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전북도청 앞에서 부안군의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제공 / 한빛핵발전소 대응 호남권공동행동
지난 20일 전북도청 앞에서 부안군의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제공 / 한빛핵발전소 대응 호남권공동행동

한빛 1·2호기 수명연장 방사선환경평가영향서 초안 주민공람

 

핵발전소 수명연장 주민의견수렴 절차인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 시작

 

주민 안전 대책 부재, 최신기술 미반영 

문제 많은 엉터리 평가서 지적 나오지만

3차례 보완 요구에 뚜렷한 답 못 듣고

행정소송에 굴복하며 주민 공람 시작해

 

평가서는 일반인이 해석조차 쉽지 않아

실질적인 주민 의견 제시하기는 어려워

수명연장 자체에 대한 찬반 의견은

낼 수 없는 허울뿐인 주민의견 수렴

 

주민 안전·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 절실

 40년 수명을 다해 중단을 앞둔 노후 원자력발전소인 한빛원전 1, 2호기의 본격적인 수명연장 절차가 시작되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안군이 방사선환경영향평사서 내용을 두고 세 차례 의견을 제시했으나 한수원으로부터 변변한 답변도 듣지 못하고 한수원이 세운 일정에 따라 초안 공람과 주민 의견 접수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부안군이 ‘들러리 노릇에 주민의 안전을 외면했다’는 비판과 함께 ‘노후 원전 수명연장 반대’의 목소리가 시민과 환경단체로부터 나왔다. 

부안군은 지난 6일부터 수명연장 절차인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을 시작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한빛원전 1·2호기 수명연장을 위해 방사선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원자력안전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주민 의견수렴을 위한 공람을 해야 한다.

군에는 한빛원전 반경 20~30㎞에 들어가는 보안·변산·진서·줄포·위도면 등 5개 면이 비상계획구역으로 지정됐으며 해당 면민들을 대상으로 주민 의견수렴이 진행된다.

이번 공람은 지난 6일부터 오는 3월 25일까지 48일간 시행되며 공람 장소는 군청 5층 안전총괄과 사무실과 보안·변산·진서·줄포·위도면사무소로 방문해 초안을 열람할 수 있다.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등에 대한 의견이 있는 주민은 공람 시작일부터 종료된 후 7일 이내까지 의견을 작성해 공람 장소로 서면 제출하면 된다.

한수원은 지난해 10월 부안군에 평가서를 제출하고 공람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안군은 평가서를 검토한 결과 기재 오류와 주민보호대책 부재 등을 이유로 3차례에 걸쳐 한수원에 보완 요구를 했다. 

부안군 관계자는 “우리가 평가서를 검토했을 때 주민보호대책을 비롯해 충분히 들어가지 않은 내용들에 대해 3차례에 걸쳐 한수원에 보완을 요구했지만, 한수원 측에선 작성 규정을 근거로 작성했다며 지자체에서 검토할 사항은 항목별로 작성 요령에 맞게 작성됐는지만 검토해주면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전했다.

부안군은 할 만큼 보완 요구도 하고, 공람을 연기하며 제 역할을 했지만, “그건 당신네가 신경 쓸 부분 아니니 목차대로 제대로 작성됐는지만 보라”는 식의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족할만한 답변을 듣거나 원하던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부안군은 공람을 진행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무책임한 결정이다.

이번 한빛1·2호기 수명연장과 관련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공람을 해야 하는 대상 지자체는 전북 부안과 고창을 비롯해 전남 영광, 함평, 무안, 장성까지 6개다. 이들 지자체 중 고창군과 함평군은 여전히 공람을 진행하지 않고 있으며, 부안군은 지난 6일, 영광군은 지난 1월 25일부터 공람을 시작했다. 

수개월째 버티던 지자체들이 하나둘 공람을 시작한 배경에는 한수원의 행정소송이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 영광군은 행정소송 제기 직후 공람을 결정했고, 부안군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번 주민공람을 둘러싸고 주민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방식의 한계, 평가서 자체의 부실함 등 다양한 지적이 제기됐다.

공람장에 놓인 초안 원본. 전문용어로 가득한 방대한 분량의 자료다. 일반인이 한 자리에 서서 읽어보고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진 / 김정민 기자
공람장에 놓인 초안 원본. 전문용어로 가득한 방대한 분량의 자료다. 일반인이 한 자리에 서서 읽어보고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진 / 김정민 기자

먼저 평가서 초안을 살펴보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일반인이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전문용어가 가득한 방대한 자료를 한 자리에서 읽어보고, 이에 대한 평가나 의견을 내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수명연장에 대한 찬반 의견은 개진할 수 없으며, 평가서 내용 자체에 대한 평가 의견만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명연장은 기정사실이며, 관련해서 주민들의 의견은 요식행위로 수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평가서 내용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자연재해로 인해 핵발전소가 파괴되는 심각한 중대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그러나 이 평가서에선 이 같은 중대사고 발생을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또 세계적으로 거듭된 핵발전소 사고를 바탕으로 계속 강화되는 제도와 개발된 최신기술을 반영하지도 않았다.

40년 전 한빛 1·2호기를 건설하던 당시와 결정적으로 달라진 주변 여건인 핵발전소 밀집 상황 등도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1호기부터 4호기까지 폭발한 후쿠시마 사례를 보더라도 한 번의 사고로 밀집된 핵발전소가 연쇄적으로 사고를 일으킬 수 있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의 심각성과 성격에 따른 주민들의 대피 요령이나 보호 대책 등이 전혀 실리지 않았다. 방사선에 따른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내용에 방사선 피폭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나 가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엉터리 평가서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도 한수원 측은 “평가서 초안은 규정에 따라 작성했다”, “지자체가 보완을 요구한 기술적인 내용은 지자체 검토 사항이 아니며, 지자체 검토범위는 규정의 항목별 작성 요령에 따라 작성됐는지만 확인하는 것에 한정된다”는 등의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수원은 지난 1월 16일 평가서 초안에 대한 주민공람을 보류하고 있던 부안군을 비롯해 고창군, 영광군, 함평군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하는 등 물리력 행사도 서슴지 않고 있다.

또 공람을 홍보한 어느 지자체의 공무원들에게 선물을 제공하거나, 공람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선물을 지급하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등 한수원은 ‘당근과 채찍’을 활용해가며 초안 공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양새다.

이렇듯 한수원이 엉터리 평가서를 내밀고 공람을 강요하며 수명연장을 위해 애쓰는 통에 버티다 못한 부안군이 무책임하게 공람을 진행하며 수명연장 절차의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부안군의 공람 시작을 비판하며 철회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빛핵발전소 대응 호남권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지난 20일 전북도청앞에서 “부안군이 한수원의 한빛 1·2호기 수명연장 들러리를 서고 있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을 철회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행동은 “부안군청은 한수원에 요청한 보완사항과 한수원의 보완 내용에 대한 자료를 요구해도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지자체가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될 수 있는 한빛핵발전소 수명연장 문제에 대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한 태도“라며 ”주민 의견수렴에 적합하지 않은 결함·부실투성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해 공람하지 않을 마땅한 권한과 주민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포기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빛원전 1호기는 지난 2019년 제어봉 고출력 상황이 발생하면서 자칫 제2의 체르노빌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지역을 불안감에 휩싸이게 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발표했던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국내 핵발전소 격납건물 공극과 부식에 대한 전수 조사 결과, 방사능 누출을 막는 역할을 하는 내부철판 부식이 한빛 1호기는 2330개, 2호기는 1508개로 다른 발전소에 비해 월등히 많이 발견됐다. 한빛핵발전소 1~6호기 전체 사건·사고 중 57%가 한빛 1·2호기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으며, 현재 운영 중인 25기의 국내 핵발전소 사건·사고 중에서도 17%가 한빛 1·2호기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렇듯 40년에 걸쳐 수명을 다한 노후 핵발전소인 한빛 1·2호기의 위험성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절차상 시작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주민 공람은 되돌릴 수 없다. 공람이 시작되면 아무도 참여하지 않더라도 주민의견수렴 절차는 마친 것으로 간주하는 맹점이 있다. 

따라서 부안군의 주민 공람 실시는 한수원의 한빛 1·2호기 수명연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발 늦었을지언정 이제라도 낡고 위험한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막아 군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부안군이 제 역할을 하고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