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를 길러 오디를 따고, 뽕잎과 나무를 활용한 생산, 가공, 체험 등 6차 산업을 활발히 해오고 있는 이레농원의 박연미 대표(47)를 만났다. 
농장일 못지않게 바깥일로 부쩍 바빠진 그녀는 인터뷰를 마치기가 무섭게 방송촬영을 위해 전주로 떠났다. 만나기로 약속한 어제도 세종시에 회의를 다녀오느라 일정을 하루 늦춘 터였다. 교육청과 연계해 여러 학교에 지속적인 진로강연을 나가고, 자신이 깃든 남부안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청년들과 ‘남부안청자로네트워크’를 결성해 열띤 활동을 펼치고, 남부안 소생활권 활성화 프로젝트도 주민 기획위원 30여 명과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왜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박연미 대표는 “농장 잘 되기 위해 지역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자신의 사업인 농장이 잘 되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녀 덕에 남부안은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방송국PD로 6년여를 일했던 그녀는 미디어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서른 살이 되던 해 문득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양한 이유로 모여든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적절히 어울려 살아가는 프랑스를 보며 느낀 점은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 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색적인 경험들을 통해 박 대표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곳에서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대학원에 해당하는 과정인 조경학교에 들어가 프랑스의 조경을 배웠다. 많은 한국인이 프랑스로 미술과 건축 등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오지만 조경을 배우려는 이는 없었기에 그녀가 1호 한국인 조경 유학생이 됐다. 프랑스 북부의 도시 릴에서 4년을 머물며 학교를 마쳤다.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 처음 하게 된 일은 파리 동물원을 동물들 특성에 맞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한국의 도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에도 이를 품어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간이 아닌 천편일률적인 공간과 법칙 속에 사람을 맞추는 방식임을 깨달았다. 반면 파리는 많은 것을 품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증거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자연 속에서 사람이 제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은 농촌이었다. 빡빡하게 짜인 틀에 맞춰 규칙을 따라가야만 하는 도시의 삶과 달리 시골은 새롭고 대안적인 삶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점점 더 확고해졌다.
그러다 2015년 아버지의 농장을 함께 돌볼 필요를 느껴 한국으로 들어왔다. 언제 돌아왔냐는 질문에 “돌아오지 않았다. 2015년에 들어와 아직 머무는 중이다. 언제든지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고, 내 꿈인 사이사이를 실현할 계획이다. ‘어디서 살거냐’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고 독특한 대답을 했다. 그녀의 꿈인 사이사이는 한국에서 4개월 일한 뒤 2개월 쉬고, 프랑스에서 4개월 일한 뒤 2개월을 쉬며 여행하는 그런 삶이라고 한다. 멋진 생각이다. 
2005년 프랑스로 떠나던 즈음 아버지가 이레농원을 만들기 시작했고, 한국에 잠시 들를 때는 늘 겨울이었기 때문에 박 대표는 2015년 돌아오기 전까지 한 번도 오디맛을 본 적이 없다. 비로소 처음 오디맛을 봤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렇게 맛있고 특별한 과일을 본 적 없었고 뽕과 양잠산업이 동아시아만의 고유한 것이라는 특별함까지 더해져 매력적으로 느껴졌단다.
그때부터 박연미 대표는 이레농원의 6차 산업 변화를 이끌며 가족과 함께 힘을 합했고, 지금은 지역에 안착한 여성 청년 농업인들과 소통하며 지역에서의 삶에 대해 지속적인 고민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레농원은 유기농만을 고집한다. 그 이유는 관행농이 가진 생산성과 편의성 뒤에는 많은 농약을 마셔야 하는 농부, 농약에 잠식되는 토양, 오염되는 지하수 등 농촌지역과 농사짓는 사람들을 해치는 여러 가지 요소가 크다. 대신 유기농을 통해 농사짓는 사람과 깃든 환경은 더 건강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이기적인 유기농을 추구한다. 나와 내가 마시는 물, 내가 사는 지역을 깨끗하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농산물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이를 만들어내는 흙에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농법에 국한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퍼머컬쳐’(permaculture)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이레농원에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준비와 실험들이 시작됐다. 
유기농을 넘어 사회적 농업도 고민 중이다. 탄소 농법 등을 통해 지역의 주류와 비주류가 엮일 수 있고, 이런 시도가 정책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레농원은 ‘사회적 농업을 하는 사회적 농장’으로 선정됐다.

이레농원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오디
이레농원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오디

2015년 돌아와 5년여 동안은 가족끼리 힘을 모아 이레농원을 운영하고, 박 대표도 이에 집중했다. 그러다 2020년부터는 청년들을 직원으로 고용해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활동가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이레농원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실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박연미 대표는 “이레농원이 여행처럼 거쳐 가는 곳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연미 대표는 기획자이며 설계자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깃발을 꽂는 게 그녀의 몫이다. 그런 그의 매력에 빠져 함께하는 청년들이 그녀가 벌인 일들을 함께 수습하고 에너지를 더해가며 함께하고 있다. 2019년 지역 청년들과 의기투합해 결성한 ‘남부안청자로네트워크’는 지금 박 대표가 주축으로 벌이는 다양한 지역 사업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됐다. 
부안에서의 활동은 사람을 찾아보는 과정이었다. 활동가들을 만나고 포럼 등을 계기로 동아리를 만들어 다음 활동의 기반을 닦기도 했다. 재미있는 일들이었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박연미 대표는 “가치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가치는 재능을 발휘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재능이 있는데 그를 발현시키는 곳이 농촌이면 좋겠다. 누군가의 도구가 되기 위한 재능을 닦느라 인생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며 “당연한 것들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지역이 가진 소중하고 수많은 자산을 지역 사람들은 잘 보지 못한다. 학교에 진로강연을 다니면 부안의 아이들은 이미 도시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음을 알고 있고, 무기력하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면 진학과 취업을 위해 도시로 나가 질 것이 뻔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고 지역에서의 활동 속에서 느낀 점을 고백했다.
그렇지만 지역의 아이들이 지역이 가진 개성과 특별함을 이어가고, 얼마든지 지역에서 역할을 하며 소중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다. 끝내 돌고 돌아 지역으로 돌아와 안착하는 이들을 보면 동화 ‘파랑새’처럼 자기 집 앞에 있는 파랑새를 보지 못하고 멀리 돌아서 오는 이야기가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
지역 소멸이라는 담론은 몇 년 사이 부쩍 우리 귀에 자주 들리고, 익숙한 사실처럼 돼버렸다. 인구는 빠르게 줄어들고 고령화는 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 부안군 유권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90%를 웃돌았다. 만 18세 미만이 채 10%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구가 줄어들고, 농업의 형태가 바뀐다고 해서 지역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양적인 인구 성장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지역에 살아가는 인구들의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 박 대표와 주위의 활동가들은 그저 지역에서 밥벌이만 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위한 고민과 활동에 뛰어들고, 지역을 지금보다 더 괜찮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삼아야 하는 좋은 본보기다.
박연미 대표는 부안, 특히 남부안이 사람들에게 과도기를 거쳐 가는 고장이 되길, 유년기, 성장기, 청년기 언제든 변화의 어려움을 겪는 때에 찾아와 편하게 쉬고, 색다른 시험을 통해 답을 얻어가는 곳이 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농원에서 꽃 키우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다. 남부안이 그녀가 바라던 곳이 되고, 후배들에게 바통을 넘기고는 꽃을 가꾸고 농원에 찾아오는 손님을 맞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날이 머잖아 찾아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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