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에너지대안센터 대표

부안의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부안군민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부안의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진정한 운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끝났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 일어날 여러 운동의 촉매 역할을 한 것이다.
반핵의 열기를 에너지전환운동으로
부안의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여러 가지 새로운 운동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발판을 딛고 이미 독립언론운동이 시작되었다. 희망 섞인 것이긴 하지만 앞으로 주민자치운동, 다양한 풀뿌리주민운동, 에너지전환운동 등 다양한 운동이 나올 것이다.
이들 운동 중에서 내가 부안에서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열기를 이어받아 꼭 좀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에너지전환운동이다.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벌이는 동안 부안에서는 우리사회에 아주 주목할 만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부안은 핵폐기장뿐만 아니라 원자력발전, 그리고 더 나아가서 현재의 원자력과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수급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새로운 에너지 정책,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수급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렇다면 이제 저항이 승리로 끝난 마당에 부안에서 무언가 에너지 전환을 위해 실천적인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좀더 큰 이름을 붙인다면 부안 에너지독립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안에서는 200일도 넘게 촛불집회를 하며 핵폐기물이, 핵발전이 없어지기를 기원해왔다. 에너지전환운동, 에너지독립운동은 바로 이 기원을 현실로 만드는 운동이다.
독일에 셰나우라는 인구 3천명의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10년쯤 전부터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의 주목을 받는 곳이 되었다. 그 이유는 마을 주민들이 핵발전소에서 전기를 받아다가 판매하는 전기회사를 몰아내고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전기회사를 설립해서 마을에 원자력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전기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적어도 전기는 에너지 독립을 이룩한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독립의 사례가 독일 전역에 알려지면서 독일 곳곳에서 그리고 세계 여기저기에서 마을의 에너지독립운동을 보고 배우기 위해서 이 마을을 방문하고 있다. 부안에서 에너지독립운동이 성공하면 우리도 독일의 셰나우와 같은 지역, 여기저기에 알리고 자랑할 수 있는 곳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에너지 독립 없이 평화도 없다
에너지 독립은 단순히 태양에너지나 풍력을 가지고 깨끗한 전기를 만든다는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니다. 독립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만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기는 전국민의 필수품이다. 식량이나 물과 마찬가지로 없으면 정말 살기가 곤란해지는 것이 바로 전기에너지이다. 게다가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기는 식량이나 물보다 더 어렵다. 식량은 직접 농사를 짓고 물은 지하수를 뚫거나 빗물을 정수해서 얻을 수도 있지만 전기에너지는 웬만해선 그럴 수 없다. 그런데 이 전기에너지를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력이 독점생산, 독점공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은 이 독점기업, 에너지권력을 독점한 한국전력이나 한수원이 주는대로 받아먹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종속되어 그들이 원자력전기를 주면 주는대로 받아 쓸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에너지 독립이란 바로 이들에의 종속, 이들의 에너지권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에너지 독립이란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다. 어떤 권력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는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종속은 민주주의를 저해한다. 우리가 핵발전소를 돌리면서 중앙에서 에너지 생산과 공급을 통제하는 에너지 권력에 종속되어 있다면 그 사회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이제 어떻게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큰 것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힘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작은 것부터 시간을 길게 잡고 일을 진행해가야 할 것이다. 우선 태양광발전기를 여기저기 설치하고, 그러는 가운데 힘이 더 모이면 풍력발전기도 설치하면서 서서히 원자력전기를 몰아내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운동도 물론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이라면 성공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태양광발전기는 값이 매우 비싸다. 한 집에서 쓸 수 있을 만큼의 전기를 만들어내려면 2천만원 이상의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100집이면 20억, 1000집이면 200억이 들어가는 엄청나게 큰 사업이다. 전기요금이 비싸다면 2천만원 들여서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해서 10년이나 20년 동안 전기요금 안 내고 지낸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겠는데, 전기요금이 얼마 안 되니 2천만원 들이는 것은 너무 손해다. 그렇다면 이 운동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에서 태양광 전기를 15년 동안 1킬로와트시에 716원이란 비싼 값에 팔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놓은 덕에, 잘만 하면 10년 안에 본전을 뽑고 나머지 5년 동안 수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2천만원 들이면 일년에 3300킬로와트시(kWh)의 전기가 나온다. 이걸 716원씩에 팔면 236만원이 들어온다. 이자계산 안 하면 9년 안에 본전을 뽑을 수 있다. 나머지 6년 동안 해마다 236만원이 들어온다면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 우리에게 주어져있다.
태양광발전기 설치운동 벌여야
그렇다면 우선 태양광발전기 설치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임으로써 에너지 독립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에게 2천만원이란 돈은 꽤 부담되는 액수일 것이다. 마음은 있어도 액수가 커서 쉽사리 할 수 없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이들은 약간의 지원금이라도 주어지면 움직이기가 조금 쉬워질 터인데, 이러한 지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에너지 독립 지원기금>을 마련하는 사업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돈으로 2천만원 중에서 400만원 정도라도 지원해주면 더 많은 사람에게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권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에너지 전환은 현재의 세계 에너지 상황, 이라크전쟁, 기후변화 등을 고려할 때 아주 시급한 과제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에너지 전환을 시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광주나 대구가 스스로 솔라시티라고 부르면서 태양광발전기를 조금 설치하고 있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대부분 중앙정부에서 나온다. 시민들의 운동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지지부진하고,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한다. 파급효과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안에서 자발적인 운동으로써 에너지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에너지를 전환하면 누구나 와서 보고배울 수 있는 곳이 생기는 것이다. 부안이야말로 이러한 모범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알맞은 곳이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