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을 뜯으며 판소리의 대목을 노래로 부르는 것을 가야금 병창이라 한다. 먼 옛날 주로 남성들이 주로 하던 것이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지금은 여성들의 주 무대가 됐다.
오랜 시간 공직에 있다가 퇴직 후 전통음악에 매진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인생 제2막을 열고 있는 박창구(66) 씨는 보기 드물게 가야금병창을 하는 남성, 이른바 남창이다.
하루만 현을 튕기지 않아도 손이 굳어진 게 느껴진다는 그는 오전에는 농장을 돌보는 농부로, 오후에는 음악에 몰두하며 살고 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국악에 입문했고, 지금은 가야금, 가야금 병창, 판소리, 고법, 아쟁, 해금 그리고 전통무용까지 다양한 국악의 맛을 봤다고 한다. 박창구 씨는 “사실 젊어서 직장에 다닐 땐 늘 시간에 쫓겨서 이렇다 할 취미 하나 갖지 못했는데, 퇴직 후에는 꼭 어떤 것이든 한 가지 취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아코디언을 해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 부안에는 배울 곳이 없었다”며 “마침 아내가 줄풍류 단원으로 단소와 가야금까지 다양한 음악을 하며 갖고 있던 가야금을 한 번 해보라는 제안에 덜컥 시작했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제 국악의 맛을 조금 봤다고 할까”라고 국악에 심취한 우연한 계기를 전했다.
공무원은 정년퇴직에 앞서 1년 동안 퇴직 후 생활과 사회에 적응하는 기간인 공로연수 기간을 갖는다. 박창구 씨는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2016년 1월 2일부터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곧바로 전북도립국각원에 등록했다. 그는 “대학을 다니는 학생의 마음으로 연수를 받으려고 쉬지 않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판소리부터 배우기 시작한 그는 이후 가야금 연주와 노래를 함께 하는 가야금 병창을 접했고 전북도립국악원에서 다양한 악기와 음악을 배우며 실력을 쌓아갔다.
꾸준히 전주를 오가며 배움의 깊이를 더해가던 그는 문득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고, 가르침을 주는 스승의 허락도 없이 가야금 병창을 배운지 1년 만에 ‘낙안읍성 전국 가야금병창 경연대회’에 덜컥 지원했다. 스승의 허락 없이 무작정 출전한 것에 대한 꾸지람을 듣긴 했으나 대회 전날 스승님으로부터 허락과 조언을 얻었고, 신인부 대상을 받으며 자신의 가야금 병창 실력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수많은 관중과 심사위원 앞에서 실력을 선보여야 하는 무대였기에 “가야금 열두 줄이 안 보일 정도로 앞이 캄캄하고 긴장했었다”고 고백하지만, 긴장감을 안고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은근히 즐겁기도 하다는 그는 타고난 무대체질인가보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제32회 정읍사전국국악경연대회에 출전해 전라북도지사상인 종합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열린 국악 경연대회 신인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기에 더는 아마추어들이 나서는 신인부에 출전하기가 어려워졌을 만큼 많은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그는 “앞으로는 전공자나 전문가와 실력을 겨루는 일반부로 대회들에 도전해 볼 계획이다. 쉽진 않겠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냐”고 포부를 드러냈다.
공무원으로 읍·면에서 근무할 때 주민들로부터 받았던 배려와 사랑을 갈고 닦은 국악 실력으로 돌려주고 싶다는 그는 소속해 활동 중인 한국국악협회 부안지부 회원들과 함께 지역을 다니며 국악공연을 선보이는 재능기부에도 나섰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과 소통이 줄어들고, 문화 공연을 볼 수 있는 마땅한 행사마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시골 마을에 찾아온 국악협회 회원들의 공연은 마을 어르신들의 마음을 울렸다. 공연을 본 하서면 신지마을의 한 어르신은 “정말 감동적이고 즐거웠다. 이런 공연을 자주 볼 수 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고 한다.
박창구 씨는 비단 음악에만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제대로 지어본 적 없는 그였지만, 지역 주민들을 위한 성실함을 앞세워 고민과 공부를 하다가 퇴직 후엔 농부로 전향했다. 그리고 요즘 인기가 높은 품종인 샤인머스캣, 블랙사파이어 등 신품종을 기르는 포도 작목반을 부안에 만들어 활동하며 농가들의 새로운 수익 모델에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 
수년 동안 포도를 길렀지만, 지금은 그만두고 작목반 활동만 이어가며 이제 홍로와 부사 등 사과를 기르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일교차가 큰 산간지역에서 주로 나는 사과를 부안에서 길러내는 그의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포도나 사과는 부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물이 아닌데도 그의 사과와 포도는 모두 흠잡을 곳 없고, 맛도 일품이다. 

가야금을 뜯는 박창구씨의 투박한 손
가야금을 뜯는 박창구씨의 투박한 손

일단 도전하고 이루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면 어떤 결실이든 나오게 마련이라는 그의 철학이 엿보인다. 사실 가야금이나 판소리는 국악 중에서도 전문가들의 영역이고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그는 “사실 쉽다고는 할 수 없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분명히 성취가 있고, 또 즐거움도 크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국악협회 부안군지부에 연락하거나 찾아오시면 다양한 배울 거리와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창구 씨가 가야금 병창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백발가’와 ‘변산8경’이다. 변산8경은 부안의 아름다움을 담은 가사를 판소리로 엮은 것이다. 부안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이 노래를 즐겨 부르며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백발가의 가사엔 부귀공명을 누리다 삶을 돌아보니 인생이 부질없었음이 담겨있다. 젊은 시절을 공직에 바치고 퇴직 후 농사일과 음악에 묻혀 살아가는 그의 삶에 맞아떨어지는 가사가 다른 어느 노래보다도 마음에 와닿은 것이다.
손수 가야금을 뜯으며 박창구씨가 부르는 백발가는 쩌렁쩌렁하면서도 어딘가 구슬픈 그의 목소리와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다.
잘 익은 과일이 향기를 내듯 퇴직 후 노년 생활을 배움을 통해 갈고 닦으며 채워가는 그의 새로운 향기가 머잖아 지역으로 멀리 퍼질 것 같은 기대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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