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국물이라도 좀 줘~ 어쪄”
막걸리를 두 통째 주문한 손님상에 놓여 진 빈 안주 접시를 보고 일남분식 백연화(60) 사장님이 말을 건냈다.
“주면 마다는 사람봤어요”
달라는 사람도 주지만 없는 사람 챙겨서 주는 후한 인심으로 분식집을 운영한지 20년을 넘긴 백 여사의 고향이 강원도 홍천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얼굴하나 보고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낯선 부안에 내려왔다고 한다. 남편의 얼굴이 궁금했다.
“여기 있잖여” 눈빛을 보낸 가게 한편에 ‘상인대학 3기 졸업장’이 보인다. 얼굴 하나만 보이는 증명사진 아래 김해룡이라는 남편의 이름이 보인다.
“어쪄, 따라서 내려올 만 혀 안혀”
마땅한 답을 찾아 말한다. “눈이 침침해져서...”
백 여사는 시장에서 분식집을 하기 전 부안초등학교 앞에서 ‘모나미 문구점’을 했다. 장사도 잘됐고 그때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박사가 됐다고 한다.
백 박사는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그녀 역시 그 시대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문구점에, 분식집에 자식 키우며 먹고 사느라 청춘을 보냈다.
보상은 잘 자라준 자식과 할머니 품에 안기는 손자들이다.
문구점은 4년을 했다. 모은 돈으로 시장에 있는 분식집을 인수했다. 그 가게이름이 ‘일남분식’이다.
“가끔 물어봐 아들이 하나냐고, 그럼 그러지, 아들 하나일 때 시작해서 지금은 아들 둘에 딸도 하나 있다고”
실제로는 가게 인수하기 전 사장님 이름이 김일남 이라서 만들어진 상호라고 한다.
신시장 길가에 있던 그녀의 분식집이 번창할 즈음 가게 건물이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돈이 없어 쫓겨나야 했던 그녀는 때마침 비어진 시장 속 가게에 자리를 잡게 된다. 전보다 목은 안 좋았지만 음식솜씨가 있고 끈끈한 단골이 있었기에 자리 탓은 하지 말자고 맘 먹었다.
“사는 것이 맘처럼 되는 게 있간디”
주방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그녀의 별명이 “해보”라고 귀띔한다. 그만큼 잘 웃는다는 것이다.
“하여튼 맨날 웃어, 손님한테 인상한번 안 쓰고 달라는 대로 다주고, 봉게 그것이 장사가 잘되는 비법이더라고” 2년을 같이 일했다고 하니 믿을 만 하다. 더욱이 그녀의 오래된 친구라 틀림없다.
일남분식의 장점은 시장 내 다른 먹거리를 가져와 먹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가게 옆 부침개집에서 모듬전을 사오거나 우리콩 두부집에서 두부 한모를 사와 막걸리 안주로 먹어도 된다. 막걸리까지 다른 곳에서 사오라는 것은 아니다.
센스 있는 손님이 되려면 순대나 만두 같은 간단한 안주를 주문하면 된다.
안주거리 외에 이곳에서 손꼽히는 음식은 진득한 국물로 맛을 낸 순대국과 국산팥으로 맛을 낸 달큰한 팥죽이다.

백 여사는 돈을 모아야 하는데 푸짐하게 주기만 해서 남는 것도 별로 없다고 한다. 건강할 때 일하고 손자들 커가는 것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가게는 언제까지 하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물었다.
“힘닿는데 까지, 몸땡이 성할 때 까지”
사진을 찍자는 말에 수줍은 듯 손을 모아 옅은 미소를 짓는다. 마치 열여덟 살 강원도 산골 소녀마냥.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