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생님께.

들판은 푸른 모들로 녹음의 바다입니다. 산 언저리 홍싸리는 져가고요. 교정에 핀 능소화는 여름 화단의 금메달감입니다. 참고로 능소화는, 화단의 대부분 꽃들이 진 뒤에 홀로 고고하게 피었다 질 때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통꽃 그대로 떨어지는 꽃이라나요. 능소화처럼 살다 가신 한 분이 떠올라 잠시 가슴이 아려옵니다.

엊그제였지요. 학교 식당에서 ‘짜장’밥을 드시는 선생님 옆에 뒤늦게 엉덩이 붙이며 짜장을 비비면서 선생님께 버릇없이 여쭸지요. “낼모레 정년퇴임 하시는데 교육 경력이 총 몇 년이나 되세요?” “40년 반!” “우리 학교에는요?” “33년 반!”

아, 40년, 요즘 아이들 말로 ‘쩝니다’였습니다(‘쩐다’는 대단하다, 훌륭하다, 그런 뜻으로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먼저 일어나 식판을 들고, 초연히 피아노 건반의 높은 음자리를 걷는 뒷모습은,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훔치고 싶었습니다. 평교사로 40여년을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아이들 악기 지도하고, 퇴임을 바로 앞둔 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열정적인 모습은 제 교육 경력 20년만에 눈으로 맛보는 오르가즘이었습니다. 상큼한 ‘비타민 포도맛 솔라 씨’(선생님이 후배 교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였습니다.

뇌성마비 딸아이 때문에 염려가 많을 거라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이런 민정이를 다른 집에 보내지 않고 우리 집으로 보내 사랑으로 보살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들었습니다.

신앙 없는 제가 은혜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선생님은 역시 고수였습니다. 무릎 제대로 꿇고 한수 배우고 싶었습니다.

식당 앞에 수북하게 자란 강아지풀이 여름 햇살에 푸르렀습니다. 미국자리공, 회양목, 참빗살나무, 주목나무, 단풍나무 어린 잎들이 여름 햇살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행사장에서 선생님께서 열창하셨던 ‘청산에 살리라’라는 노래 기억합니다. 내내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교정 곳곳의 푸른 나무들을 보면서 선생님의 교직을 떠올렸습니다. 힘에 부친 일들도 많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선생님은 청산처럼 의연하고 꼿꼿하게 헤쳐갔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워낙 정정하셔서 아직도 선생님의 정년퇴임이 실감이 안 갑니다.

족구할 때 체력은 ‘왕짱’이었습니다. 배구 역시 젊은 저희들이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먼저 타임을 외쳐야 했고요. 이제 족구장에서 선생님의 발로 찍어 누르는 스파이크를 볼 수 없고, 음악실에서 피아노 치며 열정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능소화 질 때 처연히, 그 분 가실 때처럼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 떠나려니 아이들이 자식같이 소중하고 더 사랑스럽다는 말씀 가슴 깊이 새겨야겠지요. 선생님이 보여준 교육에 대한 정직한 실천과 열정은 저희 교단의 비타민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쭉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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