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목숨 걸고 싸워서 지켜냈으니까 이제 후손들이 잘 가꿔가야지” 스물셋 젊은 나이에 군대에 들어가 이제는 구순(90세)이 된 김현술 회장은 지난 2월 25일 자로 6.25 참전 유공자회 전라북도지부 부안군지회 8대 지회장에 취임했다.
신임 김 회장은 “할 사람이 없어서, 회원들이 하라고 밀어붙여서 맡게 됐어”라고 취임 배경을 말한다. 하지만 마을 이장부터 새마을 운동, 유공자회 감사직까지 그간 두루 쌓아온 사회 경력만 놓고 보면 전북도지부장 자리도 부족함이 없다.
유공자회에 대한 애정도 깊다. 그가 회장 자리를 선 듯 수락한 데에는 부안군지회가 자칫 고창이나 김제로 예속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때문이다. "회장을 하더라도 그렇게 놔둘수는 없잖아, 여기 회원수가 몇인데…"
상서면 장동리가 고향인 김 회장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힘든 6.25을 겪었다.
‘최전방인 1사단 서부전선 고랑포 355고지’, 이곳은 영화속에서나 나오는 고지전이 펼쳐지던 곳이다. 숱한 생명의 위험을 넘긴 이곳에서 휴전을 맞이했다는 김 회장은 “뺏기고 탈환하기를 수십 번 했어. 아주 유명한 격전지였지, 여기 오면 다 죽어나간다고 했으니까, 근데 그렇게 많은 동료가 죽고 사라지고 했는데… 참~, 천운을 타고났는지 몰라도 용케 살아 남았어”라도 당시를 소회한다.
임진강을 경계에 두고 복무를 했다는 김 회장은 연막탄을 쏜 후 동료의 시체 가까이서 인민군을 정찰하던 그 시간이 너무나 곤욕스러웠다고 말한다.
피비린내에 온갖 썩은 냄새, 극성인 모기떼들, 맡아보고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을 못 한다는 김 회장은 “그것보다 더 괴로운 건 발각되면 죽는다는 공포”라며 “얼마나 무서운 줄 아느냐”고 묻는다. 그만큼 그에게 전쟁은 잊지 못할 악몽으로 남아있다.
치열하게 싸운 탓인지 나라로부터 2개의 훈장도 받았다. 3남 1녀의 자녀와 10여 명의 손자는 살아남은 삶이 준 훈장이다.
전쟁이 끝나고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전쟁이 남긴 피해는 크고 길었다. “제대하고 나서는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었어, 전쟁 치르느라 제대로 남은 것이 있어야지. 참 욕봤어”
그러면서도 김 회장은 “우리 때에 끝나서 다행이지, 후손들은 절대 경험해서는 안 될 일들이야”라고 말한다.
부안군지회에는 총 102명의 회원이 있다. 대부분 88세에서 93세로 이뤄져 있어 절반 가깝게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하지만, 6.25 행사도 주관하고 전적지 순례 등 등 굵직굵직한 행사도 치르고 있다. 회원들 개개인의 건강도 확인하고 있다. 이상이 있으면 연락도 취하고 돌아가실 경우, 보훈청 관련 일들도 처리해 준다. 유족들이 신청하면 임실호국원 안장 절차도 진행해주고 개인 장지가 있다면 20만 원 남짓한 보조금 신청도 안내해 준다.
‘생애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한다는 김현술 회장은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참전용사는 모두 영웅”이라며 “우리 세대가 총칼로 싸워 자유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한다면 이제 후손들은 펜을 들고 지켜내야 한다”고 당부한다. 또 “평화롭게 살고 있는 후손들이 이제는 노인이 되버린 우리의 희생도 알아줬으면 한다”는 바람도 빼놓지 않는다. 총 대신 펜을 들고 책상에 앉은 90의 김 회장 얼굴이 벚꽃처럼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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