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들과 둘이서 먼저 내려와 귀농 아닌 귀촌 생활을 하며 마을을 바꿔나가는 한 여성이 있다. 경기도 일산에서 상서면 우덕마을로 옮겨 온 박후진(49) 씨다. 그녀는 우덕마을의 역사를 담은 특별한 공간을 만드는 데도 앞장서 톡톡한 공을 세웠다. 
그녀는 “우덕마을에서 셀프로 사무장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잠깐 인터뷰하는 사이에도 쉴 틈 없이 전화가 걸려와 마을 일에 관해 통화하고, 잠깐 들린 모든 주민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것 보니 허튼 말이 아니다.
20년 가까이 속옷 디자이너로 일했다. 일찍 결혼하고 첫째를 길렀고, 마흔둘에 늦둥이 둘째를 갖게 되면서 퇴사했다. 아이에게 환경과 농촌, 먹거리에 관한 책을 두루 읽게 되면서 농촌에 대해 생각하고 환경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그러면서 자신이 도시의 삶에 지쳐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늦둥이를 낳고 육아에만 매달려 있으면서 굳이 더 나이들 때까지 시골로 가는 것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둘째만 데리고 제주 한 달 살이를 떠났고 정말 만족했던 그녀는 떠날 곳을 찾아 귀농·귀촌 박람회 갔다 만난 이로 인해 부안에 오게 됐고, 아무 연고도 없던 부안에서 정말 우연히 살게 됐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2~30분만 차를 타면 바다에 가서 놀고, 아름다운 관광지를 손쉽게 다녀올 수 있는 부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여전히 일산에 머물며 자영업을 하는 남편은 ‘한 1년 바람쐬다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해 조금은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런데 점점 마을 일에 깊게 관여하고 땅을 구하는 그녀를 보며 “진짜 정착하려는 구나”생각하게 됐고, 자주 내려오며 생활의 무게중심을 점점 부안으로 옮겨오고 있다.
체재형 농장에서 한동안 지내던 그녀는 완전히 정착하고자 수소문하던 그녀는 농장 생활에서 연을 맺은 우덕마을의 김형섭 마을위원장이 집을 빌려주면서 우덕마을 주민이 됐다. 
우덕마을의 명소가 된 우덕기록문화관은 마을의 소소하고 다양한 개인들의 역사까지 살펴볼 수 있는 사진과 자료, 물건들을 두루 보관 전시하고 있는 재미있고 특별한 공간이다. 박후진 씨는 특별한 경력이 있거나 꼭 이런 사업을 해보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공간을 열기까지 도맡아야 했던 고단한 과정을 견뎠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 문화관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란 말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히 이 마을에 살게 되면서 마을에 집중했던 박후진씨는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고 마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됐다. 폐허로 남았던 옛 경로당이 마을 한가운데서 흉흉하게 방치되는 것을 보고 ‘반듯하게 만들면 쓸만한 공간이 되겠다’하는 마음에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에서 시작했는데 주민들이 갖고 있던 다양한 사진과 자료들이 있었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생생마을 사업을 통해 공간을 재생하는 것을 먼저 시작했다. 막상 사업을 시작하니 마을에 수많은 자료와 사진이 모여있던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두 번째 활성화 사업을 통해 우덕마을에 존재하던 자원들을 갈무리해 전시할 수 있게 됐다.
박후진 씨는 우덕마을이 갖고 있던 공간을 발견해 살리고, 마을의 주축과 소통하며 마을의 자원과 연계하는 것들을 지원사업과 함께 엮어냈다. 박씨는 별일 아닌 듯 술술 설명하지만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모든 과정을 미리 알았다면 누구나 선뜻 시작하지도 않았을 일이 이렇게 잘 진행된 것은 박씨의 일 벌이는 것을 두려워 앉고 맨땅에 헤딩도 해보는 성격이 한몫했다. 물론 마을 주민들의 응원과 지원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터다. 
추진력 좋은 그녀는 사업 진행에 앞서 주민들에게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기보다 한 방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시골의 흐름은 그의 생각과 달랐고, 그에 맞춰 차분히 소통하며 일을 만들어 가다 보니 꼬박 1년이 걸렸다. 이곳의 흐름과 방식으로 살아온 기존 주민들이 깊이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게 만든 소중한 시간이지 과정이었다. 그녀는 “그 시간을 거치고 이곳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긴 호흡으로 이룬 소통이 이번 사업 추진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조금 어렵고 지루한 대신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함께 사진을 꺼내보고 그때의 감정과 일들을 되새겨 보며 즐거워하는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이룬 일이었다. 이렇게 마을에 스며든 그녀는 계속해서 마을 주민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각종 지원사업에 필요한 서류를 챙기는 귀찮음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만간 모든 주민에게 직책과 역할을 주고, 그런 내용을 새긴 명함을 만들어줄 계획이다. “평생 농사짓고 살림했던 할머님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적혀있는 명함을 갖고, 누군가에게 건네본 일이 없다. 그런 경험을 한번 선사하고 싶다”는 말에서 마을 주민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그녀는 돈 안 되는 일인데 열심히 하는 것을 두고 ‘그런 일 왜 하냐’는 소리도 듣는다. 개인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모정에서 막걸리 한잔 하고 싶지만, 지금 하는 일도 좋다. 아직 서툴고 처음 해보는 일이라 시간도 걸리고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즐겁게 해내고 있단다.
박후진씨는 “월급도 안 받고 기름값도 안 나오는 일을 한두 달도 아니고 2년째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주민과 마을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며 “내 소원은 마을에 슬리퍼 끌고 나가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치맥하는 것이다. 마을기록관을 만든 것처럼 이렇게 하나씩 바꿔 가다 보면 함께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생기면서 우리마을 옆 마을 할 것 없이 조금씩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를 위해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바꿔나갈 우덕마을과 지역이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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