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씨
이지혜 씨

카톡이 울린다. 미옥이다. 미옥이와는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왔지만 잘 어울려 다니지는 않았다. 무슨 일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시지를 열어본다. 하얀 어깨선을 드러낸 신부가 수줍은 듯 레이스 소매를 가슴으로 모은 채 신랑을 올려다보고 있는 청첩장이다. 

예전에 우편, 인편으로 받았던 도톰한 종이 청첩장은 점점 과거의 시간 속으로 잊혀가고, 시대가 시대인만큼 모바일 메신저로 발송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간도 절약되고 물자도 아낄 수 있어 경제적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아직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세상이 스마트해질수록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결혼식 날짜를 살핀다. 

미옥의 소식은 그간 소식통 친구인 동창회장에게서 드문드문 전해 듣곤 했다. 미옥이는 갓 스물을 넘긴 즈음에 결혼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동창 중에서 가장 먼저였다.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고, 그 직장에서 만난 상사와 인연이 된 모양이었다. 십 년의 나이 차를 무색하게 한 것은 남자의 성실성과 미옥에게 들인 정성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찍 가정을 꾸려서인지 다른 친구들보다 취학과 졸업, 취업과 결혼 등 뭐든 빠른 편이어서 장녀에 이어 이제 차녀까지 출가를 시키는 것이다. 

평소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라면 휴대폰으로 날아든 청첩장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텐데 갑작스럽기는 하다. 물론 딸의 결혼식 준비로 마음이 바쁜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청첩장을 보내기 전에 최소한 전화 한 통이라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것도 예식 사나흘 전에 보내온 건 우리 전라도 말로 좀 거시기하다. 친구인 나도 그렇거니와 웃어른들에게는 좀 더 신중하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한두 자녀뿐이지만 옛날 자녀가 여럿인 집에서 경사 때마다 알려오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다 차츰 첫째만 알리는가 하면 근래에는 몇몇 지인만 초청해서 간소한 결혼식을 치르는 예도 있다. 경조사비를 주고받는 일이 세상사 인지상정이기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서로의 정을 나누기보다는 되갚아야 하는 부채 의식이 슬그머니 고개 드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진심 어린 축하나 애도는 어디 가고 형식만 요란스러운 예식들로 부산을 떠는 모습들이 아직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자신이 뿌린 부조금이 회수되지 않으면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그러니 축의금, 조의 봉투만 보내고 식장에 가지 않는 게 혼주·상주를 도와주는 거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렇게 웃지 못할 소리를 주변에서 전해 듣노라면 축하와 위로의 의미가 날로 퇴색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곱씹으며 휴대폰 화면 속 청첩장을 다 읽어내려가니 혼주의 계좌가 보인다. 시대가 어떻든 간에 미옥이와 소원한 사이이기는 하나 이 또한 관계의 삶이려니, 축하의 마음이 계좌번호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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