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중학교에 전시 중인 용감한 상서 할배들의 상서로운 기억      사진 / 김정민
상서중학교에 전시 중인 용감한 상서 할배들의 상서로운 기억 사진 / 김정민

니은을 사랑한 서예가 김 충 어르신
상서 마지막 이용원의 박송배 이발사
80년대 비디오맨 김춘기 어르신 
60년 전 군대 회고록 유용덕 어르신

 

상서중 학생들과 지역 활동가 힘 모아
어르신들 만나 이야기 듣고 글로 풀어
어르신의 소중한 자료와 함께 전시해

 

상서중 동문회와 면민의 날 행사위해
상서중에서 전시하며 눈길 끌고
11월 중 부안서 한 번 더 선보일 예정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는 믿음으로 지역의 어르신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듣고, 기록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이제는 삶의 전성기를 지나 한창 고령에 접어들었지만, 묵묵히 지역을 지키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렇지만 평범한 상서면의 한 면민이었던 네 할아버지의 삶을 기록하고 보여준 ‘용감한 할배들의 상서로운 기억’ 활동이 갖는 의미다.
이 활동은 부안군문화재단의 2023지역문화전문인력 활동지원 사업의 하나다. 상서면 우덕마을 주민이자 부안군문화재단의 지역문화전문인력인 박후진 씨가 기획한 이번 활동에는 상서중학교의 임수인, 정연우, 신원호, 손태민, 강령인, 박민성, 신지호, 양기웅 여덟 명 학생이 함께했다. 부안독립신문도 학생들과 함께 어르신을 만나는 인터뷰 과정과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작업을 도왔다.
상서중학교는 한때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복작복작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역의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지금은 학교가 가장 조용한 곳이 됐다. 너른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도 없고, 텅 빈 교실엔 고작 2~3명의 학생이 함께 공부한다. 
가장 시끌벅적하고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머물러야 하는 공간인데 오히려 숙연해지는 기분마저 드는 곳이 돼버렸다. 학교도 인구가 줄어들며 활기를 잃어가는 지역과 함께 힘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상서면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으레 상서중학교를 다녔기에 학교 사진 하나쯤은 집집마다 꽂혀있고, 그만큼 많은 추억이 학교라는 공간을 바탕으로 새겨져 있다. 그러나 학교가 만약 사라진다면 그 추억들은 빛바랜 졸업앨범에만 남게 될 것이다.
사라져갈 이야기와 추억을 상서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남기기 위한 작업이었다. 학교와 지역의어르신들은 많은 기억과 추억을 여전히 갖고 있고, 그 이야기를 모아 시간이 지나고, 공간이 사라져도 전해질 수 있도록 지역의 이야기로 엮는 작업이었다.
지난 6월 첫 만남을 시작으로 인터뷰 및 취재 계획을 세우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어르신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만난 이는 상서면 마지막 이발소인 제일이용원을 지키고 있는 박송배(75) 이발사였다. 어려서 이발 기술을 배우고 보안면까지 일하러 다녔던 이야기, 제일이용원을 인수할 자금 마련을 위해 노가다를 다녔던 이야기, 한때 번성했던 상서면소재지에서 사랑방이자 정보통으로 통했던 제일이용원의 추억을 전했다.
두 번째 만남은 회시마을의 서예가 김충 어르신이었다. 김충 어르신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한 번도 학교 문턱을 넘어보지 못했고, 글자도 어깨 너머로 깨우쳐야 했다. 그러다 학교에 다니던 사촌동생이 서예시간에 써온 니은자를 보고 그만 빠져들게 됐고, 그렇게 서예를 시작했다. 홀로 익힌 서예였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실력을 인정받았다. 전국 각지에서 열린 서예 대회에서 입선부터 대상까지 다양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손해보고 나누는 삶’을 추구했기에 그가 썼던 많은 작품들은 대체로 다른 이들에게 선물로 주고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도 부안농업기술센터에 가면 그가 써서 기부한 농가월령가 작품이 액자에 걸려있어 언제든 감상할 수 있다.
세 번째 어르신은 우덕마을의 유용덕 어르신이다. 60여 년 전인 1963년 강원도 홍천에서 군복무했던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회고록을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회고록에는 당시 묘령의 여인과 펜팔로 주고받았던 손편지, 함께 근무했던 전우들이 전역을 축하하며 적어준 질문지, 신문이나 책을 보고 남겨둔 짧은 감상문 등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렇기에 더 흥미로운 자료들이 가득 담겨있다. 자기자식들에게 조차 보여준 적 없다는 회고록이지만 유용덕 어르신은 지역의 다음 세대들과 이를 공유하기 위해 회고록의 페이지를 넘겼다.
마지막으로 만난 분은 양산마을의 김춘기 어르신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자신이 촬영했던 사진과 영상을 컴퓨터로 갈무리해 외장하드에 저장해놓고는 TV에 연결해 한 번씩 열어보는 진짜 ‘얼리어답터’다.
어려서 전자기기를 다루는 기술을 배웠기에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새로운 것들에 호기심이 많았던 그였다.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어깨에 비디오카메라를 지고 모정에서 돼지 삶던 때, 농활 온 대학생들의 풍물공연 등 보기 드문 자료들을 직접 촬영해 지금껏 소장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남기고 한 번씩 열어보고 싶었다는 김춘기 어르신은 누구보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찍혔다. 영상도 꾸준히 촬영했다. 그가 가진 자료들은 초상권 탓에 쉽게 공유하긴 어렵지만, 마을 주민들을 비롯해 지역사회엔 더없이 소중한 것이 분명하다.
어르신들과 직접 만나 육성으로 들은 소중한 기억들과 기꺼이 제공하신 자료들을 갈무리한 전시도 진행됐다. 지난 9월 말 상서중 동문회와 상서면민의 날 행사가 있어 상서중학교 운동장 내에 우선 전시를 했고,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는 후문이다.
이번에 모은 자료와 전시품은 오는 11월 중 한 차례 더 전시 계획을 갖고 있다. 부안군문화재단의 2023 모두의 생활문화 사업 성과 공유회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이번 활동은 함께 했던 학생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고, 지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였다. 임수인 학생(3학년)은 “지역에 그런 할아버지들이 살고 계셨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도 했고, 그런 분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이런 활동을 했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며 “이런 기회를 통해 작은 상서면이 더 많이 알려지고 소통하면 좋겠다. 솔직히 저도 친구들도 활동 중에 간식이 많아서 그게 제일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안군문화재단 시설운영팀 소속의 사업 담당자 박후진 씨는 “상서중 학생들과 함께했던 어르신들의 이야기 수집 활동에 도움 주신 상서중학교와 상서면민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지역 청소년들이 매개자가 되어 어르신들의 삶을 함께 공감하고, 지나온 흔적들을 앨범과 이야기로 기록했다. 이 기회를 통해 지역 내 세대 간 소통이 이뤄지고,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이 좀 더 활성화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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