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 서림공원 유아숲체험원에서 유아숲지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서림공원을 매일 산책하며 식물과 곤충 그리고 새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운 서림공원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연재합니다.                                                                         글쓴이 말

벚나무 밑에 떨어진 나무 조각(왼쪽)   참나무 잎에 붙어있는 알(오른쪽)
벚나무 밑에 떨어진 나무 조각(왼쪽)   참나무 잎에 붙어있는 알(오른쪽)

 

 며칠 전 직박구리 한 마리가 사무실 앞에 왔다. 경계심이 많아 좀처럼 사람 가까이 안 오는데 신기해서 뭘 하나 뚫어져라 쳐다보니 나무로 만들어놓은 잠자리 모형을 먹으려고 계속 쪼아대는 것이 아닌가. 새들에겐 최고의 영양식인 곤충이나 애벌레가 귀한 요즘 직박구리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잠자리를 먹으러 온 것이다. 몇 번을 쪼아보고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아님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아차렸는지 곧 날아가 버린다. 오늘 보니 잠자리 모형은 온데간데없고 나무막대기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잠자리를 신나게 물고갔을 직박구리가 실망했을 걸 생각하면 안타까우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온다. 진짜 같은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세상에 대한 쓴웃음 말이다. 

잠자리 모형을 사냥중인 직박구리
잠자리 모형을 사냥중인 직박구리
직박구리가 지은 4층집, 빨간 화살표가 가장 최근에 지은 집이다
직박구리가 지은 4층집, 빨간 화살표가 가장 최근에 지은 집이다

초여름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딱따구리 소리가 요새 다시 잦아졌다. 번식 철도 아닌데 왜 이리도 열심히 집을 만들까. 또 왜 이리 여러 개 만들까 궁금하다. 자기 집 한 채 갖는 것도 어려운 서민들에겐 마음만 먹으면 집을 지어대는 딱따구리가 부러울 것 같다. 지나가다가 벚나무 밑에서 나무 조각이 무더기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만든 지 얼마 안 된 딱따구리의 집이 있다. 딱따구리는 벚나무의 죽은 기둥에 무려 4층 집을 지었다. 한 나무 구멍과 나머지 구멍이 자세히 보면 색이 달라 어떤 것이 최근에 지어진 집인지 알 수 있다. 사람은 1층부터 건물을 쌓아 올리지만 이 딱따구리는 높은 층에서부터 아래로 집을 짓는다. 딱따구리는 이 집에서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을까?

곤충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요즘 숲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특히나 겨울을 나는 곤충들은 종류에 따라 알, 애벌레, 번데기, 어른벌레로 낙엽이나 나무, 흙 밑에서 겨울을 보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심코 내딛는 몸짓으로 수많은 곤충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는다. 참나무 아래 낙엽을 조심스레 걷어본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알이다. 둥글고 납작한 모양에 털이 나 있고 가운데 움푹 들어간 정공(精孔)이 있다. 주변 낙엽도 걷어보니 같은 모양의 알이 많이 보인다. 얼마 전 이런 알들이 붙어 있는 참나무 잎을 봤었는데 낙엽이 되면서 알도 함께 바닥에 떨어진 것 같다. 참나무 잎을 좋아하는 노린재류가 아닐까 생각된다. 대부분 노린재가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는 것과 달리 몇몇 노린재는 알로 겨울을 난다고 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아닐까. 다음으로는 번데기다. 길이가 500원 동전 지름은 될 것 같은, 곤충 중엔 큰 녀석이다. 이 녀석은 내년에 어떤 모습으로 날개돋이할지 궁금하다. 관찰한 뒤 원래대로 흙과 낙엽을 잘 덮어주었다. 

수국잎 사이에 있는 집게벌레 두 마리
수국잎 사이에 있는 집게벌레 두 마리

수국의 잎 사이엔 집게벌레 두 마리가 있다. 곤충의 생존전략 중 하나가 가사(假死) 상태에 빠지는 것인데 말 그대로 가짜 죽은 상태이다. 이 모습은 곤충을 관찰하다 보면 종종 볼 수 있는데 건드려도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이는 죽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을 느꼈을 때 실제로 기절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겨울에도 역시 이 가사 상태로 겨울잠을 잔다. 길게는 6개월 동안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어야 하는 곤충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생리작용이다. 앞으로는 겉보기에 멀쩡한데 죽은 듯 가만히 있는 벌레를 보면 섣불리 그 곤충의 생사를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참나무 밑에서 발견한 알
참나무 밑에서 발견한 알

내가 숲에서 가장 친해지기 어려운 것이 곤충이다. 숲에서 일하기 전만 해도 벌레는 징그럽고 혐오스럽고 무서운 것으로 여겼기에 처음 숲을 공부할 때 가만히 있는 나무, 멀리 있는 새, 예쁜 꽃부터 관심이 갔다. 그런데 요새 곤충이나 벌레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놈이 그놈 같고 어려운 곤충 이름을 지루하게만 느꼈던 내가 벌레를 보면서 귀엽다고 한다. 살아있지만 나와 너무나 생김새가 다른 벌레들의 매력을 벌레가 겨울잠을 잘 채비할 때 알게 된 것이다.

기다리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 학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딸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 붕어빵 집에서 어묵 국물을 먹으며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기다리는 마음, 봉숭아 물이 손톱에 잘 들기를 기다리는 마음. 그중 으뜸은 생명을 기다리는 마음일 것이다. 해가 가고 따뜻한 봄이 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곤충들이 기다려진다. 내년엔 곤충 친구들이 내게 말 걸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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