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지난해의 불행은 다 사라지고 행복만 가득하라는 말 가운데 “ 닭이 우니 새해의 복이 오고 개가 짖으니 지난해의 재앙이 사라진다”라는 덕담이 있다.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명을 알리는 닭은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민간에서는 믿고 있었다.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序曲)으로 받아들여졌다.
윤동주는 ‘별똥별이 진데’라는 시에서 “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짓내몰아 동켠으로 훠언히 새벽이란 새로운 손님을 불러온다”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한반도에 언제 닭이 자생하게 되었는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대부터 닭을 길러온 것으로 전해진다. 문헌상에 삼한시대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훨씬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닭이 본격적으로 한국문화의 상징적 존재로 나타나게 된 것은 「삼국유사」에서 혁거세와 김알지의 신라 건국신화에서이다. 알영이나 김알지 같은 나라 임금이나 왕후가 나타날 때 서조(瑞兆, 상서로운 조짐)를 미리 보여주는 새로 닭이 표현되어 있다. 닭을 숭배하는 풍속은 고구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무용총 천장에도 닭이 한 쌍 있고, 인도에서 고구려를 계귀국이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천마총을 발굴했을 때 단지 안에 수십 개의 계란이 들어 있었고 또 신라의 여러 고분에서 닭뼈가 발견된다. 능 속에 계란과 닭뼈가 들어 있었던 것은 저 세상에 가서 먹으라는 부장식량일 수도 있고, 알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이 재생?부활의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문헌기록 뿐만 아니라 천마총의 달걀껍질이나 지산동고분의 닭뼈, 백제 고배 속의 달걀껍질에서 알 수 있듯이 닭은 일찍부터 중요한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닭울음은 천지개벽을 다룬 제주도 무속신화 천황본풀이 서두에서 ‘혼돈(chaos)에서 질서(cosmos)로의 이행’이라는 우주적 차원의 질서를 예고한다. 김알지 신화에서는 나라를 통치할 인물이 탄생했음을 알리며, 흰닭은 빛의 상징으로 자연상태의 사회에서 국가적 체계를 갖춘 단계를 예고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밤에서 아침으로의 자연 시간적 이행을 의미한다. 닭은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존재이다. 예고내용이 빛이기 때문에 닭은 태양의 새이다. 그래서 닭 울음은 다양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닭의 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시보(時報)의 역할을 한다. 시계가 없던 시절 새벽 시간은 닭의 울음소리로, 날씨가 흐린 날이나 밤시간은 닭이 횃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시간의 흐름을 파악했다. 유시(酉時)는 오후 5시에서 오후 7시로 배치한 것도 바로 닭이 횃대에 오르는 시간에 맞춘 것이라고 한다. 특히 흐린 날 오후 주부들의 저녁시간 가늠은 닭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알았다. 수탉은 정확한 시각에 운다. 그래서 그 울음소리를 듣고 날이 새었는 지를 알 수 있었고, 조상 제사를 지낼 때는 바로 이 닭울음 소리를 기준으로 뫼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


닭그림은 세화(歲畵)로서 호랑이, 용, 개, 사자 그림과 같이 정초에 액을 없애고 복을 부르는 의도로 그려져 대문이나 출입구에 붙였다. 축귀와 벽사의 동물로 닭을 상정한 것이다.
「포박자(抱朴子)」 등 중국문헌에도 귀신을 쫓기 위해 닭의 그림을 붙이기 전에 닭을 직접 문에 매달았다고 한다. 닭의 피에 영묘한 힘이 있다고 믿어 닭피를 문에 바르고, 후에는 죽인 닭을 매달았다. 마을에 돌림병이 돌 때에는 닭의 피를 대문이나 벽에 바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의 그림을 걸었다. 닭은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닭 볏은 관(冠)을 쓴 모습이다. 관은 학문적 정상과 벼슬을 하는 것과 같다. 특히 닭의 볏과 벼슬은 같은 발음이다. 닭과 함께 맨드라미, 모란을 함께 그린다. 닭의 볏과 맨드라미의 모습이 비슷하다. 이는 관 위에 관을 더하는 것으로 최고의 입신출세를 의미한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고, 수탉이 길게 우는 모습은 공명을 의미하다. 수탉, 즉 공계(公鷄)의 ‘公(공)’과 ‘功(공)’, 길게 운다는 ‘鳴(명)’과 ‘名(명)’의 음이 같은 데서 착안해 공명(功名)이 된다. 수탉이 모란과 만나면 부귀공명을 기원하는 의미가 된다.
봄날 갓 깨어난 병아리가 어미 닭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그림이 있다. 이는 오복(五福) 가운데 하나인 자식 복을 염원하는 것이다. 예전에 자식이 많다는 것은 큰 복으로 여겼다. 닭그림은 이처럼 입신출세와 부귀공명? 자손번창을 기원하면서 선비의 서재에 걸었던 것이다.
2005년 을유년 닭의 해는 ‘어둠 속에서 여명을 알리는’ 서조의 해답게 복되고 안녕을 희구하는 한 해로 기록되기를 기원한다.
이향미 기자 isonghm@ibuan.com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학예연구관의 「여명(黎明)?축귀(逐鬼)의 닭(酉)」발표문 참조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