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삶은 어떤 삶일까.
도자기 파편에서 시작된 특정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 도예가가 된 이종창 부안군도예협회장은 “내 삶의 동력은 끌림”이라고 말한다. 끌림은 힘이다. 그의 도예 작품에는 화려한 힘도, 간결한 힘도, 소박한 힘도 있다. 모두 끌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종창 회장의 꿈은 원래 도예가가 아니었다. 대학교에서는 사학을 전공했다. 사학과 3학년 때 미술사학을 들었고 그때 도예가인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도자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때도 단순한 관심이었지 도자기를 만들어볼 생각은 못 했다. 
하지만 도자기와의 인연은 계속해 이어졌다. 부안 유천리나 고창 용계리 발굴현장에서 도자기 파편을 찾아내고 이를 분석하는 등 도자기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이 회장은 이것도 끌림의 하나로 봤다.
“도자기를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한마디로 끌렸죠”
이 회장이 도예에 발을 디딘 것은 대학교 4학년이 돼서다. 도예과에 편입했고 창작에 재미가 붙으면서 도자기에 빠졌으며 어느 날 돌아보니 25년을 대학교 강사로 뛸 만큼 성장해 있었다.
도예는 창작의 영역이다. 창작의 이면에는 고통이 따른다. 정신적 고통도 있겠지만 경제적 문제에서 오는 고민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창작과 판매, 결정할 때가 온 것이죠. 그래서 부안을 선택했습니다”
이 회장은 부안이 도자기를 하는 데 있어 전국 최고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부안에 100만 관광객이 찾아오고 이 중 10%인 10만 명이 청자 박물관을 찾아옵니다. 도자기만 놓고 보면 전주 한옥마을보다 좋은데 이 지나가는 관광객을 잡을 방안만 나오면 된다. 가능성이 있다고 봤죠”
가끔은 내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 회장은 부안만 느끼지 못했을 뿐 부안의 보물이 청자고 도자기며 최고 중 최고라는 것을 간파했다. 
“준비만 되면 나머지는 작가의 몫입니다”라는 이 회장의 말처럼 청자 박물관 내에 개장한 전시판매장에는 여러 부안 도예가의 개성 있는 작품이 전시됐다. 그러자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작년 하반기에만 6천만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이 회장의 생각대로 창작과 판매, 순수와 상업, 오늘과 내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손안에 들어온 셈이다. 도예 회원들의 경제적 만족도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만족도 상승은 작품의 질과 다양성으로 표현되고 이는 곧 선의의 경쟁 구도로 이어졌다. 전시공간의 포화도 멀지 않았다. 
이 회장이 도자기에 끌렸던 것처럼 관광객들도 부안의 도자기에 끌리는 것이다.
이종창 회장의 끌림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부안군이 추진하는 청자 밸리를 중국 강서성(江西省) 북동부에 위치한 경덕진으로 만들고자 구상하고 있다.

청자박물관 전시 판매장에서 판매 중인 이종창 도예가의 작품들                      사진 / 김종철 기자
청자박물관 전시 판매장에서 판매 중인 이종창 도예가의 작품들 사진 / 김종철 기자

청자와 청자색, 상감기법이 부안의 특색이지만 부안에서 분청사기나 백자도 많이 생산됐을뿐더러 칠산 바다 해안가에 옹기 가마터가 많이 있을 만큼 도자기의 고장으로 키우는 데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여주, 이천, 강진 등 도자기로 유명한 곳이 많지만, 부안이 가진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한다. 오히려 앞선 지역들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어 장점만을 쏙 빼낼 복안도 내비쳤다.
그중 청자를 건축자재와 결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자재 단가는 올라가겠지만, 고급화 전략을 써 청자의 고유 기술이 담긴 인테리어 용품으로 변환하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나름의 확신도 있다.
이종창 회장이 도자기에 끌려 도예가의 삶을 사는 것처럼 그와 그의 가족은 부안에 끌려 부안에 살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살 수 있게 한 곳이 끌림이 있는 부안이다. 부안으로의 끌림이 계속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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