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 (사)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

1. 핵(核)은 ‘죽임’이다. 부안사람들의 반핵운동은 ‘죽임’으로부터 생명을 ‘살림’이다. 부안의 ‘살림’, 반핵운동은 핵이란 것이 바로 현대문명의 그 핵이란 점에서 곧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넘어서며 새로운 문명, 생명과 평화의 새 문명을 요구하고 건설하는 진짜 생명운동, 참된 평화운동이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소리는 아예 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우리 같은 촌놈이 무슨 문명타령이람?’
장님도 새를 잡는 판에 촌놈이 핵 반대쯤 못하겠는가! 그런 소리 말라. 미국의 드리마일 핵에 대해서도 러시아의 체르노빌 핵에 대해서도 지금 부안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반핵운동처럼 뜨거운 운동은 애당초 꿈도 못 꾸었다. 전 세계가 부안을 보고 있다. 우리 같은 촌놈이라니?

2. 부안 핵문제는 마땅히 현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대책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부안사람들은 아예 문명과 대결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부를 가르쳐야 한다. 동시에 국민도 가르쳐야 하고 인류모두를 가르쳐야 한다. 전 세계 역사상 부안의 반핵운동같이 치열하고 장기적인 문명비판운동은 있어본 적이 없다. 더욱이 한 장소에서! 더욱이, 그래 그 말이 맞다, ‘촌에서’!

3. 21세기는 문명의 전환기다.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서 그것이 바뀌고 있다. 새로이 나타날 문명의 이름은 곧 다름 아닌 ‘생명과 평화’다. 그러니 지금 부안사람들이 바로 문명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문명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과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생각과 생활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혁명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일대 개벽(開闢)이다.

어떤가?
지금 저 뜨락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물려줄 재산 중의 재산이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문명을 바꾸는 대사업에 몸 바치고 그 어버이의 자식이라는 자부심보다도 더 큰 재산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내 말이 ‘사탕발림’에 불과한가? 아니면 진실인가? ‘생전에 부안에서 한번 살아봤으면 한다’는 뜻의 ‘생거부안(生居扶安)’이란 말이 기필코 미래에도 없어지지 않을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될 것이니 부안사람들이 마침내는 핵을 추방하여 부안을 생명과 평화의 땅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핵이라는 죽임과 반핵이라는 살림의 싸움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며 온 천지가 또한 날이 갈수록 더욱 더 핵의 위험아래 놓이게 될 것이고 부안은 그 싸움에서 성지(聖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오고 있는 새 문명의 시대에는 새로운 삶의 원형(原型)이 요구될 것인데 부안사람들의 지난 일 년여 동안의 치열한 외침과 싸움은 바로 그 새 삶의 원형을 창조해냈다. 내가 아는 역사적 지식만으로도 그와 같이 치열한 가치창조운동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그냥 주저앉지는 않는 법이니 반드시 고귀하고 생산적인 결과를 탄생시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다시 말한다.
전 세계가, 핵의 위험아래 놓여있는 전 세계가 깊이 매순간 갈망하고 있는 생명과 평화의 삶, 바로 그 새 삶의 원형인 것이다.
그 확신만 있다면 현실적 해결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 믿음! 중요한 것은 그 확신이다.

5. 정부에 의지하지 말라. 오히려 정부의 고식적인 정책을 반드시 바꾸어 놓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라. 민주사회의 정부란 민중의 요구에 의해 자기 정책을 바꿀 수 있고 또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꾼들의 모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지역정부란 더욱 더 그러하다. 그들이 과거의 관료와 무엇이 다른가?

6. 과거사 규명운동이 일어나 악법철폐의 바람도 분다. 민주화를 기념하는 사업에 엄청난 힘을 쏟아 붓고도 있다. 부안사람들의 마음 안에 꼭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이 살아있었으면 한다.

첫째,
민주화라는 이름의 지난 시절의 그 치열했던 민중운동은 오늘 부안 독립에 대해 어떤 관계인가를 거듭 거듭 질문하고 토론하라!

둘째,
현 정부나 시민단체나 지식인들은 본디부터 핵 이외의 새로운 에너지에 대해서는 지식의 연도 개선의 의지도 새 과학의 탐색도 하지 않는 현상유지파들에 불과한지를 거듭 거듭 질문하고 토론하라!

셋째,
인간은 본디 태어날 때부터 ‘핵’이나 ‘개발’ 이외의 길은 전혀 갈 수 없도록 마련된 것이고 인류는 애당초부터 ‘핵’에 의한 ‘죽임’과 ‘개발에 의한 파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를, 그리고 더욱이 그 운명이 곧 문명인가를 거듭 거듭 질문하고 토론하라!

바로 그 질문과 토론의 빛나는 기록과 웅숭깊은 보고들이 곧 부안독립신문이기를 빌고 또 확신한다.

4337(2004)년 양력 9월 15일 창간을 축하하면서 한 허름한 사람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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