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북적이고, 함께 일하고 음식을 나누며 시끌벅적하던 시골마을의 정취는 사라져간다. 많은 이들이 이미 고향을 등지고 떠났고, 남은 이들은 늙어가면서 시골마을은 쇠락해가고 있다. 그러나 마을을 지키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마을들이 있다. 부안군 농어촌종합지원센터와 함께 주민들이 뜻을 모으고, 각종 공모사업에 도전하면서 많은 마을이 달라지고 있다. 자기들만의 공동 사업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거나, 마을의 역사를 담은 기록관을 세운 곳도 있으며, 허물어져 가는 낡은 담장을 고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마을 분위기를 완전히 바꾼 곳도 있다. 
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변화를 좇아 부안군 마을사업에 참가한 마을들을 찾아갔다.                                                                                                                                            편집자 말.

우덕초등학교 학생들과 마을 주민이 함께한 마을 풍경 그리기 축제. 마을이 움직이고 달라지니 아이들이 찾아오는 곳이 됐다.                                                                                            사진 / 김정민 기자
우덕초등학교 학생들과 마을 주민이 함께한 마을 풍경 그리기 축제. 마을이 움직이고 달라지니 아이들이 찾아오는 곳이 됐다. 사진 / 김정민 기자

 상서면 우덕마을은 주민들이 갖고 있던 오래된 물건들, 사진들 그리고 이야기를 모아 전시하고 보존하는 마을 기록관을 세워 화제를 모았던 곳이다. 2021년 처음 마을사업을 시작해 불과 2년여 만에 눈에 띄는 다양한 변화를 불러오고, 당찬 포부를 품고 마을 주민의 뜻을 모아 원대한 계획으로 나아가고 있어 굉장히 기대되는 마을이다.
현재 42가구에 75명이 모여 살아가는 우덕마을은 평범한 규모의 농촌 마을이다. 내변산을 뒤로 하고 내동천이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풍경과 좋은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우덕마을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사업이 활발하게 일어날 무렵 전국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만큼 마을의 단합력이 대단한 곳이었다. 지난 2021년 시작해 세워진 마을기록관과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사업이 순항하는 힘도 다 이 단합력에서 오는 것이다.

왼쪽부터 마을부녀회장, 박후진 사무장, 김형종 이장, 김형섭 개발위원장. 이들이 마을의 변화를 불러온 우덕의 핵심 인력이다.
왼쪽부터 마을부녀회장, 박후진 사무장, 김형종 이장, 김형섭 개발위원장. 이들이 마을의 변화를 불러온 우덕의 핵심 인력이다.

 

우덕마을이 부안 어디에도 없는 마을기록관을 처음 세우고, 어떤 사업이던 도전하는 것마다 척척 따내고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형종 이장과 김형섭 개발위원장, 박후진 사무장까지 이 삼총사의 노력이 있었다.
예로부터 돈독했다지만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의 화합이 계속되고, 처음 해보는 마을사업에도 주민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데는 벌써 9년째 마을 일을 맡아 온 김형종(73) 이장의 역할이 컸다. 마을에서 이뤄지는 행사나 울력에도 대부분 주민이 즐겁게 참여하고, 역량강화 교육같은 기회가 있으면 2~30명은 우습게 모이는 곳이 우덕마을이다.
마을사업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통해서 일을 풀어나가는 데는 마을 토박이자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왔던 김형섭(64) 개발위원장의 능력이 빛을 발휘했다.
그리고 주민들을 설득하고, 농사만 지었던 어르신들에겐 어렵기만 한 서류작업부터 모든 귀찮고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는 마을의 젊은 일꾼 박후진(49) 사무장의 몫이었다.

마을의 자랑이 된 우덕기록문화관
마을의 자랑이 된 우덕기록문화관

 

우덕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된 우덕기록문화관은 1967년 지어져 마을 경로당으로 쓰이기도 했고, 오랫동안 비어 반쯤은 창고로 나머지는 방치됐던 공간이다. 더 오래전에는 마을의 도서관 역할, 사랑방 역할을 해온 마을의 중심 공간이었던 때도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철거되지 않고 오랜 역사를 품은 채 마을 길목 한가운데 서 있던 이 공간을 보며 박후진 사무장은 ‘잘 살려보면 쓸만한 공간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민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공간을 바꾸고 채워갈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갔다.
그러던 차에 지난 2021년 부안군농어촌종합지원센터의 생생마을 기초단계 사업에 참여하게 됐고, 예산 500만 원을 활용해 기록관 공간을 만드는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이 예산으로는 계획한 모든 공정을 마칠 수 없었다. 우선 급한 대로 건물 바닥을 새로 깔고, 내벽과 외벽 페인트칠 등을 진행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두 번째 마을사업인 생생마을 플러스 사업에 참가하게 되면서 1100만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본격적인 리모델링이 진행되는 한편 마을 주민들이 갖고 있었거나, 마을에서 보관된 각종 사진과 문서 등 우덕마을의 역사 자료를 기록물로 정비하고 전시하는 작업이 함께 이뤄졌다.
공간을 보면서 고쳐가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는 믿음으로 일을 추진했다. 마을에서 보유하고 있던 기록물들은 전시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자랑하기에 모자람이 전혀 값어치를 가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우덕기록문화관을 찾는 이들에게 큰 놀라움과 재미를 선사했다.

우덕마을 축제에 주민들이 모여 전통주 담기 교육을 받으며 만든 술을 나누고 있다.
우덕마을 축제에 주민들이 모여 전통주 담기 교육을 받으며 만든 술을 나누고 있다.
우덕마을 축제. 초대가수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어르신들.
우덕마을 축제. 초대가수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어르신들.

 

사실 두 번의 마을사업을 진행하며 받았던 예산은 우덕기록문화관을 완전히 만들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하는 수 없이 김형섭 위원장과 김형종 이장이 팔을 걷어 부쳤고,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이 손을 거들었다. 직접 목재를 사다 테이블도 만들고, 전시를 위한 벽면도 직접 목재를 사다 루바를 쳐서 만들어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관계는 더 돈독해졌고, 마을공동체에 또 다른 추억을 선사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을 일을 이끌어 나가는 세 사람과 다른 모든 주민의 노력을 통해 문을 연 우덕기록문화관은 금새 이름을 알리고 지역의 많은 관심을 불러왔다.
마을의 역량을 증명했기에 더 큰 규모의 사업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부안군의 마을 자율개발사업에 선정돼 5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는 부안군이 마을기록관을 새로 지을 땅을 매입하고, 이곳에 새 기록관 건물을 조성해 옮겨가는 사업이다. 새 마을기록관이 완성되면 기존 기록관 공간은 마을 주민을 위한 자치활동과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쓰일 예정이다.

우덕기록문화관 내부
우덕기록문화관 내부
우덕기록문화관 내부
우덕기록문화관 내부

 

이어 농어촌공사의 공모사업인 취약지구 개선사업에도 선정되면서 마을의 주거환경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을 통해 마을 내 노후주택의 지붕과 담벼락 등을 보수하고, 마을회관 등 공동시설에 대한 정비도 이뤄진다. 마을의 역사를 모아 전시하는 것으로 시작된 우덕마을의 마을사업이 마을 전체의 주거환경까지 바꾸는는 마중물이 된 셈이다. 
이런 모든 사업은 마을 주민들이 하고 싶었던 일을 실행하는 것이었기에 의지가 뭉쳤기에 가능했다. 항상 마을 특성에 맞고, 꼭 필요한 것들을 담은 사업계획을 제시했고, 이전에 해온 사업들을 통해 마을이 앞으로의 사업들을 해낼 역량이 있음을 강조했다. 마을 안에서 누군가 일을 맡아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다양한 사업에 선정된 비결이다.
우덕마을의 향후 과제는 지속 가능한 기록관 운영 방안을 찾는 것이다. 하다못해 전기세, 관리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비용은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의 특성을 담은 카페를 운영한다거나,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왔고, 지금도 추진하면서 우덕마을 주민들을 새로운 꿈도 꾸기 시작했다. 평생을 살아온 이 마을에서 행복한 삶을 계속 살며 떠나지 않는 마을로 만드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나이가 들어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하는 것은 요즘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 돼버렸다. 그러나 거의 평생을 함께 일하며 살아온 주민들과 계속해서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하고 돌봄과 치유가 가능한 공간이 있다면 요양원과 같은 시설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어르신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 얼굴보고 이야기 나누며 안전하게 생활하고, 어르신들에게 돌봄과 치유를 제공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마을의 젊은 사람들과 새로 들어온 이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금까지 그려본 그림이다.
주민들 사이의 단합은 여느 마을 부럽지 않은 우덕마을이지만, 다른 지역으로 떠난 출향민과의 관계의 끈도 놓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있다. 앞서 얘기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을 어르신들의 자녀들인 출향민들과 신뢰를 쌓고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마을 공간을 만드는 든든한 밑바탕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마을 공동체의 뿌리인 역사를 잘 널리 알리고, 길이 보존할 수 있는 기록관을 지으며 마을의 능력을 증명했던 우덕마을의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가 모인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