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어떤 끈도 없는 나 같은 농사꾼에게는 사면이니 복권이니 하는 게 ‘빛 좋은 개살구’...

지난 15일 부안핵폐기장 반대 시위관련 사법처리자 가운데 54명에 대한 사면복권이 이루어졌다. 거리에는 발 빠르게 환영과 축하의 현수막이 내걸리고 정치에 옷깃 적시고 있는 사람들은 이번 조치가 자신이 중간에서 애쓰고 서두른 결과인 양 떠들며 생색내기 바쁘다. 정작 사면복권 된 당사자는 이렇듯 무덤덤한데 말이다.
이미 옥살이와 벌금 등으로 고생할 만큼 고생했고 정치에 어떤 끈도 없는 나 같은 농사꾼에게는 사면이니 복권이니 하는 게 ‘빛 좋은 개살구’마냥 그저 희떫은 소리로만 들릴 뿐이다. 한편으론 잘못된 정치 때문에 희생당한 부안민중을 바로 그 정치 계산속으로 또 한 번 이용하려 든다는 생각에 씁쓸하고 분한 마음까지 이는 것이다.

‘부안사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의 계산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들은 제 삶터를 지켜내고자 하는 부안민중의 순수한 생존권리를 공권력을 동원해 철저히 짓밟았다. 그 일은 가히 군사작전 내지는 첩보공작에 가까운 것으로 도무지 한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한다고 볼 수 없는 일종의 전쟁도발이었다. 부안과 부안민중은 관제언론에 의해 섬처럼 고립된 채 지역이기주의 내지는 폭도로 내몰려야 했다.

지금 부안 사회의 한 모퉁이에서는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지난 일들은 모두 덮어두고 화합해야한다”고 외치는 목소리들이 있다. 화합이라면, 좋다! 다툼과 불안을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 누구나 삶의 평화와 안정을 찾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저리 부대끼듯 살아가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막무가내로 화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있으니 삶의 다양성과 다름에 관한 부분이다. 무슨 말인가?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사람살이에 갈등과 다툼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다름의 주장이 상대의 생존 자체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또한 다양성의 충돌로 인해 생겨난 갈등이 해소되기까지는 그 상처의 깊이만큼의 세월과 나름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모두를 덮어둔 채 화합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억지로라도 통합해야만 하는 정치 산술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정치야 이익에 따라 언제 건 뭉치고 헤어지는 게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정부는 이번 사면복권의 의미에 대해 “주민 화합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라 했다. 내친김에 정부에게 충고 한마디 해야겠다. “군민간의 화합은 우리의 몫이니 그대는 그대의 일을 하라”고.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부에 대한 군민의 깊은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안 핵폐기장 사태의 전모를 스스로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금처럼 구렁이 담 넘듯 모호한 태도로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묻고, 무엇보다 다시는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의 바른 순서요 몫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체험은 너무도 분명하게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국가권력에 대해 그런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공허한 외침일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건데, 부안반핵민주운동의 마무리 또한 부안민중 스스로 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싶다. 정부가 내놓을 치유 프로그램과 후속대책이라는 게 결국은 몇몇 정치꾼의 낯내기를 돕는 것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이번 참에 정부에게 부안 군민의 이름으로 분명히 요구할 게 있다고 본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핵폐기장 사태로 인해 입게 된 물질과 정신상의 피해에 대한 보상의 청구이다. 이는 피해 당사자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반성 못한 정부가 되풀이 할 지도 모를 폭력을 미리 막기 위한 선량한 국민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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