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농정의 핵심축 ‘푸드플랜’, 먹거리를 계획하다

즉시 행동이 필요한 기후비상사태
상품이 아닌 필수재로서의 먹거리…지속가능한 먹거리 보장체계
새로운 유통방식이 아닌 공공의 먹거리체계를 만드는 일

먹거리에 대한 그동안의 접근은 주로 산업적 측면에서 다루어져 왔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의 소득문제, 과잉과 과소로 인한 가격문제가 주요한 이슈였다. 하지만 국민소득의 증가와 지구적 문제의식의 확산과 함께 먹거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푸드플랜은 먹거리에 대해 생산과 소비 이외에도 먹거리를 둘러싼 환경, 이동거리, 지역경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또한 상품으로서의 농산물이 아닌 누군가(국가, 자치단체 포함)는 책임져야 할 필수재로서 먹거리를 바라본다. 따라서 농업, 환경, 복지, 지역, 보건 등 푸드플랜이 포괄하는 범위는 매우 넓다.
푸드플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완주에서 시작된 로컬푸드운동이 한창 꽃을 피울 무렵인 2015년, 전주시가 지역 먹거리 종합계획으로 전주 푸드플랜을 수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국가 푸드플랜 수립을 내걸면서 푸드플랜 논의는 국가정책의 범주로 위상이 올라간다.

 

  

푸드플랜에 관한 지구적 논의는 이미 그 역사가 훨씬 오래 되었다. 나라마다 먹거리가 갖는 특성에 따라 푸드플랜에서 강조하는 지점이 다르다. 예컨대 호주의 푸드플랜은 농산물 수출을 비중있게 다루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계획들이 공통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한 안보, 안전, 건강, 환경, 지역, 산업 등이다. 특히 최근 들어 지구적 환경문제가 ‘관심과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 ‘즉시 행동해야 할 상황’인 ‘기후비상사태’(2019 영국의회 결의안) 수준에 이르자 먹거리의 지속가능성 문제가 푸드플랜의 핵심 의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의 푸드플랜은 지역 단위 푸드플랜과 국가 단위 푸드플랜으로 나뉘어서 추진되고 있다. 지역 단위 계획은 2018년도에 도시, 농촌, 복합, 광역 선도 지자체 9곳을 선정하여 계획이 수립 추진 중에 있고 2019년도에는 25개 자치단체가 농림부 사업에 선정되어 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2025년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지자체가 지역 푸드플랜을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 푸드플랜은 지역 푸드시스템을 포함한 국가 단위 먹거리 종합계획으로 기존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 생산·진흥), 해양수산부(수산물 생산·유통), 식품의약품안전처(식품안전), 보건복지부(건강·영양 관리), 교육부(학교급식), 환경부(식수·음식물 쓰레기) 등으로 분산되어 있던 먹거리 관련 기능을 통합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올해 국가 푸드플랜을 수립하고 내년부터 정책반영을 목표로 추진 중에 있다. 주요 의제는 그림과 같다.

 

 

지역 푸드플랜은 위에서 보았듯이 대부분의 지자체가 수립 중에 있거나 본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부안군은 2019년에 농림부 사업에 선정되어 현재 기본계획수립 용역 중에 있다. 필자는 지난해 ‘제3기 푸드플랜 실행전략 수립과정’ 6주간(주 1박 2일)의 연수를 부안군 관계자와 민간인 등 4명과 함께 참여한 바 있다. 종합하여 사업의 주요 흐름을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역푸드플랜은 생산의 조직화, 검사기관, 공공급식, 푸드통합센터, 로컬푸드 마켓, 공유주방,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사업, 거버넌스, 등으로 구체화된다.  
지역 푸드플랜은 생산의 조직화와 관련하여 친환경농업이나 친환경적 농업을 우선한다. 대상도 중·소농의 생산 조직화와 직거래에 초점을 둔다. 농가는 HACCP인증 가공센터에서 장아찌, 효소, 장류, 과자, 음료 등의 가공품을 만들어 로컬푸드 매장이나 공공급식센터에 판매한다. 완주의 경우 3천여 명의 중·소농이 소규모 농장(330㎡)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우선 구매한다. 마을 단위 소규모생산 조직도 참여가 가능하다.
이렇게 생산된 농산물은 지정된 검사기관에서 안전성 확인을 거친다. 완주의 경우 완주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인증 관련 업무를 처리한다. 농산물의 취급 기준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잔류농약이 허용기준 이내인 농산물과 친환경농산물이며 축산물은 무항생제나 유기축산 농산물이다. 불합격한 농가는 1회 3개월, 2회 6개월, 3회 1년동안 인증이 정지되어 출하를 할 수 없다. 매년 1천 여건의 샘플을 검사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농축산물과 가공품은 로컬푸드 매장을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된다. 정부는 2천 개의 로컬푸드 매장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부안에도 2개의 로컬푸드 매장이 개설되어 있다(곰소-남부안 농협, 격포-변산농협). 전라북도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30여개의 로컬푸드 매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올해도 몇 개가 개점을 예고하고 있다.
공공급식은 푸드플랜의 핵심영역 중 하나이다. 가장 중심에 학교급식이 있다. 부안의 경우 23개 조리학교를 통해 4,300여 명의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다. 현재는 쌀과 잡곡은 100% 친환경이, 기타 농산물은 43%가 친환경학교급식센터를 통해 공급되고 있고, 기타 가공품과 농산물은 입찰을 거쳐 일반 유통 업체가 공급하고 있다. 푸드플랜이 수립되면 이러한 학교급식은 하나로 통합되어 푸드종합센터에서 공급하게 된다. 여기에 공공기관 단체급식을 우선으로 요양원과 병원 급식까지 푸드플랜을 통해 공급될 전망이다. 복지기관을 통해 운영되는 각종 먹거리지원에도 사용된다.
푸드통합센터는 농축산물의 생산과 유통을 총괄하는 기능을 맡게 된다. 생산농가의 조직화와 관리, 물류의 배송, 인증품의 검사의뢰, 연관 위원회의 회의, 생산, 소비자, 학생 교육 및 토론등을 주관하는 장소이자 시스템으로 기능하게 된다.
공유주방은 여러 소규모 식품가공 조리 업체들이 모여서 사용하는 주방시설을 말하기도 하지만 푸드플랜에서는 공공기관이나 복지기관에 공급하는 도시락이나 단체급식에 필요한 조리된 음식을 만드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부안군은 부안군만의 특성을 반영한 푸드플랜의 영역으로 수산물 공급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푸드플랜에서는 무엇보다 민관 거버넌스(참여와 소통이 가능한 협치기구 혹은 방식)가 중요하다. 조직되고 기획된 생산을 기반으로 반드시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에게 공공의 가치를 담아 먹거리를 공급하는 푸드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푸드플랜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생산하고 확인하고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모든 내용이 일방적으로 결정될 경우 푸드플랜은 지속가능한 먹거리 순환시스템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참여자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역푸드플랜을 만들어 나감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사업을 통해 무엇을 이룰 것인가 하는 사업의 방향이다. 자칫 새로운 유통방식을 만드는 문제로 접근할 경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사업의 매 단계마다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인가?’ ‘왜 친환경인가?’ ‘왜 조직화와 기획생산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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