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면 동정리에 자리 잡은 귤까네는 부안군에서 세 곳에 불과한 귤 농장 중 하나다. 낯선 이름이지만 입에 착 붙는 ‘귤까네’라는 이름은 이 집의 둘째 딸이자 농장 살림을 짊어질 스물네 살 현진 씨가 지었다. 아직 앳된 인상의 김현진(24) 씨는 부모님과 함께 귤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다. 
시골에서 마땅한 활로를 찾기는 어려워 대부분 학업에 이어 도시로 떠나는 청년들이 허다하다. 추운 날 추위에 떨고, 더운 날 녹아내리는 듯한 더위를 참아야 하는 고단함을 견디며 제주의 귤을 뛰어넘는 부안의 귤을 생산해 알리겠다는 당당한 포부를 지닌 젊은 여성 현진 씨의 얼굴에 걱정이나 구김살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해 국립농수산대학 화훼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수석으로 입학과 졸업을 하고, 장학금까지 놓치지 않은 모범 농학도이면서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싫은 내색 없이 도운 모범 딸이다. 부안군 청년 창업농으로 선정돼 혜택을 받기도 했다.

수확을 앞둔 레드향을 선보이는 현진 씨. 손수 기른 귤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확을 앞둔 레드향을 선보이는 현진 씨. 손수 기른 귤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진 씨는 농수산대학 다니고 가업을 이어오는 게 괜찮다고 한다. 지난해 졸업하자마자 지금껏 부모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 5살 때부터 부모님이 해오신 농업은 더없이 친숙하다. 어려서부터 일 돕는 것이 익숙하다는 그녀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농장에서 일하는 게 더 즐거웠다”고 말한다. 
대학 진학도 자신이 해나갈 농사일을 위해서였다. 그녀가 진학하던 당시 아버지가 국화를 재배하고 있었기에 화훼학과를 진학했는데 입학하자마자 아버지가 작목 전환을 시작했다. 아버지와 박자가 조금 엇갈린 셈이다.
지금 와서 이야기지만 귤농가로 거듭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변화의 흐름을 아버지가 잘 읽어냈다. 김상중 씨는 국화재배와 함께 모종도 길러 다른 화훼농가에 공급했는데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상황을 살펴보니 많은 화훼농가가 만감류로 전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에게 더없이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료가 된 아버지와 딸
서로에게 더없이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료가 된 아버지와 딸

 

국화재배에 쓰던 시설 그대로 귤재배가 가능하기에 시설조성의 부담은 덜 수 있었지만, 작목 전환이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년 넘게 국화를 길러 국화에 대해서는 정말 잘 안다고 자부하는 그였지만, 귤농사는 달랐다. 홀로 시작해 지역 내 다른 농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경’으로 배워야 했다. 제주도까지 수차례 오가며 귤에 대해 배우고, 종자도 공급받았다. 지금은 종자 묘목도 직접 생산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한 번도 안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이는 없다는 귤까네 '홍예향'. 정말 달고 진한 향기를 자랑한다. 아기자기한 포장 디자인은 현진 씨 작품이다.
한 번도 안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이는 없다는 귤까네 '홍예향'. 정말 달고 진한 향기를 자랑한다. 아기자기한 포장 디자인은 현진 씨 작품이다.

현진 씨는 모든 작업과정도 함께 하지만 마케팅, 판매는 오롯이 도맡고 있다. 귤까네 브랜드명도 직접 지었다. 한 번 들었을 때 기억에 남을 웃기고 특별한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귤이 들어가고, 요즘 유행하는 ‘누구네 농장’ 같은 이름을 떠올리다 보니 ‘귤까네’라는 개성 넘치고 재미있는 이름이 나왔다. 포장에 필요한 글씨체와 그림도 직접 그리고 만들었다. 그림을 위한 전문적인 부분은 지인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거의 모든 작업을 손수 해냈다. 온라인 판매도 시작해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도 입점했다. 현진 씨의 SNS 계정을 보고 “부안에 귤을 키우는 곳이 있었냐”며 부안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지역 내 카페에서 우리 레드향으로 에이드를 만들어 판매하며 서로 좋은 효과가 나기도 했다. 지역 안에서 선순환하는 이상적인 상황이다.
지난해 처음 귤을 수확하고 아직은 기대할 수 있는 생산량에 미치지 못하는 초기 단계지만 이렇듯 현진 씨가 제대로 제 몫을 해내고 있어, 귤까네는 여러모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라지만, 또래 친구들을 찾기 힘든 시골 생활이 적적할 만도 하건만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은가보다. 농대를 다니며 사귄 친구들이 전북권에 많아 얼마든지 자주 만날 수 있어 외로울 틈이 없고, 부모님과도 정말 잘 맞아 전혀 트러블이 없단다.
지금 농사일은 현진 씨와 부모님 셋이서 해나가고 있다. 국화 농사 당시에는 이주노동자가 7명이나 함께 일해야 했는데 지금은 가족끼리 그럭저럭할 수 있을 정도로 손이 덜 든다.

수확을 앞둔 귤까네 홍예향(레드향)
수확을 앞둔 귤까네 홍예향(레드향). 열매가 달린 가지가 처지지 않도록 줄로 매여있다.

현진 씨는 3년 동안 수습 기간이다. 홀로서기 할 수 있기가 그 정도 걸린다는 것이다. 수습이 끝나면 농장 1000평이 현진 씨 몫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때쯤이면 귤나무들도 심은 지 7년이 넘어가니 생산량도 제대로 나오는 때다.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많다. 여름엔 정말 덥고 살이 따가울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일을 해내면 되레 큰 성취감으로 돌아온다는 현진 씨는 “혼자 견디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께 해내다 보니 괜찮아요. 전 몸이 편하고 마음이 어려운 것보다 몸이 고되더라도 마음 편한 것이 훨씬 잘 맞더라구요”라며 농사일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렇듯 긍정적으로 열심히 농사를 짓는 현진 씨는 포부마저 당차다. 그녀는 “귤은 제주도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부안에서 정말 맛있는 귤을 생산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선진 농가로 거듭날 거예요. 그리고 언제까지나 부모님과 함께 여기서 농사지으며 살고싶다”고 말했다.
제주도보다 맛있어 경쟁력이 있다. 제주는 화산토인데 이곳 황토 땅에서 자란 귤이 더 맛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 땅이 귤을 달게 키울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지금 생산되는 모든 귤 품종과 그 이름들은 제주에서 만들어져있다. 귤까네 전북도를 대표하는 귤 이름으로 홍예향(레드향)과 천년향(천혜향)을 사용하며 차별화했다.
귤까네는 상품의 품질을 높인 것이 아닌 판매를 위한 인위적인 처리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을 약속한다. 건강하고 정직한 4無 -제초제無, 코팅처리無, 강제착색無, 강제후숙無 -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아버지도 딸이 정말 든든하다. 아버지 김 씨는 “딸이 집에 함께 살고 있으니 사는 게 사는 것 같다. 딸 덕분에 웃을 일도 많다”며 딸과 함께하는 생활의 행복함을 전했다.
이는 비단 한 가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땀방울이 넘쳐야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을까. 현진 씨처럼 고단한 농사일이지만 마음 편히, 즐겁게 해나갈 젊은 농부가 하나둘 늘어나는 부안을 기대해본다. 김상중 씨는 부안에 귤 농가가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긴 시간 농사를 지어야 할 딸의 곁에서 함께 지역의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동료들이 있어야 할 것이기에 당연한 바램일 수도 있겠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