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면 우덕마을의 유용덕(84) 어르신에겐 아주 오래된, 그리고 특별하고 값진 추억의 물건이 있다. 바로 그가 60년여 전 군 생활을 하며 만들었던 군대 생활 회고록이다.

우덕마을에서 태어나고 쭉 자라온 유용덕 어르신은 군대 생활을 하던 때를 제외하면 한 번도 고향을 떠나 살아온 적이 없다. 고향에서 떠나 2년 7개월 정도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또래 병사들과 살았던, 강원도 산골에서 치렀던 군대 생활의 기억들이 이 회고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1965년 11월 충남 논산훈련소에 입대한 그는 기초 훈련을 마친 후 부산에 위치한 육군화학학교에서 6개월을 교육받았다. 

이어 그의 군생활의 대부분이었던 강원도 홍천의 11사단에 배치받았고, 최전방의 포병대대에서 잠시 근무하다 화학참모부로 옮겨가 부대의 서무일을 맡는 행정병으로 근무했다.

유용덕 어르신이 자기만의 독특한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옮겨 적어둔 글
유용덕 어르신이 자기만의 독특한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옮겨 적어둔 글

1968년 6월 제대하기까지 30개월 15일을 꼬박 근무했다는 유용덕 어르신의 설명에는 날짜 하나까지 틀리지 않고 기억이 선명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60여년 전의 기억을 불러오는 데도 흐트러짐이 없다는 사실은 그때 손수 만들었던 기록물을 지금껏 보관해온 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기도 했다.

군생활이 기억에 남고 함께 했던 이들과 사이가 좋았다는 유용덕 어르신은 제대를 기념해 함께 생활했던 전우들로부터 일괄된 양식으로 손 편지를 받았고, 회고록에 담아뒀다.

1960년대에도 활발한 마을활동으로 전국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담은 신문기사를 스크랩해두기도 했다.
1960년대에도 활발한 마을활동으로 전국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담은 신문기사를 스크랩해두기도 했다.

회고록에는 신문기사 스크랩, 글귀, 책을 보다 들었던 생각을 남긴 짧은 소감문, 전우들의 편지 등 다양한 자료들이 들어있는데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보기 드문 것들도 남아있어 신기했다.

회고록의 상당 부분은 군 생활을 하며 다른 지역의 여성들과 펜팔을 하며 받았던 편지들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그가 한 사람과 펜팔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먼저 한 명은 당시 군인이라면 누구나 즐겨 봤다는 전우신문의 ‘펜팔란’에 나왔던 서울에 사는 여성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함께 근무하는 병사와 같은 마을에 사는 어떤 여성으로 전북 진안에 있던 사람이다. 유용덕 어르신의 회고록에는 진안에 살았다는 여성과 주고받은 편지가 더 많은데, 편지는 원문이 아니라 그가 자필로 모두 다시 옮겨 써서 보관하고 있다.

한창 젊은 군인이 군 생활 중 여성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를 보관하는 것은 전혀 흠이 될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유용덕 어르신은 입대 전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슬하에 자식까지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이 그 당시 알려졌더라면 가정 내 큰 문제가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저 놀랍고 색다른 에피소드로 이해해볼 수도 있겠다.

유용덕 어르신이 회고록에 옮겨 적어 둔 결혼식 당시 청첩장. 당시 시대상까지 옅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유용덕 어르신이 회고록에 옮겨 적어 둔 결혼식 당시 청첩장. 당시 시대상까지 옅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그리고 유용덕 어르신이 결혼하던 당시 하객을 초대하기 위해 보냈던 청첩장도 회고록에 들어있다. 이것도 손글씨로 직접 써서 남겨뒀는데, 20대 초반의 그는 무엇이든 기록하고 남겨두는 것을 참 좋아했던 이였던 것 같다. 결혼식을 축하하는 축사와 그에 대한 답사도 모두 함께 있어 오래전 결혼식의 풍습까지도 살짝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가 될 것 같다.

유용덕 어르신은 “뭐 이런 개인적인 기록이 특별한 이야기가 될까 싶지만,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기록이고 누구한테 꺼내 보여준 적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내놓고 보여주기 어려웠던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자료들이 담겨 있는 어르신의 회고록. 개인의 젊은 날 역사라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 결국 지역의 역사가 되고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표지부터 내용의 모든 자료들을 펜글씨로 손수 정성스럽게 적어 보관했던 그의 회고록 ‘MEMOIR’는 그렇기에 지역의 역사가 담긴 회고록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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