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기 / 전북대 전임연구원

지난 5월 10일 오전 3시, 영광 핵발전소 1호기 재가동 시험운전 도중 수동 정지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이유는 제어봉 관리자가 계산 실수로 제어봉을 너무 많이 뽑아 버리는 바람에  5% 미만으로 유지되어야 할 열출력이 운전 시작 후 불과 1분 만에 순간적으로 18%까지 증가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제어봉은 핵분열 과정에서 생성되는 중성자 수를 줄여 핵분열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로서 제어봉을 많이 집어넣을수록 원자로 출력이 줄고 뽑아낼수록 출력이 늘어난다. 이같이 세심하게 운영되어야 할 제어봉 운전이 면허도 없는 작업자에게 맡겼고, 관리 감독자도 현장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이같이 위험스러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한수원과 감독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열출력이 기준치 5%를 넘으면 즉시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지침을 어기고 시간끌기를 하다가 12시간 이후에야 발전을 멈췄다고 한다. 만약 조금만이라도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었다면 붕괴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핵 관련 전문가들은 가동되기 전 저출력 상태에서 열출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원자로의 경우 순식간에 통제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원자력정책 전문가인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도 “2012년 고리 1호기 전원 상실 사고의 경우 전원이 끊긴 시간이 12분이나 됐지만 전원 차단 후 노심 용융까지는 최소 40분이 걸리는 반면, 체르노빌과 같은 출력폭주 사고는 수십 초 만에 폭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이번 사고는 국내 원전사고 중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사고”라고 말했다.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붕괴사고도 저출력 상태에서 제어봉을 빼내다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한수원측은 체르노빌 사고의 경우 외부 방사능 누출을 막는 격납건물이 매우 부실했고 실험 편의를 위해 안전장치까지 모두 꺼놓은 상태에서 발생한 참사라 단순비교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영광핵발전소 1호기가 폭주까지 가지 않았더라도 출력을 원하는 대로 조절하는 데 실패했고, 운영기술지침서대로 수동정지도 시키지 않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한 지난해 12월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위원장은 전남 영광핵발전소를 직접 방문해 격납건물 내부 철판 부식 및 콘크리트 공극 상황을 점검했다. 그럼에도 재가동 하루 만에 문제가 발생했고, 엄청난 참사로 이어질 뻔 했다는 경고가 빈발하고 있다. 원안위가 단지 사후 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전에 철저한 감시와 규제를 해서 이런 중대 사고가 생기지 않게 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그것도 재가동 하루 만에, 그것도 무면허 직원이 기계를 작동하는 어이없는 상황은 원안위의 존립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를 피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관행이라면 원안위는 오히려 핵 발전을 둘러싼 각종 비리와 불법, 위험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뿐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측이 한통속이 되어 얼마나 무사안일하고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었는지를 확인해 주는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같은 위험스러운 상황이 관련 기관 외에는 비밀에 부쳐졌고, 사고 발생 후 10일이 지난 21일이 되어서야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원자력(핵)발전소가 붕괴사고가 발생해 방사능이 유출되면 국민의 생명과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데도 철저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고 시간끌기와 사고발생 직후 대피 안내방송 등 정보공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원자력(핵) 관련 사업계와 학계를 한통속으로 보고 ‘핵마피아 세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핵발전소를 계속 짖고 운영하는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영광 핵발전소 붕괴사고가 발생해 방사능이 유출되면 인근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방사능 오염이 발생해 치명적인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동안 많은 반핵전문가들이 영광 핵발전소 1호기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해 왔고, 지난해 8월부터 9개월 넘게 영광 핵발전소 1호기의 계획정비가 진행되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조사한 결과를 보면, 135개 격납 건물 철판 부식, 34.4cm 깊이의 공극 등 44여 개의 공극 확인, 격납건물에 둥근 띠 모양의 구멍 발견, 증기발생기 내 망치 발견, 외벽콘크리트에 30cm 구멍 발견, 비사출입관통구의 누유(기름이 새는 것), 그리스 누수 발견 등 구조물 자체의 안전성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이 같은 문제가 확인되었다면 당연히 발전소 폐쇄에 들어갔어야 했다. 그런데도 다시 재가동을 준비하다가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영광핵발전소 1호기는 1986년 가동 이후 현재까지 사고·고장이 총 45번 벌어졌다. 올해 1월과 3월에도 불꽃이 튀고 연기가 나는 등의 사고가 잇따랐다. 노후한 한빛 1호기 외에 다른 핵발전소에서도 알려진 사고만 매년 10건 이상이다. 건물 안쪽 철판이 녹슬고 구멍이 났는데도 폐쇄하지 않고 땜질해서 사용하고 있는 발전소들도 여러 개다.
이러한데도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핵(핵발전소 폐기) 정책’이 사고를 낳았고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핵발전소를 늘리자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도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공사를 중단하겠다던 신규 핵발전소 다섯 개(신고리 4, 5, 6호기, 신한울 1, 2호기)는 모두 계획대로 건설 중이다. 올해 초 민주당 중진 의원 송영길은 공사에 본격 착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단하기로 했었던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 재개 가능성도 언급했다. 결국 올해 핵발전소 가동률은 지난해보다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고, 2027년까지 핵발전 비중은 늘어날 예정이다. 이게 무슨 ‘탈핵’인가?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들은 탈원전 정책 때문에 관련 기업들이 위기를 겪고 있다며, 오히려 핵발전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인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 기업과 핵마피아들의 이익 챙겨 주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위험스러운 핵에너지 의존 정책을 계속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에너지 절약과 효율을 늘리고, 집단형이 아닌 분산형 태양광 중심의 재생가능에너지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 그리고 핵폐기물 처분에 드는 비용 보다 적은 비용으로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지금이라도 영광 핵발전소를 폐쇄해야 하며, 지지부진한 탈핵 정책을 앞당겨 시행해야 한다. 2003년 부안반핵운동을 강력하게 펼쳤던 기억을 상기하면서 이 같은 에너지전환에 부안군민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호소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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