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훼손 심각눈앞 이득에 군-업자 결탁

‘인간, 자연, 문화가 어우러진 바람의 도시’, 군청 홈페이지에는 부안군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산, 들, 바다가 어우러져 과연 부안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천혜의 관광 명승지다.
부안군도 한국방송(KBS)에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프로그램 제작 장소를 제공하고 이에 맞춰 영상테마파크를 짓는 등 관광 부안을 앞장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부안군이 주민의 시야를 온통 밖으로 쏠리게 하는 동안 이 지역의 산천은 동강나고 파헤쳐지고 있다. 동시에 사람들의 삶은 고통 받고 이 지역에서 꽃피웠던 찬란한 문화는 외면당하고 있다. 죽은 ‘이순신’이 산 사람을, 향토 문화를 깔아 뭉게고 있는 형국이다.

개발 열풍
707번 지방도와 23번 국도를 따라 부안 쪽으로 오다보면 곳곳에 쥐 파먹은 듯 하얀 살을 드러낸 산들이 눈에 띤다. 산마다 패인 흔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미 석재 채취가 끝난 곳도 마무리 작업을 하지 않아 그물로 덮어 놓은 곳이 있을 정도로 위험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이런 사정은 705번 지방도도 마찬가지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을 제외하고 부안의 동편과 북서편 높은 산들은 거의 대부분 개발에 치여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다.
부안군에 따르면 현재 채석허가를 받아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은 주산면 두 곳, 하서면 한 곳, 보안면 두 곳 등 모두 다섯 곳이다. 거의 대부분 5년 이상 산을 깎아 먹은 터라 정상 가까이 구멍이 생겼다.
특히 배메산은 주산과 보안 양쪽에서 파들어 가고 있어 산 한쪽 끝자락이 끊길 듯이 위태롭다. 석불산도 새만금 사업을 핑계로 확장 승인을 받아 산 정상 가까이 골재 채취가 이뤄지고 있다. 장지산은 허가 기간이 끝나 흉물스럽게 방치된 골재 채취장 옆에서 새롭게 흙을 파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제 이름을 잃고 ‘석산’이라 불린다. 도로공사도 한창이다. 부안-격포간 국도공사를 하고 있는 변산면 마포리에 있는 산은 허리가 끊겨 지나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해창산은 아예 사라져 평평하게 됐다.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사람들의 고통
개발업자와 군이 이윤과 세수로 의기투합해 손잡고 웃으며 개발 열풍을 부채질하는 날들이 주민들에게는 오롯이 고통의 나날이다. 집에 금이가고 비산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발파 소리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공정이 오래된 곳은 분노와 체념이 뒤섞이기도 한다.
배메산 골재채취장 바로 아랫동네인 제내마을(소산리)에 사는 한 할아버지(70)는 “(발파소리가) 꽝하믄 (땅이) 드르륵 한다”며 “기와집이 다 벌어져 부렀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 사는 한 할머니도 “자연산을 저래 놓은게 동네가 배려부렀다”며 “소가 첨에는 뛰고 그러더니 적응했는가 아무 소리도 안한다”고 체념 섞인 한숨을 쉬었다.
더 큰 문제는 소음이 사람을 죽을 지경에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보안면에 사는 김아무개(67) 씨는 지난 2000년 아내를 잃었다. 병명은 위암으로, 신경성이라는 게 그의 증언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니까 아무 일 없는데 안사람은 집에 있으면서 발파소리에 충격을 받았나 봐요. 병원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년 전 재혼해서 살고 있는 현재 아내도 지난해 초 위암수술을 받았다. 그는 “가급적 내가 나갈 때는 같이 나가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라며 “처음 만날 때만 해도 건강했는데 무서워서 집에 못 있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말끝을 흐렸다.
눈물겨운 투쟁의 목소리도 이어진다. 석불산 근방의 주민들은 꼬박 5년 동안 개발업자와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당초 동의서를 받을 당시부터 불법적이었던 부분을 뒤집기 위해 소송을 걸기도 했고 진정서를 제출한 것도 여러 차례였지만 중요한 때마다 부안군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판단이다.
지난 2002년에는 마을 주민들이 조를 편성해 한 달 내내 하루 종일 골재를 실어 나르는 작업차량 수를 일일이 적어 불법행위를 입증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고 한다.

정신을 갉아먹다
무엇보다 산을 깎아 내면서 주민들의 삶이자 정신이 훼손되는 것이 큰 문제다. 한 주민은 “매일 일어나서 문을 열면 산이 있고 여기에 기대서 살았는데 깎이고 있는 것을 보면 내 살을 도려내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군의 난개발과 방치로 문화유산의 파괴도 우려된다. 한창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배메산의 경우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탄화미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던 곳이다. 일본은 이곳에서 탄화미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벼농사가 일본에서 한반도로 전래됐다고 공공연히 주장해왔다.
또 보안면 쪽 공사장에서 100m도 안되는 곳을 포함해 배메산 곳곳에 6세기 돌방무덤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소산산성과 도요지 등 산 자체가 거대한 문화유적지임이 밝혀지고 있다. 사산(도롱이산)의 경우는 사산산성이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맞선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항전지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제의 정신과 자존심이 부안에 깃들어 있는 셈이다.
석불산은 부안에 불교가 전래된 최초의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전국문화원협회에 따르면 석불산은 부처가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넓은 돌에 앉아 참선을 했다고 해서 불려지기 시작했다. 의복리 역시 부처님의 옷자락이 씻고 지나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개발을 밀어부칠 것이 아니라 면밀한 지표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한계희 기자 ghh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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