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 솔바람소리문학회
김효순 / 솔바람소리문학회

은행 문을 밀고 들어서자 현금자동인출기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화면을 몇 번 터치한 뒤에 “원하시는 거래 버튼을 선택하십시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후 비밀번호를 노출되지 않게 하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기기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언제부터인가 기계음에 익숙해지고 있다. 점점 밀키트 판매가 대중화되고 식당에서도 키오스크 앞에서 화면에 집중한다. 정 묻은 주인의 목소리보다 기기 앞에 서서 화면에 보이는 메뉴를 선택하는 일에 친숙해지는 요즘, 집에서 사용하는 소소한 생필품도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그러다 보니 채소를 살 때 말고는 마트에 가는 것도 시장에 들르는 일도 줄어들었다. 현금 사용도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지갑에 지폐를 넣고 다니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웃들과 집을 오가며 지냈다. 김치 담그는 일은 서로 도와가며 했다. 제철에 나는 재료로 특별한 음식을 만드는 날은 모여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성장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만남보다는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문자로 안부를 묻는다. 그것마저도 소원해지면서 연락하는 일도 뜸해졌다. 사람의 감정도 기계처럼 단순해지는 것 같다. 

현금자동인출기에서 찾은 돈을 들고 창구 안으로 들어간다. 번호표를 들고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린다. 벽면 대형 텔레비전에 눈이 간다. 인간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를 움직이는 동체시력을 갖춘 로봇을 개발했다는 뉴스다. 과학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로봇이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로봇에게 무시당했다는 서운함을 느낀다는 내용에서 왠지 공감이 간다. 비록 기계일망정 로봇을 만든 과학자는 창조자로서의 감정이입을 하는 듯하다. 정작 인간 사이는 점점 무감해지는 것 같다.

딩동 알림음이 울리면서 내 차례가 되었다. 직원에게 찾은 돈을 건네며 신권으로 교환해 달라고 했다. 직원은 신권을 건네주면서 입출금을 편리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손바닥 정맥을 기기에 대고 인증하는 바이오인증법이었다. 카드를 소지하지 않았을 때 손바닥을 올려놓고 간편하게 현금을 찾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바이오인증 신청을 하고 나왔다. 

직원의 말에 바이오인증을 하기는 했으나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기계화로 인해 내가 사는 지역의 인구도 줄고 덩달아 공공기관이 줄어드는 현실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이제는 카드 한 장 들고 다니는 것도 번거로움으로 느끼는 세상이다. 

기기 앞에 선다. 무표정한 기계 앞에서 내 표정도 무감해진다. 문득 오래전 일처럼 되어버린 출금 전표를 쓰고 차례를 기다리며 입출금을 하던 그때 사람들의 표정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카드 인출이 아닌 바이오인증으로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선 것이다. 전화번호 아니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인증을 해야 한다는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기계에 내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는 꺼림칙함도 잠시, 기기가 지시하는 대로 손바닥을 올린다. 현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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