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의 유기농 청년 농부로 이뤄진 단체 다잇다잉(대표 임대봉)이 도시 사람들을 초대해 특별한 손 벼 베기 행사를 열었다. 지난 6월 진행한 손 모내기에 이어 한해 벼농사의 시작과 끝을 이제는 볼 수 없는 손으로 직접 해보는 체험을 통해 농업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가다. 

짚단을 쌓아 만든 미끄럼틀은 이날 찾아온 어린이들에게 단연 최고의 놀이터였다.
짚단을 쌓아 만든 미끄럼틀은 이날 찾아온 어린이들에게 단연 최고의 놀이터였다.

품앗이가 필수였던 옛날 농촌의 풍경처럼 수십 명의 일꾼이 한 논에 들어가 저마다 낫을 쥐고 잘 익은 벼를 넘기며 베고, 쌓았다 묶어서 말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추수의 계절과 어울리게 행사엔 음식과 술이 풍성했고, 음악과 웃음도 넘쳤다.

다잇다잉은 변산면을 거점으로 삼고, 농사를 짓는 청년들로 이뤄진 단체로 청년들의 오늘과 내일, 도시와 농촌, 지금과 미래를 잇고자 하는 청년들의 모임이다.

 

이번 행사는 다잇다잉이 지난 4월 선정된 부안군의 공모 사업인 청춘실험실 지원사업의 여러 프로그램 중 한해 농사를 갈무리하듯 올해 이어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을 정리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다잇다잉은 지난 4일 변산면 운산리의 마을 안 논에서 손 벼 베기 행사를 진행했다. 1000평 크기 논에서 일부는 콤바인으로 베어내 벼를 말리고 행사를 진행할 공간을 만들었다. 4~500여 평은 그대로 남겨 손 벼 베기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뒀다. 

 

고사리 손으로 직접 낫질을 하는 어린이
고사리 손으로 직접 낫질을 하는 어린이

먼저 벤 빈자리에는 대나무로 틀을 세워 조명을 설치했고, 손으로 벤 벼를 묶어 널 수 있는 덕장을 만들었다.

이번 행사엔 수도권 등 전국 각지에서 40여 명의 참가자가 색다른 체험을 위해 모여들었다. 참가자 중 일부는 지난 6월 손 모내기 행사에도 참여했던 이들도 있었다. 

다잇다잉이 활동하고, 농사짓는 공간과 농지의 운영자인 변산공동체 관계자들과 행사에 참여하거나 돕기 위해 찾아든 지역 주민을 비롯해 8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2박 3일 동안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다.

전체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된 행사의 첫날인 3일 오후, 참가자들은 숙소를 배정받고, 벼베기를 하는 동안 힘을 북돋기 위해 함께 부를 농부가와 전통 노동가락을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노래는 행사의 흥을 돋우기 위해 초대된 풍물패 살판에서 맡았다.

낫으로 베고, 손수 묶은 볏단을 덕장에 널고 있는 이정기 청년
낫으로 베고, 손수 묶은 볏단을 덕장에 널고 있는 이정기 청년
익숙치 않은 고된 작업 중 새참시간.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농악이 울리니 춤도 절로 난다.
익숙치 않은 고된 작업 중 새참시간.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농악이 울리니 춤도 절로 난다.

 

벼 베기를 하는 4일 아침 흥겨운 농악 가락과 함께 깃발을 앞세워 벼를 벨 논으로 행진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제대로 된 농악 가락과 길놀이에 마을 사람들은 골목으로 나와서 구경했고, “이게 뭔 일이래? 우리 집에도 꼭 한 번 들러주어”하며 초대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낫질과 볏단 묶는 법 시범을 보이며 설명하는 박형진 농부
사람들에게 낫질과 볏단 묶는 법 시범을 보이며 설명하는 박형진 농부

이슬과 안개가 어느 정도 걷히며 본격적인 벼베기가 시작됐다. 낫 놓고 기역자만 모르는 게 아니라 낫질은 정말 할 줄 모르는 참가자들을 위해 수십 년 유기농을 지어 온 변산 모항의 박형진 농부가 강사로 나섰다. 구성진 설명과 능숙한 시범으로 사람들에게 벼 베는 법과, 볏단 묶는 법, 볏짚을 끈으로 만드는 법 등을 설명하며 보는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냈다.

다잇다잉의 청춘실험실 사업을 지원하는 부안군에서도 행사를 격려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권익현 군수는 작업 시작 전 찾아와 손수 능숙한 벼 베기 솜씨를 선보이기도 했다. 권 군수는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 농경문화를 재현하는 행사가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청년들이 앞장서 지역 정착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주길 바란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권익현 군수도 현장을 격려하기 위해 찾아와 능숙한 낫질 솜씨를 선보였다.
권익현 군수도 현장을 격려하기 위해 찾아와 능숙한 낫질 솜씨를 선보였다.

어설픈 솜씨에 비해 베야 할 벼가 너무 많아 보였지만, 사람 손이 무섭다는 말을 증명하듯 서툰 손을 부지런히 놀린 결과 작업은 예상보다 빨리 오전 안에 끝났다.

논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던 풍물패는 벼 베기 중 농부가와 여러 노동 민요를 부르며 사람들의 흥을 돋웠다. 잠시 일을 쉬는 새참 시간 한 잔 두 잔 막걸리가 오가자 금방 풍물 가락과 함께 춤판이 벌어지며 신명 넘치는 장면을 연출했다.

벼 베기가 끝난 논에서는 늦은 오후부터 한판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행사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초대된 운산마을 주민들도 찾아와 함께 행사를 즐겼다.

짚단을 쌓아 만든 미끄럼틀 놀이터는 어린 참가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네모난 짚단으로 의자와 테이블을 만들고, 벼를 널어 말리는 덕장 위로 걸린 예쁜 조명은 이곳만의 정취를 뽐내며 잔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풍물패 살판의 신명나는 농악 
풍물패 살판의 신명나는 농악 
저녁 잔치 시간 멍석을 깔아두니 저마다 노래와 춤을 뽐내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저녁 잔치 시간 멍석을 깔아두니 저마다 노래와 춤을 뽐내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밤이 되니 덕장에 널어 놓은 볏단이 조명을 받아 더 아름답다.
밤이 되니 덕장에 널어 놓은 볏단이 조명을 받아 더 아름답다.

 

마을 잔치에는 항아리바비큐로 풍미 넘치게 구워낸 돼지고기와 함께 인근 파랑장의 농부도시락에서 준비해 준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 이번 행사를 위해 다잇다잉 청년들이 손수 담아 둔 막걸리 등을 맘껏 먹고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공연을 즐기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공연의 시작은 풍물패 살판이 여러 악기의 개인놀이 실력을 뽐내는 구정놀이와, 구성진 타령 등을 선보이며 시작됐고, 자유롭게 노래하거나 춤출 수 있게 마련된 멍석 무대에선 술에 취하거나 분위기에 흠뻑 빠진 참가자들이 저마다 자발적으로 나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며 가을밤이 깊어갔다.

이번 행사는 지난 손 모내기에 이어 우리 농업의 근간인 벼농사의 시작과 끝을 손으로 직접 체험해보고, 기계화로 인해 사라져버린 농촌의 정취를 되살려보는 특별한 기회였다.

오직 이곳에서 다잇다잉만이 준비할 수 있는 특색 넘치는 행사와 매력은 지역의 어떤 축제라 이름 붙은 행사보다도 더 깊은 울림과 즐거움을 갖춘 그야말로 축제다운 축제였다는 평가다.

다잇다잉은 지난 6월 손 모내기 행사를 시작으로, 다양한 청년 유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2주 살이 체험인 ‘변산에 머뭄’ 프로그램은 시골살이와 유기농법에 관심있는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청년들의 정착을 위해 변산면 지동리의 오래된 주택을 전문가와 함께 리모델링할 수 있는 ‘시골집 고쳐보기’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며, 이 공간은 정주를 위한 기반 시설로 쓰일 예정이다. 

이들의 소중한 활동과 서툴지만 묵묵한 발걸음에 하나둘씩 함께 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힘이 모이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 갈 지역의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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