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의 끊어진 풍류 음악의  맥을 잇다"

‘줄풍류를 아시나요?’
풍류 음악의 최고봉인 줄풍류의 맥을 잇기 위해 20년째 한길을 걷고 있는 ‘부안향제줄풍류 보존회’ 김성규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 금요일 한국국악협회 부안군지부를 찾았다.
“내가 좋아서 하는 데 무슨 자랑거리냐, 왔으니 대금이나 한 가락 듣고 가라”던 그에게 “하나만”이라며 물었다. “줄풍류가 도대체 뭐예요”
자신 자랑에는 인색하던 백발의 김 회장은 줄풍류에 관심을 보이자 “앉아 보라”며 보따리를 풀어놨다.
줄풍류는 거문고, 가야금, 대금, 피리, 해금, 장구, 단소, 양금 총 8가지 악기로 연주되는 작은 관현악으로서 15가지의 풍류 음악을 말한다.
크게 서울의 줄풍류와 지방의 줄풍류로 나뉘는데 서울의 경우 국립국악원이 전통음악으로 흡수하면서 맥을 이어오고 있는 반면에 지방은 쇠퇴의 길을 걷다 지금은 거의 단절상태에 있다. 그나마 비교적 잘 유지되온 곳은 구례와 이리(익산)로서 특색을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로 등재돼 체계적인 전수가 되고 있다.
“정해진 곡을 연주하는 것이라면 다 똑같을 텐데 지방별로 나뉜 이유는 뭐죠”
같은 음악이라고 하더라도 지방 고유의 연주 관습과 색깔은 흉내 낼 수 없다. 풍류 하면 빠질 수 없는 부안도 나름의 줄풍류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서양음악이 대중화되면서 인기도 줄고 전수자도 줄고 부안의 향도 지워졌다.

 

20년을 함께한 줄풍류 악보집

김 회장이 부안줄풍류를 알게 된 것은 취미로 생각했던 대금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내소사에 갔는데 키가 자그마한 분이 곧게 서서 대금을 불더군요, 근데 들어보니 그 소리가 기가 막히게 좋아요, 소리뿐만이 아니었죠. 연주하는 모습도 얼마나 멋지던지……” 김 회장은 내친김에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서울 살더라고요. 가까운데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쉽게 풀리겠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를 자문하고 모를 때마다 연락도 하고 제가 서울 갈 일 있으면 직접 만나기도 하고……그렇게 해서 용기를 갖고 시작했지요”
공직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대금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멀리 익산까지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운명같이 그곳에서 임수현 선생(이리향제줄풍류전수자)을 만났고 대금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날 무렵 하나의 과제를 받게 된다. 바로 끊어진 부안의 풍류 음악을 되살려 보라는 것이다.
줄풍류의 큰 줄기가 부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졌다.
“사람을 모집하고 줄풍류를 연주할 실력을 쌓는 게 힘들었지요, 9~10명이 매주 토요일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간을 익산에 가서 배웠어요. 뜻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이 정도면 부안줄풍류의 맥을 이을 만하다 해서 2005년에 ‘부안향제줄풍류 보존회’를 창단했다. “큰 짐을 짊어진 것이지요. 단체를 만들기만 하면 저절로 굴러가는 게 아니잖아요. 연습할 공간도 있어야 하고 운영비도 있어야 하고, 그런데 막막하다가도 하려고 하면 길이 생기더군요. 바로 한국국악협회 사무국장직을 맡으면서 많은 것들이 해결됐지요”
사단법인인 한국국악협회는 번듯한 연습실이 있다. 세 들어 사는 것 같지만 하나의 국악이고 또 국악인들을 길러내는 데 뜻이 같기에 공유하는 것이 가능했다.
큰 시름은 덜었지만, 고가의 악기에 운영비 등이 문제로 남아있었다. 김 회장은 행정의 지원이 해결책이라고 판단해 부안줄풍류의 역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풍류 음악의 큰 산인 김규수 어르신을 찾아뵙고 입으로만 전해오던 부안의 특색을 찾아 나섰다. 그런 노력 탓에 보존의 가치를 인정받아 행정이 지원을 시작하면서 운영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김 회장이기에 가능했다.
“2009년도에 첫 발표회를 열었지요. 딱 4년이 걸렸지만 끊어진 맥을 이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어요. 우리도 구례나 이리같이 무형문화재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은 셈이었죠”
열심히 하다 보니 개인의 영광도 뒤따랐다. 정읍에서 열린 국악경연대회에서 대금 부분 신인부 대상을 거머쥐었다. 대금을 손에 잡은 지 15년 만이다.
판소리를 잘 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대회에서 장려상이나 우수상을 받기도 했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한다.
“풍류 음악이 흐르고 시조를 읊던 선조들을 생각해보세요. 끊겨서는 안 돼요. 부풍율회가 시조의 맥을 이어간다면 우리 보존회가 음악을 지키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보존회는 매주 수요일 밤 7시에 연습을 한다. 누구든지 배우고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무료로 전수도 하고 있다.
김 회장은 “산만하지 않고 차분하며 효 사상이 들어있는 음악”이라며 많은 이들이 국악을 접하고 풍류 음악을 즐기길 당부했다.
듣고 싶다고 하니 대금연주도 들려주신다. 마치 내소사에서 만난 연주가처럼 멋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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