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동초 학생들, 부안군의회에서 ‘어린이의회’ 교실 경험
제8대 부안군의회 개원 1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프로그램
“학생들이 직접 주제 정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개선” 방침

‘생동하는 부안’이라는 슬로건이 우리 지역 곳곳에 붙어있지만, 어디서 어떤 식으로, 또 언제쯤이나 진짜 생동하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을까,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지난 1일 부안군의회 정문으로 한 떼의 초등학생들이 몰려들면서 근엄하기 그지없던 부안군의회는 뜻밖에도 생동의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부안동초등학교 학생 30여 명이 부안군의회가 개원 1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어린이의회 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본회의장에 들어선 학생들이 얼추 자리를 잡고 나자 의장(신기욱. 6학년)이 “이번 의회 체험활동을 통하여 부안군의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회의 진행은 어떻게 하는지, 군민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되는지 등에 대하여 잘 배우고 익혀서 우리 고장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는 계기로 삼고 학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동료의원들(?)을 향해 의젓한 당부를 하면서 개의를 선언했다.

어린이의회에 참가하기 위해 부안군의회로 들어오는 동초학생들.

이어 두 명의 학생이 2분 자유발언에 나섰다. 먼저 발언대에 오른 강래현 의원(6학년. 부안읍·행안면 지역구)은 “학교 밖 어린이들에 대해 우리 군에서는 얼마나 지원하고 있느냐”고 포문을 열고는 “지원을 받아야 하는 소외된 어린이들, 때로는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며 부안군의 지원을 촉구하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유채원 의원은 “현재의 노인복지시설들이 병원과의 거리가 멀어 위급한 상황에 긴급하게 대처할 수 없다”면서 “응급 비상벨 설치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라”고 집행부에 주문했다.

2분 자유발언을 하는 강래현 의원

이 초등학생 의원님들의 발언은 실제 부안군 행정에 반영해도 손색이 없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없는 학교 밖 청소년 문제와 노인복지 문제라니. 어른들은 외면하고 있는 공동체적 관심사를 초등학생들의 입을 통해 듣고 나니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의회사무과와 교사들이 내용 대부분을 손 봤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긴 했다)
의장은 이어 ‘즐겁고 신나는 학교 만들기 조례안’을 안건으로 상정했고, 의안을 제출한 박한결 군수(6학년)가 발언대로 나와 제안 설명을 했다. 박 군수는 “학교는 가정과 함께 주요한 사회생활의 축소판”이라고 규정한 뒤 “그러나 집단 따돌림, 괴롭힘 등으로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즐겁고 신나야 할 학교가 가기 싫은 곳으로 비춰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 모두의 행복과 희망이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조례안을 제출하게 됐다”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회의장 전경. 오른쪽에 서 있는 학생이 신기욱 의장

이후 실제 부안군의회 본회의장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의장이 질의할 의원이 있느냐고 묻자 박성린 의원이 손을 번쩍 든 것이다. 박 의원은 행정복지국장을 향해 “학교 폭력에 대한 부안교육지원청과의 협치 방안”을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답변에 나선 김서윤 행정복지국장은 “육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언행을 통한 정신적 폭력도 폭력”이라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여 말하도록 하는 철저한 학교 교육이 필요하다”는 다소 뜬금없는, 하지만 현실 속 공무원들 답변과 너무나 닮은 협치 방안을 내놓았다.

찬반토론에 나선 의원

이어 질의에 나선 이서윤 의원은 산업건설국장에게 “생활안전 전담기구를 설치해 보다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하라”면서 실질적인 정책과 대책을 요구했고, 이예슬 산업건설국장은 “학교폭력 예방 인프라 확충과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등 단계별 맞춤형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위한 전문상담시스템 구축과 학교 배움터 지킴이 배치를 통해 학교와 지역의 책무성을 강화하겠다”고 꽤나 ‘전문적인’ 답변을 했다.
이어진 순서는 의원들의 찬반토론이었다. 기자가 7~8대 의회를 취재하면서 부안군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찬반토론을 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신통하기만 했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김지효 의원은 조례에 ‘급우의 학교생활을 도운 학생에 대한 상장 수여’ 조항을 거론하며 “학생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해당 조항을 삭제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발언대에 오른 배수빈 의원은 “(이 조례가) 학생들의 올바른 인격 향상에 도움을 주고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로 찬성 의견을, 한정우 의원은 “즐겁고 신나는 학교는 타율에 의한 강요로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자율적인 교육활동에 맡겨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이채린 의원은 “학창시절 학교 폭력에 의한 피해의식은 커서도 사회생활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인성교육을 적극 실시할 수 있도록” 조례 제정에 적극 찬성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동초 6학년생인 박한결 군수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다양한 논리가 펼쳐지면서 부안군의회 본회의장은 지난 몇 년을 통틀어 가장 활발한 ‘민의의 전당’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실제로 “어른들 보다 낫네” 하는 귀엣말이 들리기도 했다.
마침내 표결에 들어가고 거수투표 결과 9대 2로 조례안은 가결됐다. 의장이 산회를 선포하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그제야 학생들은 긴장을 풀며 의사당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등 호기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과 3분이나 지났을까, 학생들은 본회의장을 뛰어다니고 서너 명씩 의장석에 앉아 사진을 찍더니 마침내 방청석으로 쿵쾅거리며 몰려간다. 본회의장 생동 게이지가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의장을 맡았던 신기욱 학생은 “TV로만 보다가 직접 해보니까 어렵기도 한데 새롭기도 하다”면서 “나중에 다시 와서 또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커서 부안군의원이 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는 “어려워서 싫다”고 고개를 젓는다. 2분 자유발언을 했던 강래현 학생은 “재미있었고, 어려웠지만, 학교 밖 어린이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학생들은 인솔한 홍성훈 교사는 “우리 어릴 때는 이런 경험 못해봤는데, (아이들도) 언제 이런 경험을 하겠나, 앞으로도 계속됐으면 좋겠다”면서도 “몇 개월 정도 시간을 두고 학생들이 (지방의회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하고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주제를 잡고 실질적인 토론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고 말했다.

홍 교사의 지적처럼 이번 모의 의회는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한 주제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운영한 것은 아니었다. 이 점을 의식한 듯 의회 관계자 역시 앞으로는 학생들이 직접 주제를 선정하고 즉석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의 난상 토론으로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응당 그래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지금은 단순히 물적 풍요를 추구하기보다 지역의 인재를 키우는 쪽으로 사회가 진화하고 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진정한 미래 자산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첫발을 뗀 모의국회는 그래서 더욱 의미 있다.
아무려나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부안군의 주요 정책과 살림살이에 직접 참여해 본 경험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부안의 교육 현안을 놓고 학생들과 실질적인 토론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흐뭇한 광경이다. 생동하는 부안은 멀리 있지 않다.
한편, 작년 7월 개원하여 1주년을 맞이한 부안군의회는 이날 부안종합복지관을 찾아 배식 활동을 벌였다. 부안군의회는 특별한 기념행사를 지양하고 더 낮고 겸손한 자세로 군민이 진정한 부안의 주인이 되는 대의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뜻에서 이 같은 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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