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 자발적인 참여로 행정과 정책 감시해야

강금실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그녀가 몰고 올 기성 정치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당선유무에 관계없이 사회적 가치로서 기여했으면 한다. 강금실은 자신의 기본철학이 ‘권력의 해체’이며, 권위주의 문화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개혁의 본질’이라고 했다.

근대적 이성이 추구하는 제도적 합리성과 효율성의 이면에는 혼란과 무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명목으로 권력의 집중을 정당화 전략화 했다. 그런데 과도한 권력 집중은 합리성과 효율성을 가져오기보다는 수없이 많은 강압적 폭력과 독재를 만들었다. 때문에 탈근대 탈권위를 통한 권력의 분산은 보다 인간적인 삶을 이루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권력의 쏠림은 반드시 견제되고 해체돼야 한다. 독재와 부패가 대부분 여기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가 21세기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요조건으로서 등장하는 것도 권력 분산과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다수가 원하는 삶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가 성공하려면 권력 독점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특히 자치 단체장의 권한은 오로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쓰여야 한다. 단체장, 지역의회, 지역주민에게 권한과 역할이 고루 배분돼야 한다. 그렇지 못한 지방자치는 선거로 인한 혼란만 일으킬 뿐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도록 주민소환제, 주민소송제 등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와 주민참여를 반영할 수 있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 단체장이 주민 봉사보다는 권력을 남용해 독단과 전횡을 일삼고 한편에서는 부패와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민선 3기에 기소된 단체장이 전체의 32%에 달한다. 또한 공무원에 대한 무원칙하고 편파적인 인사, 무분별한 개발남용, 단체장 주변 인물들의 개발이익 독점뿐 아니라 단체장의 권력을 견제해야할 의회까지 이권을 챙기며 공생하고 있다. 부안도 지방자치가 시작되어 민선 3기까지 오면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단체장의 구속, 독선적 행정으로 혼란과 고통만 있었다. 심지어 파리를 잡지 못한다고 직위해제 당하는 웃지 못할 인사행정도 보았다.

이처럼 지방자치가 상식으로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권력 남용이 심각한데도 현재로선 속수무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권력에 대한 견제, 균형, 감시 체계 강화는 올바른 지방자치로 가는데 있어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폐단이 해결될 기미도 없이 민선 4기 지방자치가 시작되려 한다. 오히려 전에 없던 기초의원 정당공천, 유급제로 인한 과열 경쟁, 그리고 지연, 혈연, 학연 등으로 쏠리는 구태적 선거행태로 인해 인물과 정책대결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개혁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주민소환제를 미뤄두고 기초의원 정당공천확대 등 지방권력을 이용해 영향력을 늘릴 궁리나 하고 있다.

결국 이번에도 선거가 끝나면 공무원은 또다시 주민 봉사를 위한 소신 행정보다는 단체장 눈치 보기나 해야 할 것 같고, 단체장의 독단과 전횡을 견제할 의회 역시 이권 개입 여지가 많고 단체장과 같은 당 출신이 과반을 넘기 쉬우므로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또다시 4년을 허송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차라리 관선이 낫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꽃이자 완결점으로 반드시 분권과 참여를 통해 본 괘도에 올려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아쉽게도 강금실, 오세훈처럼 ‘살림의 정치’ ‘숨결의 정치’를 주장하면서 권력의 나눔을 통한 분권과 자치를 솔선할 후보를 찾기가 힘들다.

단체장이 그러한 철학과 개혁의지가 없다면 구성원 모두가 자기의 책임과 권리를 찾고 자발적인 참여를 통하여 지역의 행정과 정책들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조그만 변화라도 바랄 수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활동이 중요한 압력으로 등장할 때 지방자치의 성과가 현실화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만큼 정치지도자를 갖는다고 한다.

견제와 참여를 통해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좋은 지도자도 나올 수 없다. 자치(自治)란 말 그대로 스스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자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획득해야 한다. 외부에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주는 것은 자치가 아니라 외치(外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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