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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에서 ‘온전한 고려청자 가마터’ 최초 발굴
1호가마 소성실 모습

6구역에서 가마터 2개 발굴, 1호 가마는 ‘완전체’
유물퇴적구에서 초벌 청자 다량 발견, ‘국내 최초’
학술적 가치 우수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가능해

완벽한 형태를 가진 고려청자 가마터가 부안 유천리에서 최초로 발굴되면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발걸음에 탄력이 붙고 있다.
부안군은 지난 17일 학술자문회의와 함께 현장설명회를 갖고 부안 유천리(사적 제69호) 6구역에서 발견된 가마터가 현존하는 고려청자 가마 중 전체적 형태를 모두 갖춘 최초의 가마터임을 밝혔다.
유천리 가마터는 지난 1963년에 지정된 사적으로서 수십 기의 가마가 발굴되고 있으며 특성상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탓에 총 7개 구역으로 분리해 관리하고 있다.
이번 발굴은 6구역에서 이뤄졌으며 지난 2018년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가마와 유물 퇴적구의 축조방법과 운영시기, 성격 등을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 2월부터 (재)전북문화재연구원과 함께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새로 발견된 가마는 총 2기이며 약 5미터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두 가마는 구릉 서쪽 경사면에 등고선과 직각방향으로 나란히 축조된 것으로 조사됐다.
가마는 진흙과 석재를 이용해 만든 토축요(土築이窯축)로서 가마 바닥면에는 도자기를 가마에 쌓을 때 그릇 위에 씌워서 그릇에 재가 앉는 것을 방지하고, 불길이 직접 그릇에 닿지 않게 하는 원통형 갑발과 가마의 바닥에 깔아 놓고, 그 위에 그릇을 얹는 받침인 도지미가 불규칙하게 산재해 있어 당시 활발한 작업이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2개의 가마터 중 전체적인 구조가 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는 1호 가마는 전체길이가 25미터에 달하며 연소실이 1.6미터, 토기를 가열해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곳인 소성실이 19미터에 이른다.
이 같이 가마 전체의 윤곽이 들어나면서 가마 맨 끝부분에 석재로 만든 배연시설이 확인됐을 뿐만 아니라 배연시설과 맞닿아 있는 마지막 소성실 바닥면에서 여러 개의 초벌 청자가 발견됐다.
이는 소성실 끝부분에서 폐기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 퇴적구가 확인된 것으로서 가마온도가 가장 낮은 이곳을 초벌 전용 칸으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간 국내에서 조사된 고려 시대 청자가마에서 초벌 칸을 운용하던 사례는 전남 강진 사당리 43호가 있다. 하지만 가마 보존 정도가 우수하고 초벌 칸과 연결된 유물 퇴적구에서 초벌 청자가 다량으로 발굴된 건 부안 유천리가 처음이다.
이러한 구조와 비교할 수 있는 예는 조선시대 15세기 경 분청사기 가마 구조에서나 확인될 수 있는 것으로서 고려시대 가마 구조의 발전단계 연구에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라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이 구역에서 출토된 유물은 맞은편에 있는 7구역에서 출토된 청자들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접시, 잔, 발, 완 등의 일상적인 도기가 대부분으로서 무문, 압출양각, 철백화 등의 기법이 적용된 청자로 확인됐다.
부안군 관계자는 “조선시대 이전인 고려시대에 이미 유사한 구조로 가마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고 이는 유천리 가마가 고려청자의 대표적 생산지인 것을 다시금 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학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만큼 세계 어떤 문화유산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며 “계속적인 조사와 발굴로 문화적 가치를 높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종철 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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