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날 신랑인 아들이 차가운 성당 바닥에 엎드려 우리 부부에게 큰절을 올리며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때, 지켜보던 신부님의 미소와는 달리 나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내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자면, 눈물의 이유는 사실 자랑스런 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보다는 우리 부부가 결혼했던 날 나 자신은 부모님께 그 말을 미쳐 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함 때문이었다.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다 보니 부모님의 가난이 늘 원망스러웠던 적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결혼하rladud면서도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원인을 부모님 탓으로 돌리려 했던 80년대 나의 젊은 날엔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표현이 나뿐만 아니라, 돌이켜 보면 그 당시 대부분의 가난한 젊은이들에게도 어쩌면 낯설고 생뚱맞은 말이 아니었던가 싶다.
영미권 문화에서 유래한 [수저 계급론]이란 용어가 2015년경부터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유행하고 있는데, 이 유행어는 한 나라의 개인이 부모의 자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흙수저≦동수저≦은수저≦금수저와 같은 사회경제 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생각이며, 그 결과 한 개인의 인생에서 성공은 전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사진이 암시하듯 하위 계층을 일컫는 [흙수저]는 2000년대 이전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민과 1970년대 새로운 일터를 찾아 도시로 이주한 가난한 노동자 집단이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들 물려받은 게 거의 없는 흙수저 자녀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에 직면하여 부모 재력에 따라 장래가 결정되고, 그렇게 형성된 불평등이 그대로 대물림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아 가는 성장기에 일찌감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버리는 소위 ‘3포’, ‘N포’ 세대로 전락하고 있다. 
사진 속 어머니들이 낯선가요? 그러면 당신은 [흙수저]가 아닙니다만, 혹여 사진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연상된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립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비록 당신이 영국의 ‘마이클 페러데이(1791~1867)’,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1847~1931)’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사람이면 어떻습니까? 결코 부끄러울 이유가 없습니다.
[신 계급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의 대한민국에서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중상위 계층 출신 자녀들이 중상위 계층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를테면 [무너진 계층 사다리]는 ‘사다리라는 어머니’가 있는 한 언제나 존재하니까요. 
스스로 흙수저라는 개념에 갇혀 살며 부모에 대한 원망과 경멸을 안주 삼아 절망의 술을 마시는 그런 젊은이들이 턱없이 많은 2023 대한민국의 안타깝고 어두운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맨 먼저 마땅히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입니다”라고 가슴을 치며 외쳐야 하겠으나 이런 사회적 부조리와 내적 부조화를 가져온 현실을 단순히 몇몇 정치인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희망의 미래로 나아가는 원동력은 언제나 우리들의 부모님에게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지름길은 비록 추상적이긴 하나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연하다 여기는 부유층 자녀들뿐만 아니라, 부모가 그리 자랑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자칭 [흙수저] 출신의 자녀들도 모두 함께, 큰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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