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벼줄무늬 바이러스'(RSV), 애멸구, 벼줄무늬잎마름병에 걸린 벼. 애멸구가 감염된 벼 등을 먹고 바이러스 보균, 애멸구가 벼를 먹는 과정에서 바이러스 전달, 정상 애멸구는 벼를 먹고 다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병충해는 병해와 충해로 나뉜다. 엄격히 구분하면 병해는 화학적 작용에 의한 것이고 충해는 물리적 현상이다. 대표적인 도열병을 비롯한 대부분의 벼 질병은 세균이나 진균에 의한 병해다. 그런데 줄무늬잎마름병(RSV)과 검은줄오갈병(RBSDV)만은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는 병해이자, 동시에 매개충의 흡즙 과정을 반드시 동반해야만 하는 충해이기도 하다. 두 가지 바이러스 모두 애멸구를 통해서 전달되는데 줄무늬잎마름병(RSV)이 보다 많다.

벼줄무늬잎마름병(Rice stripe virus (RSV))은 병명이자 바이러스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RSV는 식물바이러스의 하나로서 크기는 8nm(1nm은 1/10억m)이고 사상형(실 모양)이다. 주로 벼, 보리, 옥수수와 같은 화본과 식물에 영향을 미치며 동물바이러스(예: 감기 바이러스)처럼 자연 감염되지는 않는다. 벼줄무늬잎마름병은 매개충인 애멸구에 의해 감염되기 때문에 애멸구가 없으면 병에 걸릴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직접적인 병원은 애멸구가 아닌 바이러스다. 줄무늬잎마름병은 애멸구라는 매개충과 바이러스, 이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비록 바이러스 질병이긴 하지만 바이러스를 직접 퇴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애멸구를 구제하는 것이 주된 방제 수단이다.

이 병은 사람으로 치면 보균자라고 할 수 있는 보독충이 벼를 갉아 먹는 흡즙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전염함으로써 발생한다. 병에 걸린 벼를 흡즙한 애멸구도 바이러스에 전염되고 다시 정상 벼를 감염시키기 때문에 그 전파는 기하급수적이다. 저항성이 없는 벼가 한번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100% 고사한다. ‘벼 에이즈’ 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보독된 애멸구의 알을 통해서도 유전되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따라서 애멸구의 생존과 번식을 막거나, 벼로 이동하는 길을 차단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줄무늬잎마름병의 발병 요건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주(애멸구가 먹이로 삼는 식물)의 저항성 정도이고 다른 하나는 애멸구의 서식 조건이다. 1970년대부터 국가 정책으로 저항성 품종인 통일벼를 확대하면서 발병률이 떨어졌다가 품종의 다양화 및 쌀맛의 선호도가 높은 일반계 품종으로 전환하면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2001년 서해안 지역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지속적인 피해가 발생하게 된 것은 기후 온난화 등의 생태 조건의 변화가 애멸구의 생존에 유리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애멸구는 매미목 곤충으로서 번데기 시기 없이 총 5회의 탈피를 통해 성충이 된다. 장시(긴날개)형은 3~4mm정도, 단시(짧은 날개)형은 2~3mm 정도인데, 우리나라 논에서 번식을 하는 것은 주로 단시형이라고 한다. 1년에 총 5 세대의 번식 횟수를 갖는데 월동을 하고 난 약충(불완전변태 곤충의 어린 시기)을 1세대로 시작하여 3, 4월에 보리밭 등지에서 2세대가 번식하고 이후 묘판이나 본답으로 이동한다. 7월과 8월 중순에 각각 3, 4세대가 발생하고, 추수기에 한 해의 마지막 세대가 태어나 이후 논둑이나 밭둑의 잡초에서 월동을 한다.

바이러스란?
브리태니커 사전에 따르면 바이러스(Virus)란 살아 있는 동물·식물·미생물 세포에서만 증식할 수 있는 크기가 작고 성분이 간단한 감염성 병원체다. 크기는 지름이 20~250nm 정도이고 모양은 구형, 막대형, 사상형 등 다양하며 외피인 단백질 캡시드와 중심부의 핵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스로 대사와 생식을 못하기 때문에 무생물로 보기도 하고 숙주 속에서 증식을 하기 때문에 생물로 보기도 한다.

숙주를 기준으로 동물성 바이러스, 식물성 바이러스, 세균성 바이러스로 구분하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줄무늬잎마름병(RSV)이 대표적인 식물바이러스이다. 외부에서 잠을 자던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 안에 들어가서 세포 물질들과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숙주세포의 대사활동은 파괴된다. 동물 바이러스의 경우 백신을 맞는 것으로 예방할 수 있으나 식물의 경우엔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진단할 수는 있어도 일단 발병 후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 <황형준 기자>
벼의 저항성이 약한 어린 벼 시기에 감염률이 높으나 지속적인 방제가 없을 경우엔 언제라도 발병 가능성이 있다. 특히 논 주위 환경이 애멸구의 서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온난한 월동기, 보리를 비롯한 주변 기주 식물(갈대, 바랭이, 둑새풀, 포아풀, 줄풀, 강피, 조개풀, 겨풀, 돌피 등)의 풍부함이 애멸구의 증식을 가져와 벼 재배 과정에서의 각 시기에 상관없이 애멸구의 침입에 의한 피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애멸구에 의한 바이러스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벼의 저항성을 높이는 방법과 애멸구를 구제하는 방법을 종합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적시에 모내기를 하고 적정한 비료를 사용함으로써 벼의 저항력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월동처를 비롯해 애멸구에 유리한 서식 조건을 제거하거나 모내기 전 묘판에서 방제약 처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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