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혜영 / 솔바람소리문학회
기혜영 / 솔바람소리문학회

만경대교는 속도를 줄이게 한다. 어머니의 기억 때문이다. 다리 위로 달이 떠오르는 날이면 더 그렇다. 만경대교 옆에는 지난 시절을 고스란히 간직한 새챙이다리*가 있다. 지금이야 새로 건조된 만경대교로 차량통행을 하지만 1989년까지 그 옆 오래된 새챙이다리는 김제에서 대처로 가는 주 통로였다. 

멀쩡한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추레해지는 것처럼 새챙이다리도 세월이 흐를수록 옛 위용은 사라지고 달이 휘영청 떠오르는 밤이라도 되면 물결에 위태로이 흔들린다. 비록 난간은 녹슬고 다리 곳곳이 패어 있지만 여름밤이면 삼삼오오 강바람을 찾아 나선 사람들을 달빛추억에 젖어 들게 한다.

오래된 다리임에도 철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나처럼 만경강을 따라 들고 나는 추억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행정의 배려(?)인 듯 하고, 가끔 달빛을 끌어올리는 낚시꾼들을 위한 처사인 듯도 하다. 그렇든 저렇든 강물을 따라 달빛이 사그라지면 오싹한 기억 하나가 내 깊은 곳에서 스멀거린다. 

어머니는 방학이 되면 자식들을 친척집에 나누어 보냈다. 입 하나라도 덜 요량이었겠지만, 열 식구가 넘는 가족들 건사에 지친 어머니에게 자식들 방학은 잠시나마 휴식의 시간이었지 싶다. 

할아버지 댁에는 손밑 동생과 막내가 갔고 외가에는 오빠가 갔다. 나는 이모 집에 간 적도 있지만 주로 오빠와 함께 외가에서 지냈다. 조막 걸음으로 외가에 가면 외할머니는 살뜰히 챙겨주었다. 하지만 물 냄새에 대한 기억이 스멀거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시오리 강변을 따라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날, 마당가에 피워놓은 모깃불의 매캐한 연기가 멀리까지 퍼지고 있었다. 평상 아래로 밥상이 나뒹굴어져 있었다. 어머니를 지척에 둔 반가움은 얼음처럼 굳어졌다. 풋감 떨어지는 소리만 정적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빠듯한 살림에 한 달이 멀다 하고 돌아오는 제사 때마다 부모님의 언성은 높았다. 손이 큰 어머니는 자식들 입성을 위해 제사 장못짐을 한 보따리씩 해왔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씀씀이를 매번 나무랐다. 어떻게든 자식들만은 대처에 있는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어머니 고집 때문에 월사금을 낼 때가 되면 조용할 날이 없었다. 때문에 내 유년의 윗목에는 늘 시름시름 앓는 창백한 달이 떠있었다. 

어머니는 평소 속상한 일이 생기면 강에 나가 바람을 쐬다 오곤 했다. 아버지와 언성을 높인 그날도 어머니는 대문을 나섰다. 나는 걱정이 되어 서너 걸음 뒤에서 어머니를 따라갔다. 달빛을 걷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힘겹게 끌리고 있었다. 새챙이다리 위에 뜬 달도 강물에 흔들리고 있었다. 강바람은 어머니 치맛자락을 흔들었다. 바람도 치맛자락도 한순간 멎을 때 나는 두려웠다. 거적때기에 덮여 돌아온 이웃집의 초상이 떠올랐다. 강물 소리에서 흐느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강물과 달을 한숨으로 번갈아 보다가 걸음을 돌렸다.

어머니가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새챙이다리를 걷는다. 이 다리를 건너 어머니는 시집을 왔고 나 역시 이 다리를 건너 결혼을 했다. 살아가며 나는 내 안의 새챙이다리에서 어머니처럼 얼마나 많이 번민했었던가. 어머니가 새챙이다리 위에서 강물에 떠내려가는 달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걸음을 돌렸던 것처럼 나 또한 결혼을 하고 친정집 대문 앞까지 갔다가 걸음을 돌려세우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도 어머니처럼 새챙이다리에 한동안 서 있곤 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은 똑같은데 어머니는 새챙이다리처럼 낡았다. 황반변성으로 흐릿한 어머니의 달이 떠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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