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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노래
  • 이은영 (전북민주동우회 회장)
  • 승인 2019.05.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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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총각이 있다. 법무부 총각은 미혼남을 말하고 보건복지부 총각은 숫총각을 뜻한다. 오래전 젊은 시절에 여자 친구 앞에서 보건복지부가 발행한 총각증을 가지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던 친구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노인도 나이와 상관없이 총각 꼰대가 있는가하면 나이가 들어도 항상 팔팔한 젊은 노인도 있다. 노인은 걸어다니는 도서관이네, 살아있는 역사네 하며 개폼 잡는 꼰대가 있는가 하면, 노인이라고 봐주지 말라! 꼰대들에게 속지 말라! 일갈하는 멋진 건달할배(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도 있다.
필자도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공히 인정하는 노인증(?)을 받고 보니 어언 꼰대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패기는 삼베바지에 방귀 흩어지듯 사라지고 물러터진 땡감만 남았다. 40년 넘게 해마다 4월이면 수유리를 찾아가고, 30년 넘게 해마다 5월이면 망월동을 찾지만 젊은 시절의 감회와 지금의 그것은 확연히 다르다. 5월이면 자주 부르는 노래도 바뀌었다.
젊었을 때 자주 불렀던 5월광주의 노래는 ‘오월의 노래’였다. 지금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애창한다. 먼저 ‘오월의 노래’ 가사부터 살펴보자.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후렴)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망월동의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 있네/ (후렴)//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투쟁 없이 어떻게 헤쳐 나가랴/ (후렴)// 대머리야 쪽바리야 양키놈 높은 콧대야/ 물러가라 우리 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후렴)//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피! 피!

이 노래의 가사에 격한 감정과 과격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그대로 한 톨의 과장도 없다. 전두환이 보낸 공수부대원에 의해 5월 22일 젖가슴이 잘려진 상태로 죽은 고 손옥례씨 외에도 신체가 훼손된 여성 사상자가 많았다.
전두환을 대표로하는 신군부 군사반란 세력은 80년 5월 17일 미국의 승인 하에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서 민주인사들을 잡아들이는 한편 각 대학교에 계엄군을 진입시켰다. 계엄군은 학생과 시민들에게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들에게 광주시민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민이 아니고 권력을 잡는데 방해되는 적에 불과했다. 심지어 계엄군은 저수지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아이들을 벌건 대낮에 일제사격을 퍼부어 사살(?)하기도 했다.
80년 광주를 속으로 앓았던 사람들의 가슴에는 붉은 피가 솟구쳤다. 그들의 눈에는 핏발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욕된 역사를 헤쳐 나가기 위에 83년에 부산 미문화원에 불을 질렀다. 85년 5월에는 군산 출신 함운경 등 서울 지역 5개 대학 학생 73명이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하고 5.18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를 묵인한 미국의 사과를 요구했다.
‘오월의 노래’가 주로 운동권 안에서 애창곡으로 전해온 반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일반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2002년 월드컵 공식 응원단인 붉은악마가 발매한 응원곡 CD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수록되어 있다. 심지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노래를 배워서 자기 나라로 돌아간 뒤 노동자 행사나 집회에서 각자 자기 나랏말로 번안해 부르고 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한국노총이 주관한 행사에서는 여야 5개 정당 대표들이 나란히 서서 이 노래를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기까지 많은 수난을 겪기도 했다. 2009년 이명박 정권 시절에 5.18 국가기념행사 식순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빠졌다. 그 즈음 국가보훈처에서는 이 노래를 대체할 새로운 노래를 공모하여 5.18광주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는 백기완의 옥중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일부 차용해 소설가 황석영이 만들었고 작곡은 전남대 학생이었던 김종률의 작품이다.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들불야학 선생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이 노래가 공개되었다. 작사 작곡은 1981년, 발표는 1982년의 일이다.
필자는 광주에서 희생당한 영령들에게 지금까지 늘 부채의식을 지닌 채 살고 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수구꼴통을 응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상을 파헤치고 책임자를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묻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하겠다.

 

이은영 (전북민주동우회 회장)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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