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옥근 씨는 지난 2019년 전북여성새일센터 취업성공수기 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부안군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그녀는 “병원에서 만나는 건 뭔가 눈치 보이고, 우리 집은 너무 멀어서요”라며 친정처럼 여긴다는 다문화지원센터를 약속장소로 정했다.
한국에 오기 전 그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열여섯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자동차공장에서 일했다. 소방원이던 첫 남편을 만나고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03년 중국에 놀러 온 지금의 남편과 처음 만났고 다음 해인 2004년 한국으로 왔다.
“남편 따라 한국으로 왔는데 오자마자 큰딸을 가졌어요. 애기 낳고 키우느라 한국 오고 몇 년 동안은 그냥 집에서만 지내고 고향엔 돈도 못 보냈어요.”
처음 한국에 오던 날 “내가 왜 이렇게 멀리까지 시집왔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비행기로 두 시간, 차로 네 시간이나 걸린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진 탓이다. 하지만 나무가 많고, 꽃이 잔뜩 펴 예쁜 집을 보고는 금세 잘 살고 싶어졌다.
한국에 오고 몇 년 동안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냈다. 뱃일을 하는 남편은 그녀를 배에 태우거나 바깥일을 시키지 않았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모시고 살았던 시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았다. “아버님이 옛날 사람이라 남편한테 간섭이 심하고 자주 싸웠어요. 그래도 저를 예뻐하셔서 데리고 나가서 밥도 잘 사주시고, 만들어 드리는 국수나 만두도 좋아하시고 좋은 분이었어요”
점점 나이 들고 건강도 나빠지는 시아버지를 집에서 모시려고 그녀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설득에 시아버지께서 직접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셨다. 시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었을까, 그녀는 아예 시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2년 가까이 일했는데 그녀가 그만두고 얼마 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비록 집에서 모시지는 못했으나 병원에서라도 직접 시아버지를 모신 셈이다.
“아버님이 신 김치를 안 드셔서 매번 겉절이를 담아야 했어요. 처음엔 담을 줄 몰랐는데 아버님 덕분에 겉절이는 이제 잘 담아요. 얘기하다 보니 아버님 보고 싶네”라고 하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시아버지 때문 만은 아니었다. 시아버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 달 전 돌아가신 친어머니 생각도 났다고 한다.
남편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은 배를 잘 몰고 늘 바다 일을 했다. 돈도 잘 벌고 잘 쓰고 호탕한 사람이었다. 첫째를 가졌을 때만 해도 생합(백합)을 잡았는데 조개·새우등 맛있는 해산물을 많이 갖고 와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3년 뒤 둘째를 가졌을 때는 바지락 잡는 일을 했는데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 “바지락이 너무 작아져서 맛도 못 봤어요”라고 했다. 결국 뱃일이 점점 어려워져 평생 바다 일을 해오던 남편은 작년 4월부터 건설일을 하러 다닌다.
남편의 벌이가 줄어들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서 그녀는 무엇이든 하기 위해 복지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글을 배우고 한국어능력시험도 쳤다. 버스 시간이 바뀌고 읍내에 다니기가 너무 불편해서 운전면허도 땄다. “내가 면허 따고 차 몰고 다니면서 몇 번이나 사고 쳤는지 몰라요”하며 부끄러워했다.
그 후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부안효병원에 취직했다. 한국에서의 첫 직장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여러 사람 눈치도 보고 말이 서툴러 자주 혼났다. 결국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잠시 쉰다는 것이 그만 일자리를 잃게 됐다.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갔던 군청 일자리센터에서 얼떨결에 취업수기를 쓰게 됐다. 평소에 좀처럼 글을 쓰지 않는데 그날따라 무슨 일인지 한번 써보고 싶었다. ‘한국이 좋다’는 제목을 정하고 살아온 이야기와 취직 이야기를 술술 쓰다 보니 한 장이 훌쩍 넘어갔다. 별 생각없이 쓴 글로 덜컥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 수상소감을 물었는데, “어머니께서 많이 아플 때여서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사실 그녀는 시상식장에도 갈까 말까 많이 고민했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중국에서는 간호사를 호사라고 부르는데 아버지가 돈도 적게 벌고 동생이 많아서 엄두를 못 냈어요. 호사는 공부를 해야 될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이루지 못했던 꿈인 것이다.
그녀는 지금 하는 일을 참 좋아한다. 아픈 어르신들이 낫는 걸 보는 게 무척 뿌듯하고 사람들 속에 있으니 더 사는 맛이 난다고도 했다. 그녀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호스피스 간호과정’을 공부해보고 싶다. “계속 더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텐데 그분들의 마지막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나아지는 것을 보며 행복해하는 것으로 모자라 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잘 보살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그녀에겐 간호사가 정말 어울리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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