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개련)이 지난 9월 21일, 국회에 언론개혁 3대 입법안을 청원한 이후 한 달여 만인 지난 10월 15일 열린우리당은 언론개혁 관련법 제?개정안을 마련하고 이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동안 방송의 소유-경영-편성의 분리와 편성독립성 보장을 위해 제기되었던 지배주주의 소유지분제한 강화와 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송 허가?재허가 심사의 강화 조항 및 방송정책권의 방송위원회로의 이양 등은 누락됐다. 이는 언개련의 방송법 개정 청원안에서 크게 후퇴한 내용이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언개련의 입법안을 전폭 수용한 내용을 기조로 별도의 독자입법안을 만들어 발의할 예정으로 민주노동당의 개정안은 소유지분 제한의 상한선을 100분의10으로 낮추는 등 언개련의 입법청원안보다 오히려 강화된 내용이다. 한편, 방송민영화와 신문방송 겸영을 주장해왔던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방송법 개정안이 발표된 직후 예상대로 ‘방송장악법’ 또는 ‘방송통제법’이라고 주장하며 실력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현재 청원된 방송법 개정안의 기본방향과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나라당의 문제제기는 핵심을 놓치고 있거나 잘못된 관점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언개련 등의 개정안에 대한 의견이나 비판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송법 개정안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분명하게 내놓아야 한다. 사실 한나라당은 현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방송장악이니 방송통제니’ 하는 식으로 정작 내용은 없고 선정적인 제목만으로 개정 논의에 임하고 있다. 이는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제대로 된 의견이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태도는 내실있는 방송법 개정안을 만드는 데에 오히려 방해만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정치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집단으로서 역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지난 2000년 제개정된 현재의 통합방송법은 역사적 성격으로 볼 때 1980년대 후반부터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공공성 확립을 위해 노력해 온 시민사회와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의 산물이다. 1996년 방송법 개정을 위해 ‘방송개혁국민회의’라는 범국민적 연대기구가 만들어지고 이후 1999년 대통령 직속의 ‘방송개혁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통합 방송법 개정논의가 본격화됐다. 그리고 여기에 논의를 기초로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방송발전 등을 기조로 하는 현재의 통합방송법이 제정되었던 것이다. 이번에 언개련이 청원한 방송법 개정안 역시 추구하고 있는 기본 가치와 방향에서 현행방송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2000년 제정 이후 4년여가 지난 지금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형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동시에 사영(私營)상업방송이 등장하면서 형성된 우리 사회 방송환경의 부정적인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 역시 개정안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현재의 방송법의 문제점은,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확립하는 부분, ▲사영상업방송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점 ▲방송위원회의 독립성과 기능이 미흡하게 규정된 점 ▲시청자 주권 보장과 시청자의 방송 참여부분에서의 개선 여지 ▲지역방송의 정착과 발전을 도모하는 부분에서 부족하다는 점,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대비하는 부분에서의 미흡함 등이다. 이번 언개련의 방송법 개정안은 첫째,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고 있는 방송사업자 허가/재허가제도를 개선하고, 지배주주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소유?경영?편성의 제도적 분리를 명확히 한 것이다. 두번째는 현재 SBS로 대변되는 사영상업방송의 정상화를 위해 방송사 소유지분을 15%로 제한하며, 이들 방송수익에 대한 일정비율의 사회환원 의무를 둠으로써 방송사의 공적 책임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는 현재의 방송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분명하게 확립하고 그 기능을 정비하는 차원에서 방송사 허가?재허가권 및 방송정책권을 단일화하고 있는 것이며 또 방송위원 선임시 정치적 독립성을 명시하고, 방송 사업자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공익규제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네번째는 시청자의 복지를 실현하는 의미로 시청자 주권 보장과 방송참여의 제고, 시청자위원회의 실질적 강화, 시청자 직접제작 프로그램(퍼블릭 액세스)의 확대, 시청자 미디어센터의 설립?운영?지원 등을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앙과 현격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는 지역방송의 균형발전 및 활성화를 위해 그에 합당한 정책을 마련하고 지역방송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을 정하고 있다. 언개련의 방송법 개정안은 이와 같은 방송발전을 위한 핵심적 요구사항을 담아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로의 발전에 방송이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근본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 사회로의 발전방향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같은 언론의 사회적 의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은 물론 자본과 시장, 그리고 내부의 관료주의적 통제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언론의 자유는 제도적인 장치로 방어될 때 충실한 내용을 갖추게 될 것이다. 법과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토대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이번의 방송법 개정안이 특히 유의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국회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서 통과는 차치하고라도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질지부터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정치는 사회를 작동시키는 데 필수적인 합의와 협의의 체계이다. 그럼에도 합의와 협의의 체계로서의 정치는 생각컨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요원하다. 언론개혁을 담보할 수 있는 언론개혁 입법안들의 처리에 대해 비관적인 예측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동시에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다시 한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리: 이향미 기자 isonghm@ibuan.com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