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오영/솔바람소리문학회
전오영/솔바람소리문학회

“방세와 생활비와 이런저런 공과금 등을 제하고 나면 언제나 봉투는 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침묵의 냄새가 그리울 때면 습관처럼 헌책방에 간다. 오늘도 다녀왔다.”

위의 글은 내가 삼십여 년 전 청계천 중고 책방에 갈 때의 마음을 적어 놓은 일기의 한 부분이다. 그 시절, 월급날이면 현금이 든 봉투를 사무실에 들고 온 상급자는 한 사람씩 호명하여 봉투를 나눠주곤 했다. 지폐가 담긴 봉투의 두께와 상관없이 그 안에선 이런저런 기대들이 새어 나오곤 했다. 의상실 앞을 지나면서 봐 두었던 옷을 사고 싶기도 했으나 누런 월급봉투를 들고 맨 먼저 찾아간 곳은 중고서점이었다.

책방거리에 들어서면 오래된 책 냄새가 먼저 맞아주었다. 두세 평 남짓한 가게마다 천장까지 책이 쌓이고도 모자라 노끈에 묶인 책들이 문 앞에 탑처럼 쌓여 있던 그 거리는 허름하였으나 활기찼고 친근함이 잔물결처럼 일었다. 그런 느낌 때문이었는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누렇게 변해가는 책과 만나는 일은 늘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그러나 헌책방에 올 때마다 선택되지 못하고 굵은 노끈의 묶음에 갇힌 채 방치된 책들을 보면 괜히 안쓰럽고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선지 나는 유독 헌책들에 눈길이 가곤 했다. 

나는 그때, 노부부가 운영하는 책방에 단골로 갔었다. 애초 고향을 연상시키는 ‘고향서적’이라는 간판에 이끌려 갔는데 서글서글한 그분들은 인상이 편안했다. 단골이 된 내게 종종 차를 한 잔 내주기도 하고 자녀들의 이야기며 자신들의 지난 삶을 말해주기도 했었다. 객지 생활의 외로움 짙은 내게 부모님처럼 다정했던 분들이었다. 때문인지 지금도 어디서든 헌책을 보면 그리움처럼 그분들이 생각나고 습관처럼 코를 벌름거리게 된다. 

재수가 좋은 날은 희귀본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횡재라도 한 것처럼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책 중에는 ‘배영사’에서 발간된 『삐아제의 인지발달론』이란 번역서이다. B. J. 왈스워즈가 쓰고 정태휘가 번역한 책으로 세로로 쓰인 데다 한자와 영어가 많아 읽기에 좀 부담되었으나 책 냄새와 색깔 때문에 구입했었다. 누렇다 못해 붉은 색감이 도는 이 문고판의 정가는 450원이라 쓰여 있고 실제로 450원을 주고 산 기억이 있다. 가끔 헌책처럼 정겨웠던 노부부의 얼굴이 떠오르거나 옛것이 그리울 때는 지금도 이 책을 펼치고 냄새를 맡아보곤 한다. 

최근에 서울 병원에 다녀오다가 청계천을 찾았다. 기억을 더듬어 그 헌책방을 찾았으나 기억 속 서정은 간데없고 큰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수험생, 직장인 등 얇은 지갑으로 시간을 쪼개어 찾았던 사람들의 표정과 뒷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다행히 몇 군데 헌책방이 있었으나 그마저도 예전처럼 정스럽지 않고 규격화된 느낌이 들어서 낯설었다. 인터넷 책방이 대세인 요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책 냄새를 맡으며 책을 고르던 시절은 아득한 옛일이 된 것만 같다. 그러니까 산 자와 죽은 자 구분 없이 뒤섞이고 연결된 내 기억 속 헌책방은 박제된 풍경이 되었지 싶다.

오래전 지인의 소개로 『달마』를 접하고 난 이후 철학의 숲을 두서없이 거닐었다. 지금도 미로를 헤매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때로는 철학 속에서 문학을 읽고, 때로는 문학 속에서 철학을 읽는다. 그럴 때마다 개성을 지닌 활자들의 고독이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 울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무언의 논쟁을 할 때도 있고 손을 맞잡고 사유의 터널을 거닐기도 한다. 수백 년 전 혹은 수천 년 전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그곳은 사유의 방이다. 언젠가 보흐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호명하여 침묵에 들기도 했다. 흐라발은 2차 세계대전 소련의 체코 점령기 프라하의 지하실에서 수십 년간 책과 폐지를 압축 파쇄해온 주인공 한탸를 통해 파쇄는 또 다른 생성을 위한 소멸의 과정이라 말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책과의 만남을 시끄러운 고독으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그 고독은 고독이 아니라는 역설이 흐른다. 말하자면 홀로 있음 안에서 우주를 만난다는 『금강경』 속 문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러고 보면 책 속에는 책이 없는 듯하다. 그곳엔 오래된 침묵만이 있을 뿐. 누렇게 고인 침묵을 편다. 기억의 냄새가 마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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