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편집인
김종철 편집인

LH직원 ‘땅 투기’의 책임자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새해엔 좋은 소식만 들었으면 했다. 한데 지방과 농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 후퇴하고 정부 예산마저 대폭 삭감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디로 가는지, 이러다 진짜 최악을 보는 것은 아닌지 싶었다. 정권 바뀌고 한두 번이냐, 그러든지 말든지 하던 중 지난 9일 부안군 의회가 채택한 하나의 건의문을 보고 잠을 설쳤다. 내가 들은 새해 소식 중 가장 최악의 소식이기 때문이다.

부안군 의회가 지난 1월 9일 채택한 건의문은 ‘농지거래 활성화 대책 마련 촉구 건의문’이다. ‘활성화 대책’이라는 달콤함이 묻어 있지만, 이 건의문은 농지법을 과거로 되돌릴 것을 요구하는 퇴행의 독만이 담겨 있다.

기억하겠지만, 2021년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땅 투기’ 사태가 불거졌다. 무엇보다 투기의 대상 토지가 농지라는 데 사회적 반향이 컸다.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그해 8월 17일, 「농지법」, 「농어업경영체법」, 「농어촌공사법」 등 이른바 ‘농지투기방지 3법’이 개정 공포됐다.

LH 사태로 개정된 듯 보이지만, 사실 농민들의 계속된 요구가 기저에 있다. 법률 개정 전에 낸 전국농민총연맹의 성명서에는 ‘경작계획서만 제출하면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농지법은 경자유전의 원칙에 반하는 법률이다’라며 허술한 농지법이 농지를 투기 대상으로 만든다는 점을 지적해 개정을 요구했다.

그만큼 개정된 농지법은 사회적 합의와 함께 농민들이 요구하는 경자유전이라는 원칙에 한 걸음 나아간 변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반대한 국민도 있었다. 사적 자유를 과도하게 규제한다는 원론적 지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농지를 투기 대상으로 삼아 이익을 보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런 과정에서 개정된 농지법을 두고 잘못된 개정이라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낸 지방자치단체 의회는 부안군의회가 처음인 듯하다. 부안군의회가 낸 건의문은 농지법을 LH 사태 이전으로 되돌려놓을 것과 더불어 3년 이상 소유한 농지만 농지은행에 임대할 수 있게 한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유는 건의문 서두에 나와 있다. “(개정된 농지법이) 농촌지역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소멸 위기 속에 그나마 인구 유입으로 작용하던 귀농·귀촌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가 이유다.

식량을 생산하는 공공재적 성격이 있는 농지를 단순히 재산권으로 국한해 침해 여부를 따지는 것도 불편하지만 농지 투기를 막는 제도가 인구 유입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밑도 끝도 없다. 주장에 따른 최소한의 근거가 제시되고 합당한 논리가 있어야지만 건의문 어디에도 뒷받침할 문구는 찾을 수 없다.

이 밖에도 다양한 주장이 나열됐다. 이 역시 각각에 따라야 할 근거는 찾기 어렵다.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이자 입법기관인 의회가 내놓은 건의안인가 싶을 정도로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의회의 정책지원관이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에도 무리가 없다. 

개정된 농지법이 ‘국민의 공분을 키운다’거나 ‘고령자의 농지를 팔기 어려워져 노후안정 대책을 위협하고 있다’ 등의 주장은 실소마저 나왔다. ‘그러니까 농지를 투기 자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몇몇 투기 세력의 욕망을 현실화하기 위한 저렴한 협박성 문구에 가깝다.

부안군의회는 이 같은 과거로의 퇴행을 넘어 올해 8월 시행을 앞둔 새로운 투기 방지 제도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농민의 삶과 밀접한 농지법을 두고 해보니 문제가 있어 원상회복하자는 것을 넘어, 해보나 마나 결과는 뻔하니 폐지하자고 부안군 의회가 주장하는 셈이다. 물론 국회가 이 주장을 심도있게 고민할지는 논외다.

이 제도는 농지를 3년 이상 소유한 자만이 농지은행에 위탁임대 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세금 절세의 방편으로 이용되던 농지은행 제도를 막아 단기성 투기 자본의 유입을 방지하는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더 큰 효과는 농지은행에서 올해 시행하는 농지이양 은퇴직불금과의 연계다. 3년이라는 최소한의 소유와 영농 조건을 갖추면 농민 퇴직금도 받을 수 있고 신규 농이나 청년 농의 정착에도 도움이 될 제도로 평가된다. 이렇듯 1석2조의 효과가 예상되지만, 부안군 의회는 ‘귀농·귀촌에 제동이 걸리고 이는 지방소멸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며 사실상 악법으로 규정했다.

부안군의회가 예외적인 자발성을 발휘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정책을 막아서고 과거로의 회귀를 요구하고 있지만, 경자유전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농지법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의 경우 자경하는 자만이 농지를 구매할 수 있는 허가제가 실행 중이다. 농지 거래가격이 지역 평균보다 높을 때 매매를 불허하는 가격통제 제도도 있다. 농지 임차는 최초 계약 시 9년이 기본이고 연장해도 6년씩 한다. 임차료도 시행령으로 정해져 있다. 

독일도 농지거래와 취득이 허가제다, 스위스와 달리 농업인이 비농업인보다 우선해 구입하는 우선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농지 매매 가격이 정상 시세보다 50%이상 높으면 토지거래법에 의해 거부될 만큼 정부 차원의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는 농지매매가 자유로운 반면, 이용에 대한 규제가 강하다. 임차료는 수입에 따라 도지사격 관청이 금액을 정한다. 어기면 처벌한다. 경작허가제도가 있어 특정인이 과도하게 경작 규모를 확장하지 못한다. 이른바 ‘생활 가능 경작면적’이라는 최소 면적을 보장해 소농을 보호한다. 모든 농지거래를 관리하는 SAFER라는 기관도 운영한다. SAFER는 선매 권한이 있어 제시된 가격에서 우선 매입이 가능하다. 이렇게 구입된 농지는 주변의 영세한 영농인 등에게 전매된다. 2000년도 자료에 따르면 SAFER의 토지 중 40%가 영농정착에 제공되고 28%가 영세농의 규모화에 쓰였다. 다수 선진국이 한국보다 강한 방법으로 농지가 농민에게 이용되도록 한다

반면 규제를 완화해 농업 현실이 암울하다고 지적되는 나라도 있다. 바로 대만이다. 대만은 매매도 자유고. 농지 분할도 자유며. 농지임대차 규제도 약하다. 특히 소작농을 보호하는 제도인 삼칠오소작제(전년도 생산량의 37.5%를 임대료로 정하는 제도)도 2000년에 폐지했다. 소유제한 규제도 없앴다. 농업보다는 공업에 치중하는 정책을 중시한 탓이다. 이러다 보니 농업경영 규모가 1ha에 못 미치는 농가가 80%에 달한다. 농업의 규모화나 기계화도 요원하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업 소득보다 농지전용 소득이 더 크기 때문에 보유에만 집중돼 있어 휴경농지가 늘고 있다. 그 결과 대만은 식량자급율은31%에 그쳐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하게 됐다. 

이번 건의안은 사실상 메아리 없는 외침에 가깝다. 지방의회가 법을 만들거나 개정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건의안을 관심 있게 다뤄야 할 까닭은 의원들이 바라보는 시선이나 관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견제의 방향이 달라지고 집행부의 변화로 이어져 농업정책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부안군의회가 농지법 개정을 원상 복귀하라고 요구한 것처럼 부안군민으로서 이번 농지거래 활성화 대책 마련 촉구 건의안을 회수하길 건의한다. 길은 달라도 목적지는 경자유전이라는 한 곳인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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