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트기 시작하면 자명종을 마취해 놓은 것처럼 잠에서 깨곤 한다.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면서 오늘을 시작하기 전에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하루를 설계하기 시작 한다.

우선 거울 속에 서 웃어 보기도 하고 찡그려 보기도 하고 입을 크게 벌려보기도 한다. 그리곤 상쾌하고 기분 좋게 오늘 하루를 열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혹시라도 기분 상할 일이 있으면 성내지 말고 웃자,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과 언행은 삼가자고 다짐한다.

밖에 나가 논두렁에 풀약 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준비물이 만만치 않다. 약통, 풀약, 바가지 등등을 챙겨서 차에 싣고 나선다. 뿌연 안개 속에서 풀약을 주기 시작하면 검붉은 태양이 온 대지를 삼킬 것처럼 비춰 오기 시작하고, 내 몸에선 허기가 온다. 뱃속의 아우성을 들으며 한두 통 더 주고 집에 오면 아침밥이 꿀맛이다.

또다시 풀을 베기 위해서 예취기에 휘발유와 씨씨오일을 25대1로 섞고 출발한다. 풀을 베다 보면 흙도 튀기고 돌도 튀겨서 장화를 신고, 눈을 보호하기 위한 보안경을 꼭 써야 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몸이 노곤해진다. 잠시 쉴까 생각하지만 산더미 같이 많은 일거리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이 있다. 모내기 할 논에 물이 적당히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 논 저 논을 다니다 보면 하루에 60킬로를 운행하기도 한다. 기름값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분들도 많다. 농약을 하기 위해서는 트럭이 꼭 필요한데, 정부의 유류값 대책을 묻고 싶다.

마지막 로타리를 치기 위해서 논에 들어가 모판을 논두렁에 올려다가 다시 논에 넣는다. 이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허리, 다리, 안 아픈 데가 없다. 해가 서산에 걸쳐서 황혼을 남기면 하루를 마감하자는 신호가 온다. 이때쯤이면 농부들의 몸은 녹초가 되고, 어둠과 함께 귀가를 한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줄무늬잎마름병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계화면은 일조량이 길어서 타 지역에 비해 조생종 벼를 많이 경작하는데, 20년 만에 찾아온 줄무늬잎마름병으로 인해 1천5백평 당 5백만 원 정도 나오는 수익이 1/3로 격감해 150만원 밖에 나오지 않는 농가가 있다. 심지어 쌀이 3가마 밖에 나오지 않은 농가도 있다. 평년에는 3~4번 정도 하면 되는 농약을 줄무늬잎마름병을 방제하기 위해 10~12번까지 하니 농약값도 못 건진다.

이러다 보면 농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임차농은 더욱더 심하다. 나라에서는 농사를 지으라는 것인지 포기하라는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부의 대안은 없는 지 묻고 싶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는지, 아니면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되었는지, 없어도 될 사람이 되었는지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내일은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며 나만의 공간으로 스며든다. 내일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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