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그 아룸다움을 세상에 알리며 위도 지킴이로 살아가는 이가 있다. 위도면 진리에서 태어나 육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16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최만(66)씨다. 
최만 씨의 노력 덕분에 위도의 지질명소들이 발굴되고, 세계지질공원의 명소에 반영돼 세상에 널리 알려질 기회가 만들어졌다. 위도에는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의 명소로 인정된 곳이 무려 일곱 곳이나 된다. 작은 섬 일대에서 그렇게 많은 지질학적 연구가 이뤄지고, 명소가 발굴된 데는 최만 씨의 공이 정말 크다.
위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만 씨의 고향에 대한 애정과 지식은 함께 위도 곳곳을 다니며 해설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섬 곳곳에 보석처럼 숨어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러 명소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언제 만들어졌는지 등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과 얽혀 있는 역사적인 이야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각종 설화를 듣다 보면 점점 빠져들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바닷가는 그의 말을 통해 공룡이 뛰어노는 서식지로 탈바꿈하고, 한 포기 꽃마저도 달리 보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정말이지 위도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일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중학교까지 위도에서 살았던 그는 군산으로 유학을 가 고등학교를 마쳤고, 쌍방울에서 30년을 근무한 뒤 귀향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눈감고 돌아다녀도 훤히 보듯 돌아다닐 수 있는 위도였지만, 곳곳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며 탐험하고, 사진을 찍었다. 
마침 2015년부터 세계지질공원 지정이 유네스코 공식 프로그램으로 정해졌고, 부안도 지질공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그는 위도의 지질명소를 발굴하고, 지질학적 가치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도는 어업에 의존해 살아가는 지역이기에, 날로 줄어드는 어획량과 높아지지 않는 수산물의 부가가치 등의 상황을 살폈을 때 위도가 가진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마침 전북과 부안 일대를 무대로 지질학 연구를 해온 교수들에게 위도의 명소를 소개할 기회가 생겼고, 함께 위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명소들의 아름다움 속에서 지질학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발굴해냈다.
이런 노력이 인정받아 지난 2018년 부안군의 지질명소 19곳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고, 그 중 무려 일곱 자리를 위도의 명소들이 차지했다.
최만 씨는 위도에서 바다해설사, 지질공원해설사,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그야말로 위도의 구석구석에 담긴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고, 안내할 수 있는 이다. 2015년경 바다 해설사 활동을 가장 먼저 시작했고, 위도가 지질공원이 되면서 2018년부터 지질공원해설사로도 활동했다. 이후 가장 늦게 문화관광해설사 활동을 시작했는데, 지금 위도에는 그를 포함한 2명의 문화관광해설사가 활동 중이다.
최만 씨는 위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곳의 아름다움과 지질학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적어도 한 명의 지질공원해설사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까지 해설사 한 명이 더 있었지만, 70세 정년에 이르러 그만둬 최만 씨 혼자 남게 된 것이다. 
앞으로 지질공원 탐방을 중심으로 한 여행이 활성화할 것이 기대되기에 더 많은 해설사를 확보해야 원활한 탐방과 안내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최만 씨 자신도 몇 년 후 정년을 맞을 것이기에 그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 위해서라도 빠른 충원이 필요해 보인다.
위도면은 위도와 식도, 왕등도 등 여러 섬으로 이뤄져 있다. 위도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식도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그 이유는 위도 사람들과 식도 사람들이 같은 이름을 두고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식도 사람들이 말하는 식도의 이름은 이곳의 지형이 가마솥 터에 솥을 건 것처럼 생겼고, 그래서 식도에서는 밥 굶을 걱정 없이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뜻으로 식도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최만 씨는 “실제로 요즘 식도 사람들이 더 잘 산다. 식도에서 어업하는 이들이 더 큰 배로 더 많이 잡고 있고, 부안군 전체 어획량의 30% 정도가 식도에서 나온다. 올해 식도 사람들은 꽃게를 많이 잡아 1년 치 벌이를 6월인 지금 벌써 다 벌었다는 얘기도 있으니 정말 밥 굶을 걱정 없는 섬이기도 하다”며 식도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위도 사람들에게 식도는 하늘에서 위도와 식도를 바라봤을 때 위도의 면소재지인 진리 쪽으로 깊게 들어온 만이 고슴도치의 입이다. 그 입 앞에 식도가 놓여있어 고슴도치의 밥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위도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식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니 바로 이웃한 섬에서 같은 이름을 정말 다르게 해석하고 쓰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
중국 사신이 고려를 방문하다 위도에 들르던 때 마치 고슴도치처럼 보여 위도를 고슴도치섬이라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 조선시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해의 중심으로 위도에서 열렸던 조기파시, 그렇게 잡힌 위도의 조기가 왜 영광굴비가 되었는지 등 그의 이야기 속에는 위도 사람들의 삶, 과학적 사실 그리고 재미가 어우러져 있다. 
앞으로 위도를 찾는 모든 이들이 최만 씨와 함께하는 여행을 해보길 권하고 싶다. 수억 년 전 이곳을 누볐던 공룡들이 살았던 때부터 화산활동을 거쳐 온 위도의 형성 과정부터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는 위도 사람들의 삶까지 이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함께 특별한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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