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 부안독서회 회장
이지혜 / 부안독서회 회장

  액자들이 벽마다 빼곡히 걸려 있다. 깎아지는 듯한 바위산의 절경과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의 장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생생함이 티브이 화면을 통해 전해진다. 어떻게 저렇듯 살아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기이한 일들이나 혹은 그런 사람을 소개하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인데 오늘따라 내 눈을 잡아끈다. 동네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초로의 평범한 노인인 그가 무슨 사연으로 산수화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진행자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이십여 년 전 노인의 아들은 골육종이라는 병마와 싸우며 꺼져가는 숨을 간신히 부지하고 있었다 한다.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의 영혼까지라도 바칠 자세로 의술의 힘에 매달렸다. 그러나 무릎 주위에 생긴 암은 결국 중학생 아들의 죽음을 부르고 말았다. 
  산을 에워싼 바위의 위엄이 액자를 넘어 화면을 압도한다. 그의 작품은 다분히 입체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질감을 살리기 위한 재료를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그 재료의 주 소재와 처음 맞닥뜨린 일화는 이러하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술로 긴긴 고통의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예전에 아들과 함께 올랐던 산을 찾았다. 옛일을 회상하며 터벅터벅 걷던 그의 걸음을 세우게 한 것은 소나무 한 그루였다. 그 소나무는 무슨 이유에선지 쓰러져 죽어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죽은 소나무를 바라보다가 죽은 소나무껍질을 주워들었다. 그 마른나무 껍질이 왠지 짠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마 그 자리에 두고 올 수 없었단다. 그리하여 고만고만한 소나무껍질을 집으로 가져오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들고 오는 내내 친구가 생긴 것처럼 가슴이 벅찼다고 한다. 
  그는 죽은 소나무껍질에 생명을 불어넣을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다. 그는 그때부터 우리나라의 빼어난 산 사진을 모아 합판에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구상해가며 하나하나 작업을 이어나갔다. 소나무껍질은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낸 무늬와 질감 때문에 바위를 형상화하기에 그만이었다. 그는 아들을 생각하며 죽은 나무가 우뚝 서 있는 바위로 다시 살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아들 역시 다음 생에서는 늠름한 바위처럼 굳세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랐지 싶다. 
  그는 나무껍질을 붙이기 위해서 뒷면을 매끈하게 손질했고 먼 능선과 근경 처리를 위해 그 모양과 두께에 신경을 썼다. 녹색 톱밥은 푸른 산의 입체감을 드러냈고 소나무의 생명력을 위해 이끼를 썼으며 디테일은 포스터물감으로 채색해 마무리했다. 유리로 덮지 않은 그의 작품은 거친 질감을 직접 만질 수도 있고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희귀병으로 생떼 같은 아들을 잃어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숨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 같다. 노인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아들이 바위로, 소나무로 윤회하여 서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비록 먼지를 많이 뒤집어쓰고 접착제에 손이 성할 날 없지만 혼을 불어넣는 그의 작품에는 정이 배어있는 것 같다. 그래선지 그의 생업인 슈퍼마켓은 마을 갤러리가 되었다. 썩어 사라질 죽은 소나무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곧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며 가시고기 같은 아버지의 사랑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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