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중: 우선 지역 발전이라고 할 경우 그 발전의 개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개 부안 발전을 말하면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에 치중한다. 그러나 이제는 영적이고 정신적인 발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발전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가령 물질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정신과 문화가 성숙되지 않았을 때 발전이 아닌 퇴보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핵폐기장을 반대한 큰 이유가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가능했다. 이 역시 경제발전이 판단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는 외부 지원과 사업 유치는 우리를 후퇴시킬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면서 발전의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현재 김종규 군수가 격포 다기능항 개발 등 돈으로 지역을 들쑤시며 다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 스스로가 새로운 발전의 개념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면 또 다른 분열과 파괴가 이어진다. 돈이 발전이 아닌 퇴보의 역할을 하게 된다.
사적인 얘기를 하자면, 지금까지 텔레비전 없이 살아왔는데 아이들이 컴퓨터와 텔레비전에 익숙해지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봤다. 그런 물건들이 없을 때도 잘 놀던 아이들이 지금은 하물며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무서워하던 옆집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간다. 아이들이 물질적 혜택을 보면서 정신적으로는 빈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부안 발전에 대한 고민도 그러한 면을 경계해야 한다.
고영조: 발전의 개념과 관련해서는 하변호사가 부유함 보다는 풍요로움의 차원으로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그와 관련해서 구체적으로는 부안에서 주민자치운동을 해 나갈 주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 내부에서부터 논의돼야 한다.
1년 반 동안 우리의 화두는 생명과 평화였다. 그에 근거한 주민자치여야 한다. 생명운동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남성과 여성간의 왜곡된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 평화도 자연과 함께 인간의 내면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토대 위에서 주민자치가 이뤄져야 한다. 단순한 참여뿐만 아니라 철학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까지의 지역발전 전략은 농촌 문제를 도시와 비교하는 것에서 출발해 농촌의 기술적 낙후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농촌의 발전 과제가 도시를 따라 잡는 것으로 설정돼 왔다. 그렇게 착각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문제로 발전의 동력을 외부에서 개발의 주체를 외부 자본으로 설정하는 데 있다. 위에서는 핵폐기장 주고 돈까지 주는데 왜 안 받는지 모르겠다는식의 사고 방식이 있다. 이러한 하향식 발전 방식은 큰 문제다. 영광의 경우 12조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는데도 낙후돼 있다. 지역의 종속적인 발전은 지역 운명을 외부에 의존하게 만들고 파괴적 결과로 이어진다.
임덕규: 여성이자 농민의 입장에서 말하고 싶다. 부안항쟁 과정에서 모두들 여성의 힘에 굉장히 놀랬다. 14년간 여성농민회 활동을 한 사람으로서 여성 농민들이 지역의 가장 큰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이면서 생산자로서 먹거리까지 만드는 그녀들의 역할은 위대하다. 지난 2년간 부안의 여성들 특히 할머니들이 보여준 모습에서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겨울 추위에도 방한 용구와 방석 등 시위용품을 챙겨 넣은 ‘핵폐기장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승리를 이끌었던 힘이다.
또한 우리에겐 등교거부 투쟁이 있었는데 이제는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원 출신 깍쟁이다. 남편은 농촌 출신인데 농촌에서 살아 온 사람의 감수성은 따라 올 수 없는 것이다. 부안에 내려와 살면서 아이들에게 두 번 다시 살 수 없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이곳에 살게 하고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래서 부안을 청소년들이 계속 살고 싶은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보통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면 아이들을 전주로 많이 보낸다. 그럴 경우 부모는 한 달에 백만원 가량 교육비로 지출한다는 얘기까지 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힘들게 지내는 상황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같이 공부하고 이곳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자.
신상규: 내가 태어난 이곳에서 54년간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핵폐기장이 지역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변산면의 경우 지역 발전을 얘기하며 한편으로는 주민들과 이장 사이에 갈등이 만들어졌다. 최근에 면장이 갑자기 이장을 복수 추천하라면서 골라 쓰겠다는 심사를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주민들의 의사는 중요치 않다는 말이다.
또한 실제 지역 발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지역의 경우 관광지로써 불멸의 이순신 촬영 셋트장, 채석강, 내소사 등이 있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입장료와 주차료 등 관광 수익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모른다. 관광이익은 주민들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또 한 예로 500억의 사업비로 격포 다기능항을 건설한다며 가족호텔 개발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기존의 숙박업소를 놓아두고 왜 그런 대형 사업을 벌이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 즉 개발 이익이 주민에게 얼마나 혜택으로 돌아오는 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주민들과 대화 없고 의견 수렴 없는 행정을 더 이상 허용하면 안 된다.
최동호: 생각의 큰 틀을 갖고 있으면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게 돼 있다. 핵폐기장 반대투쟁은 전 군민의 관심이었고 생존권이 달려 있어 함께 힘을 모아왔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새로운 전환점과 기로에 서 있다. 자치 역량을 어떻게 모아 가느냐에 따라 시민사회단체나 정부마저도 부안을 주목할 것이다. 진정한 자치능력을 가지고 이 싸움을 주도하고 이끌어 가는 문제가 중요하다. 과연 우리가 그런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는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통해 정보와 문화를 공유해 왔듯이, 그런 역할들을 지역 대안언론인 부안독립신문이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치 역량을 기를 수 있는 방법과 방향이 잡혀야 한다. 그래야만 싸워온 사람들과 찬성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당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큰 틀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자기 이해관계를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그런 세력까지 포괄할 지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주민자치는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돼야 한다. 스스로 부안을 사랑하고 외부적으로는 부안을 제대로 알리는 길이 제대로 잡혀야 한다. 그것을 위한 시스템도 정비돼야 할 것이다.
하승수: 향후 과제에 대해 많은 말씀 들었다. 다만 사회운동의 경험에서 공통의 목표가 있을 때하고 일단락 됐을 때는 얘기가 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런 문제는 어딜 가나 공통적이다. 지속적인 토론과정을 통해서 그런 방향을 함께 잡아 갔으면 한다. 세부적으로 의견이 달라도 지역 현안에 대해 최소한의 합의 같은 것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전의 개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환경파괴나 주민들을 이간질시키는 발전은 이제 반대할 것이다. 이견의 다양성을 존중해 가며 전체적인 부안의 모습을 그려나가야 한다. 희망적인 얘기도 많이 들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얘기들이 부안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생각한다.
서복원기자 bwsuh@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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