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
1980년 3월, ‘서울의 봄’이라 불리던 시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 말은 두 달 후 일어난 광주항쟁의 배후가 김대중이라는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행동하는 양심”과 함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김 전 대통령이 전매특허를 받은 명언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DJ는 이 말을 할 때 분명히 토머스 제퍼슨의 말이라고 그 출처를 밝혔으니 권리침해나 표절은 단연코 아니다. 더구나 제퍼슨이 한 말은 이와 약간 다르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이다. DJ가 토마스 제퍼슨의 이 말을 인용하면서 압제자란 단어를 일부러 누락시킨 이유는 전두환 군사독재 일당을 타도하라며 국민을 선동했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DJ는 당시 군사재판에서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고, 현재까지도 일부 수구 선동가들은 DJ의 이 말이 폭력을 선동한 것이며 DJ가 빨갱이라는 증거라 주장한다. 내란을 저지른 내란 죄인이 민주인사와 양심세력을 내란죄로 조작한 주객전도요, 본말전도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도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소위 보수논객이란 사람들은 토론의 주제와는 동떨어진 다른 주제를 들고 나오거나 상대방의 사소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시청자들을 호도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을 웩더독 전술이라 한다. 웩더독(WAG THE DOG)이란 서양의 속담으로 “개꼬리가 개 몸통을 흔들다”는 말인데, 줄여서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고 우리도 종종 쓰는 속담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이 속담이 주로 증권시장에서 사용돼 왔다. 증권시세가 현재의 가치대로 반영되지 않고 미래의 예상 가치에 좌우된다는 의미다. 전문용어로 표현하자면 선물이 현물시장을 흔드는 현상을 웩더독이라 한다. 미국에서는 이 웩더독을 정치용어로 진화시켰다. 정치가들이 자신의 약점을 감추거나 자신에 대한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유권자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유도하는 행위를 웩더독이라 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애용하는 웩더독 방식은 전쟁이었다. 특히 여론에서 밀리는 현역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만지작거리는 카드가 전쟁을 일으키거나 유도하는 행위였다. 이런 내용으로 1997년 미국에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 니로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의 제목 역시 ‘웩더독’이었다. 그 영화의 줄거리는 여고생 성희롱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외국과 전쟁을 가상으로 일으켜 여론을 바꾸는 데에 성공한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개는 왜 꼬리를 흔들까?” “왜냐면 개가 꼬리보다 영리하기 때문이지.” “만약 꼬리가 더 똑똑하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 수 있겠지.”
21세기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도 웩더독을 매일 보고 있다.
조국 전 장관 딸의 표창장과 검찰개혁은 무엇이 몸통이고 어느 것이 꼬리일까?
선거법을 개정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것과 국회의원 정수 10%를 늘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각자 생각에 따라 앞의 두 질문에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을 다르게 할 수는 있겠으나, 국민이 몸통이고 판검사, 장관, 국회의원은 꼬리이며, 국가와 민족이 몸통이고 행정, 입법, 사법기관은 꼬리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고객은 왕이라고 외치면서 속으로는 소비자를 봉으로 생각하는 기업들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고위공무원이 기자들 앞에서 국민들은 개나 돼지와 같다고 정색하고 말했던 사건은 꼬리가 개보다 똑똑해서 일어난 웩더독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웩더독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주객전도, 본말전도가 된다. 더 쉬운 말로 옮기면 하극상이라 할 수도 있다. 머슴이 주인을 부리려 하니까 말이다.
웩더독은 마케팅 분야에서도 사용하는 개념이다.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본 제품보다 사은품이나 덤이 더 큰 판매효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웩더독이라 한다. 끼워 팔기나 과도한 경품이 이에 해당하는 사례다. 지엽적인 문제가 본질적인 문제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이라서 본말전도라 번역할 수 있다. 더 쉬운 말로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번역해도 합당할 것이다.
지난 4월에 국회는 자유한국당의 격렬한 저지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이 4당공조를 통해 패스트 트랙(신속처리대상안건)을 통과시켰다. 패스트 트랙에 올린 안건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축으로 하는 선거제 개혁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검찰 개혁안이다. 여당으로서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에게 검찰개혁에 선거제도 개혁을 끼워서 공조를 이루어 낸 샘이다. 그러나 검찰개혁이 몸통이고 선거제 개혁이 꼬리라는 말은 아니다. 이 경우는 4개 정당이 각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봐야겠지만, 몸통인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패스트 트랙에 태운 이 개혁 3법(공수처법, 검경 수사권조정법, 선거법) 모두 긴요한 것이기 때문에 국회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몸통이자 주인인 국민 대다수가 원하기 때문이다. 일부 정당 혹은 국회의원들이 웩더독하려 한다면 그들보다 더 영리한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심판할 것이다. 단지 촛불시민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서양 속담 중에 이런 것도 있다. “짖지 않는 개를 조심하라! 늙은 개는 공연히 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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