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파크 내 산악인 고미영 씨 동상. 김영준 씨 어록비 추진위는 이 동상 주변에 어록비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사진 / 김정민 기자
스포츠파크 내 산악인 고미영 씨 동상. 김영준 씨 어록비 추진위는 이 동상 주변에 어록비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사진 / 김정민 기자

일명 ‘빠떼루 아저씨’ 김영준 어록비
스포츠파크에 3m 높이로 조성 추진 

 

부안군 공공조형물심의위에서 ‘부결’
최근 건립 추진위가 재심의 요청해

 

40대 이하에서는 누구인지도 잘 몰라
평가가 엇갈리는 살아있는 인물보다
‘업적 분명한 인물부터 챙겨야’ 지적도

 “빠떼루 줘야 합니다”라는 레슬링 중계 멘트로 한때 유명세를 탔던 김영준 씨의 어록비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면서 지역 내 찬반 여론이 엇갈리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전 경기대학교 교수였던 김 씨의 태릉선수촌 후배들로 이뤄진 어록비 건립 추진위원회가 이끌고 있다. 추진위는 부안군 스포츠파크 내 3m 크기의 김 씨 어록비를 세워달라고 부안군에 요청했다. 장소는 산악인 고미영 씨 동상 주변으로, 설치에 드는 비용은 추진위에서 모금했으니 장소만 제공해달라는 조건이다.
이에 부안군은 지난 7월 공공조형물심의위원회를 열었으나 위원 다수의 반대로 부결됐다. 하지만 추진위는 최근 재심의를 요청했고 이에 따라 부안군은 하반기 내 다시 심의할 예정이다.
김 씨는 1948년 줄포에서 출생해 줄포초등학교, 줄포중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방콕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수상했으며, 국가대표 감독시절 1984년 LA올림픽에서 유인탁, 김원기가 금메달을 따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김 씨는 메달리스트에, 국가대표 감독에, ‘빠떼루’라는 유행어를 가진 부안 태생의 유명인인 셈이다.
김 씨를 기리는 조형물을 지역에 설치하려는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줄포 주민 일부가 갯벌생태공원에 ‘빠떼루광장’을 설치하고자 했지만, 주민들 간 찬반 의견이 엇갈리며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도 시각은 엇갈린다. 찬성하는 쪽은 ‘반칙없는 세상’을 외쳤던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어록비 조성이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스포츠인으로서 업적과 유명세, 주택공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지역을 위해 물밑 역할을 했다는 비화를 내세우며 이번 계획의 타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지난 7월 부안군공공조형물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찬성 의사를 밝혔던 박병래 의원은 “이분이 반칙없는 세상을 바라는 뜻으로 외쳤던 빠떼루를 줘야 한다는 말도 되새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물론, 본인도 선수로써 그 옛날 어려운 시절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지도자와 해설자로 역할을 했다”며 “주택공사 근무 시절 부안 주공1차 조성, 줄포IC 개설 등 많은 역할을 했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어 문제”라며 이 사안에 정치적인 판단이나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반면, 여러 면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그리고 아직 생존해 있는 인물을 위한 조형물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여전하다. 설령 김 씨의 발언이나 행보가 부안에 유의미했다 하더라도 미래에 어떤 평가를 낳게 될지 알 수 없으며, 그의 성과라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비화에 불과해 섣불리 부안군 공공시설 내에 공식적으로 세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반대의 골자다.
게다가 40대 이하 젊은 층은 “빠떼루 아저씨가 누구예요?”라고 반문할 정도여서, 역사로 남겨 기려야 할 공적보다 지난 시절 한때 불었던 팬덤으로 어록비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지운 김철수 선생이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계화면 돈지의 돈지약방.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가 붙은 채로 쓸쓸한 폐허가 됐다.
지운 김철수 선생이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계화면 돈지의 돈지약방.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가 붙은 채로 쓸쓸한 폐허가 됐다.

한편, 이를 계기로 부안 출신 인물 중 정작 기려야 할 인물은 외면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립투사였던 지운 김철수 선생과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시를 썼던 박영근 시인을 꼽을 수 있다. 
김철수 선생은 독립운동에 투신해 청춘을 보내고 말년에 고향에 돌아와 검소한 생활을 하며 한 몸에 존경을 받았다. 2005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가나 손수 지어 말년을 보냈던 이안실은 지금은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조차 어려우며, 계화면 돈지에 김철수 선생의 딸이 운영하던 돈지약방은 ‘독립유공자의 집’이라는 명패가 달린 채 쓸쓸한 폐허로 방치돼 있다.
부안은 박영근 시인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박 시인은 변산면 마포리에서 태어나 마포초등학교를 다녔지만 현재 고향 마포리는 물론 부안을 통틀어 변변한 시비 하나 없고 기념사업도 전무한 상태다. 
이와는 달리 박 시인의 민주화운동의 공적과 시문단에 끼친 영향력을 일찌감치 눈여겨 본 인천시 부평구는 그가 말년에 부평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2012년 신트리 공원에 시비를 세우고, 지금까지 매년 구청장이 직접 참여하는 기념제를 열고 있다. 부안으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문학사에 우뚝 선 시인 한 분을 다른 지역에 빼앗긴 셈이다.
시비에는 시인의 대표시 ‘솔아 푸른 솔아’ 원문이 육필로 새겨졌고, 뒷면에는 내로라하는 선후배 문인들로 구성된 ‘박영근 시인을 추모하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한 시비건립위원회에서 쓴 건립문이 새겨져 있다.
시각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그것도 아직 생존한 인물을 기념하는 시설물이 급한지, 진정으로 업적을 기억하고 유물을 보존해야 할 우리 지역의 역사적 인물들을 기리는 게 우선인지, 부안이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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