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하, 꽃게, 조기 사라지고 풍천장어마저 줄어”

요즘 동진강에는 밀물 때 바람을 몰고 와서 하천으로 올라간다는 풍천장어 잡이가 한창이다. 동진강을 따라 태인천을 넘어 운암호까지 다달아 7년 동안 살을 찌운다는 장어가 짝짓기를 하고 동면을 하기 위해 요새 새만금 갯벌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문포 앞바다에는 긴 그물을 늘어뜨리고 줄지어 썰물을 기다리는 장어 배들이 장관을 이룬다. 이렇게 9월에서 11월까지 잡힌 장어가 한 배에 70~80kg에 달한다.
그런데 올해 봄에 실뱀장어 잡이는 썩 좋지 않았다. 필리핀 동쪽 마리아나 열도 부근에서부터 3천km를 헤엄쳐 온 녀석들이 4공구가 막히면서 덜 들어왔다는 게 어민들의 생각이다. 이는 곧 동진강에서 풍천장어가 감소하는 전조로 여겨지고 있다.
바다로 이어진 하구 갯벌에 방조제를 쌓아 가면서 실핏줄같이 이어진 생명줄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하구갯벌이 장어의 생명줄 역할만 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민들에게도 동진강 하구는 생활의 터전이다.
당장 가을철 장어 잡이를 하고 있는 문포 앞바다 방파제 근방에 벌써부터 내년 봄에 실뱀장어를 잡는 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부표를 묶어 영역을 표시해 놨다. 1kg에 300~400만원 하는 실뱀장어가 올라오는 2월부터 5월까지는 어민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때에 맞춰 1월에 차가운 바닥에서 어구를 수리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25년 째 동진강 근해에서 뱀장어와 새우 잡이를 하면서 올해 4천만원가량의 소득을 얻었다는 김창수 씨(45?동진면 장등리)는 “바다가 없었다면 자식 키우기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아버님이 올해 지은 농사가 9필지에요. 우리가 일을 해줘도 인건비 농약비 떼고 나면 1필지에 연 150만원 소득이 안 될 겁니다. 200만원 기준으로 해도 1년에 1천800만원인데 무슨 수로 아이들 가르치고 삽니까.”
그런데 지난해 6월 4공구가 막히면서 당장에 올해 봄 실뱀장어 어획량이 줄어든 것이다. 90년대 초중반에 새만금 방조제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꽃게와 조기가 사라진 악몽이 떠오른다는 게 어민들의 말이다. 실제로 물고기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여기 말로 ‘지나가는 강아지도 한 마리씩 물고 다닌다’는 게 꽃게 아닙니까. 그렇게 많았는데. 새만금 공사하고 나서 싹 없어졌어요. 4공구 막고는 ‘백하’라고 돼지고기 먹을 때 같이 나오는 새우젓 있잖아요, 그것이 완전히 안 나와요. 우리 부안치가 최고로 비쌌는데. 범게는 확실히 고갈돼 부렀고 실뱀장어도 양은 확실하게 줄었어요.”
환경도 변하고 있다. 물길이 바뀌고 갯벌은 구릉이 됐다. 안성리 문포에 사는 박창수 씨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뿌연 계화도 앞 바다를 가리킨다. “뱃사람들은 저기를 강당이라고 했어요. 물길이 굉장히 넓었거든요. 날 새면 보겠지만 뻘 등이 겁나게 높아져 부렀어요. 전에는 군산에서 배가 많이 왔는데 인자 숫제 못 와요. 수심이 얕아져서.”
바닷물 농도도 낮아졌다. 지난해부터는 해파리가 많이 늘어 조업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짠물이 들어오는 데는 두 군데밖에 없고 민물은 하제 쪽에서 엄청 나와요. 해파리가 늘어난 것도 민물 때문인 것 같아요.” 박씨의 해석이다.
동전리 간척지 마을은 6?25 때 피난민들이 들어와 정착한 난민촌이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조개를 잡아서 곡식과 바꿔 먹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전쟁이 나던 다음해 황해도에서 이곳으로 왔다는 최근춘 씨(58세)는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 갯벌을 잃어버렸다.
“피난 왔을 때부터 이근방 전체가 아사리(계화도조개)하고 꼬막에 의존해서 살았지. 보상이라고 600만원 받았는데 94~5년부터 갯일을 못했어. 뻘이 쌓인 게 그려. 그것이 생명줄이었는디.”
김창수 씨가 “새만금 방조제 생기기 전만 하더라도 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물을 올리지 못할 정도였는데 누가 그걸 믿겠냐”고 물었던 것처럼 새만금 방조제는 모든 것을 옛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 요새 동진강 갯벌에는 평일, 휴일 가릴 것 없이 망둥어 낚시꾼이 몰려든다. 동진강이 새만금 방조제로 막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서울의 한 할아버지(65)는 여기서 반나절 동안 30마리의 망둥어를 잡았다고 자랑했다./한계희 기자 ghh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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