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화 들녘에 추진되고 있는 풍력발전단지 배치도

생물 다양성 보전 지역·동진강 철새도래지…훼손 우려
계화사회단체협의회 반대 서명 진행, 주민 1200명 참여
업체 측 “풍력발전은 친환경적, 타지역에서도 성공했다”

한 민간발전업체가 평화로운 계화 들판에 느닷없이 풍력발전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주민들이 반대 서명에 돌입하는 등 사업 허가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에코플렉서스코리아, 한국중부발전, 청남주식회사 등 3개 컨소시엄인 부안계화풍력발전(주)이 지난 해 12월 23일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에 풍력발전 전기사업 허가를 신청함으로써 촉발됐다. 이 업체는 계화면 양산리와 창북리 일대의 논 열여섯 필지를 임대해 높이가 190m에 이르는 풍력발전기 총 16기를 세워 풍력발전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사업 규모는 2024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계화 농민들은 이 사업으로 인해 농지가 훼손되고 농사짓기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들판 전체가 절대농지인 이곳에 풍력발전기가 들어선다면 광활한 들판의 경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발전기가 돌아가며 만드는 소음과 번쩍이는 그림자들로 인해 불편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또 발전기로 인해 논농사에 있어 꼭 필요한 항공방제나 드론방제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농민은 “쌀 이외에 주곡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농지를 발전산업에 이용하는 것은 농업과 식량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며 “개발이 아니라 이 농지들을 이용한 콩, 팥 등의 다양한 곡류 재배를 장려하고, 어떻게 농업 생산성을 높일지에 대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축산농가의 우려도 다르지 않다. 축사와 발전기 예정지의 거리가 불과 1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농가도 있어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계화면에는 20~30대 젊은 세대들이 축사를 많이 운영하고 있는데 발전시설이 들어설 경우 이들 젊은이들이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민들은 걱정했다.
뿐만 아니라 환경 훼손에 대한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동진강 하구에 자리 잡은 계화는 해마다 겨울이면 수 많은 철새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철새들의 먹이가 될 밀· 보리 등을 경작하는 ‘생태계다양성보전을 위한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곳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되면 먹이와 보금자리를 찾아 온 새들이 발전기 날개에 부딪혀 죽는 등 주변 생태계가 심각하게 망가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이미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타 지역 주민들의 피해 사례에서 보듯이 전자파·저주파 소음 등으로 인해 주민 생활과 건강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로 한 주민은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농민들과 인근 주민들의 생활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어떻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 밖에도 주민들은 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공식적으로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공청회 등의 절차도 없이 땅 주인들에게만 개별적으로 제안을 하는 등 사전작업을 한 업체의 행태에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 사업의 추진 소식을 접한 계화사회단체협의회는 긴급하게 반대 서명을 진행했다. 이 단체 정순열 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총 1200여 주민들로부터 반대 서명을 받아서 15일 날 부안군에 전달했다”면서 “농사를 짓는 땅에 발전기를 세운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분개하고 또 대부분이 반대하는 입장이다. 원천적으로 막을 생각이다”고 밝혔다. 부안군은 주민들의 이 같은 의견을 오는 1월 23일까지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하는 한편 전북도에도 전달할 예정이다.
이처럼 주민의 반발이 커지자 부안군의회도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의원들은 이 결의안에서 “풍력발전기는 친환경이라는 타이틀과 달리 그 지역 자연경관을 형편없이 망치는 흉물”이라면서 “잘 알려진 일반적인 부작용만 해도 풍력터빈의 저주파 공기역학적 소음에 의한 어지럼증과 두통 그리고 회전날개에서 반사되는 빛 공해를 유발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으며, 드넓은 계화 간척지에 대한 환경훼손과 그에 따른 재산가치의 하락, 송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등 환경물질 배출 피해, 그리고 더 나아가 평화롭고 사람 좋은 농촌인심으로 함께 동고동락하던 주민 갈등이라는 심각한 문제까지 야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반해 업체 측은 ‘풍력발전은 다른 어떤 발전방식보다 친환경적이며 공공성을 위한 사업’이라며 강행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 업체 A대표는 “우리는 이미 영광 등 다른 지역에서도 대규모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한 경험이 있고 현재 큰 수익을 내고 있어 부안에서도 성공할 것으로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업체는 이미 해당 토지주들로부터 발전기를 설치하기 위한 임대 승낙을 받은 상태라고 밝혀 사업이 물밑에서 상당히 진행돼 왔음을 시사했다. 임대방식은 20년 단위로 20년 후 발전기를 보수·재설비 하는 리파워링을 위해 계약을 갱신한다. 다만 이 업체는 구체적인 임대료 액수는 밝히기를 거부했다.
반면 주민들은 업체가 발전기를 설치하는 땅의 임대를 10년 단위의 계약으로 연간 천만 원, 총 일억 원을 지급하는 제안을 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업체가 발전기를 설치하고자 하는 필지를 우선 선정하고 주인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해 임대를 제안했고, 주인들로부터 구두승낙을 받았다”고 밝혀 임대료를 둘러싼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업체의 임대 제안을 거부한 한 주민은 “이 사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임대 기간 이후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몰라서 제안을 거절했다”고 알려왔다.
이처럼 주민들의 다양한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업체 측이 사업강행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어 충돌 소지가 큰 데다, 주민들과 토지주들의 입장이 서로 달라 주민간 갈등으로 불거질 수도 있어 행정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도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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