 행사에 사진 찍기는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의례였다. 과거에 당골들이 집안 행사 때마다 비손(간소한 상을 차려놓고 두 손을 비비면서 기원하는 가장 간단한 무속의례-편집자)을 하고 참여했다면, 이제는 순간을 포착하여 근대를 파는 사진사들이 집안 행사에 단골(?)이 되고 이들이 있어야 격이 생겼다.

이 사진은 70년대 초의 고등학생들과 친구들 사진이니 이제는 이들도 50대 중반은 되었을 까. 어느 집이나 서랍이나 앨범을 들추어보면 ‘우정’이니 ‘변치말자’는 등의 글귀가 새겨진 흑백 사진 한두 장 쯤은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찍고서 쓴 글은 ‘잊지 못할 벗들 행여나 변할손가’다. 나이 들어 세상이 변하고 가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도 결코 변치 말자는 굳은 맹세이다. 이들의 삶이 그 뒤에 어떻게 변하고 젊은 날에 했던 약속을 지금도 지켜가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중요한 것은 변치말자고 약속한 사진을 볼 때마다 젊은 날의 우정을 다시 확인하고 미소 짓게 한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다. 동구 밖을 넘어 들려오는 풍물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고향은 고향이다. 옛날 맛과 추억을 더듬기를 바라지만 고향도 산업사회의 흐름에 떠밀려 많이도 변했다. 이리 저리 길이 뚫리고 갯벌을 없앤 새만금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부안 지도를 한참이나 바꾸었으니.

고향엔 무엇이 남아 있을까? 눈을 감으면, 야트막한 집, 당산나무, 무서운 상여 집, 채전 밭, 땀내 나게 뛰놀던 사금파리가 흩어진 고샅, 흙 담 구멍 여기저기에서 꽃뱀들이 출몰하고, 부스럭 소리에도 여지없이 짖는 검둥개, 옆집 할아버지가 새벽마다 길게 뽑는 구슬픈 구음, 해거름이면 이제 고만 놀고 ‘밥 먹어라’ 부르시는 어머니 목소리, 멱 감고 쌈질하다 다시 친해지고 손이 꽁꽁 얼도록 얼음 지치던 동무들….

정재철(백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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